새샘(淸泉)
시험관 아기의 역사 및 생명 복제와 아기 양 돌리 본문
○시험관 아기의 역사
근대 혈액순환 이론의 창시자인 이탈리아의 윌리엄 하비 William Harvey는 자궁 속에 생명의 알이 있고, 그곳으로 정자가 침투해 들어가 생명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생명의 근본이 자궁 속의 '알'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론을 '난자 중심주의'라고 한다.
네덜란드의 현미경 학자 레벤후크 Leeuwenhoek는 자신이 만든 고배율 현미경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자를 관찰해 보았다.
정자가 올챙이처럼 움직이는 꼬리가 달린 생명체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는 정자 안에 축소인간(호문큘러스 homunculus)이 들어 있으며, 그것이 자궁에 성장한다고 생각했다.
역시 네덜란드 과학자인 하트소커 Nocolaas Hartsoeker도 정자에 미리 만들어진 인간이 축소되어 있다가 자궁에 들어가면 자란다고 생각했다.
레벤후크와 하트소커의 주장처럼 정자 속에 생명이 있고 난자 안에서 단지 자랄 뿐이라고 하는 이론을 '정자 중심주의'라고 한다.
난자 중심주의와 정자 중심주의의 대립은 1875년 독일 동물학자인 오스카 헤르트비히 Oscar Hertwig가 성게의 생명 탄생 과정을 관찰하고, 정자가 난자 속으로 들어간 뒤 두 세포가 '합쳐져' 하나의 생명 핵을 만드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일단락되었다.
1848년 미국 의사 윌리엄 팬코스트 William Pancoast는 남편이 정자없음증 azoospermia(무정자증: 정액 속에 정자가 없는 병)인 부부의 불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생의 정액을 채취해 부인의 자궁 속에 넣었다.
서투른 방법이었지만 부인은 성공적으로 임신해 아이를 낳았다.
당시엔 종교적인 비난을 많이 받았던 팬코스트의 인공수정 방식은 정자를 기증받은 인공수정 Artificial Insemination by Donor(AID)이었다.
타인의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수정하는 방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질병에 감염된 정자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에이즈 AIDS(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처럼 기증받을 당시에는 발견할 수 없었던 감염성 질환들이 나중에 발견되어 문제가 되자, 정자를 일정 기간 보관했다가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정자를 냉동 보관해도 생식력에 지장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자, 아예 정자를 일정 기간 냉동 보관했다가 사용하는 정자은행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1980년 후반부터 정자은행을 이용한 불임시술이 크게 늘어났다.
1992년 미국 버지니아 Virginia에서 불임클리닉 Infertility Clinic을 운영하던 사기꾼 의사 세실 제이콥슨 Cecil Jacobson은 임신을 원해 병원을 찾은 여성들에게 호르몬 주사를 놓았다.
'인간융모성생식샘자극호르몬 human chorionic gonadotropin(hCG)' 주사는 실제 임신이 아니어도 임신 테스트에서 '임신 양성'으로 나오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제이콥슨은 아예 처음부터 가짜 임신을 하게 만들려고 작정했던 것이다.
제이콥슨에게 주사를 맞고 임신 테스트에서 양성이 나온 것을 실제로 임신했다고 착각한 환자들 때문에 제이콥슨의 병원은 매우 유명해졌고, 그는 큰돈을 챙겼다.
하지만 실제로 임신한 것이 아니어서 출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제이콥슨은 임신에 성공했으나 유산했다고 환자들을 속였다.
가끔 드물게 제이콥슨의 주사와 상관없이 자연적으로 임신이 된 경우도 있어서 제이콥슨은 꽤 오랫동안 사기 행각을 벌일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정자 기증 인공수정' 방식의 불임시술도 했는데, 시술 전에는 남편과 최대한 비슷한 기증자의 정자를 사용하겠다고 안심시키고서 무려 75명의 여성에게 자신의 정자를 이용한 시술을 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
결국 제이콥슨은 재판을 받고 실형을 언도받았다.
정상 임신의 경우 엄마의 난소에서 나온 난자가 나팔관 쪽으로 내려와 거기서 기다리던 아빠의 정자와 만나 수정이 된다.
하지만 엄마의 나팔관이 어떤 질환이 생겨 막히면 정상적으로 난자가 정자와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수정이 되지 않는 불임 상태가 된다.
이런 경우에는 위 그림처럼 엄마의 난소에서 난자를 채취해 유리 시험관 안에서 아빠의 정자와 만나게 함으로써 생명이 수정되도록 한 다음 이 수정란이 발달하여 형성된 배아胚芽(또는 배) embryo를 튜브를 이용해 엄마의 자궁 안으로 다시 넣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엄마 아빠의 '몸 밖에서 수정'시키므로 '체외수정體外受精 in vitro fertilization'이라 한다.
이렇게 체외수정으로 태어나는 아기를 보통 '시험관 아기 test tube baby'라고 부르다.
그럼 시험관 이기 시술이 최초로 성공하기까지의 역사를 살펴보자.
앞글 '호르몬의 역사'에서 이미 소개되었지만, 1934년 미국 생물학자 그레고리 핀커스 Gregory Pincus는 실험실에서 토끼의 난자와 정자를 수정시켜 만든 수정란을 새로운 토끼에 옮겨줌으로써 동물 체외수정을 최초로 성공시켰다.
동물 체외수정의 성공에 자극받은 연구자들은 1930년대 후반부터 복부 수술 예정인 여성 지원자들의 난자를 지원받아 인간 체외수정 실험을 시작했다.
연구자들은 기존의 동물 실험 결과를 토대로 난자를 실험실에서 '반나절 정도' 성숙시킨 다음 정자와 수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일단 난자가 실험 용기에서 자라지 않았으므로 정자와 수정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왜 인간의 체외수정은 안 될까?
이때 영국 생리학자 로버트 에드워즈 Robert Edwards(1925~2013)는 난자를 성숙시켰던 '반나절'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인간의 난자가 성숙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실험동물이었던 토끼나 쥐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자를 실험실 용기에서 더 오래 관찰해보기로 했다.
그러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반나절이 아니라 24시간 이상 기다렸더니 난자가 성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성숙한 난자는 정자와 수정이 잘 일어났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1960년대에 여성 호르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임신 촉진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 발견되어 실제 환자에게 처방하기 시작했다.
에드워즈는 인간의 체외수정 시술을 다시 시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임신 촉진제를 사용하면 아이를 원하는 여성의 난자를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난소 안의 난자를 간단히 얻을 방법은 없을까?
그동안 체외수정 연구에서 다른 질환으로 복부 수술을 하는 여성들에게서 난자를 얻어왔기 때문에 복부 수술을 하지 핞고도 난자를 얻을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데 그때 막 소개된 최신 수술 기법인 복강경 수술이 해답이 될 수 있었다.
복강경腹腔鏡 수술은 뱃속 공간을 들여다보는 내시경을 통해 난소를 관찰하면서 배꼽 아래쪽의 절개한 틈으로 튜브를 넣어 난소 안의 난자를 뽑아내는 최신 수술이었다.
당시 영국에서 패트릭 스텝토 Patrick Steptoe(1913~1988)라는 의사가 최고의 복강경 기술을 갖고 있었다.
1968년 에드워즈는 스텝토를 찾아가 체외수정 연구를 도와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스텝토가 승낙함으로써 에드워즈-스텝토의 난자 채취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스텝토의 연구실을 방문하기 위해 에드워즈는 10년 동안 260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거의 매일 왕복해야 했다.
서울에서 대구 정도 되는 거리었다.
장거리 출퇴근의 고통은 정말 아는 사람만 안다.
게다가 생명의 탄생에 인간이 개입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며 비판하는 종교계도 에드워즈의 연구에 어려움을 더했다.
종교계의 비판을 무릅쓰고 그들의 연구를 지원할 대학이나 기업은 없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하루하루가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 10년이 지났다.
드디어 1978년 첫 번째 성공적인 결과가 나왔다.
TV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된 가운데 '루이스 조이 브라운 Louise Joy Brown(1978~)'이라는 여자 아기가 체외수정을 통해 태어났다.
종교계가 거세게 비난하는데도 아이를 낳고 싶은 불임 부부드의 엄청난 성원 속에 그들의 체외 인공수정 방법은 전 세계에 보급되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에드워즈는 201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공동 연구자인 복강경 전문가 스텝토는 아쉽게도 그전에 사망해 수상하지 못했다.
노벨상은 사망자에게 수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수상 당시 85세의 고령이었던 에드워즈 역시 노벨상을 받고 나서 3년을 못 넘기고 사망했다.
○생명복제와 아기 양 돌리
정자와 난자가 만나 만들어진 수정란은 세포분열을 하면서 서서히 하나의 생명체로 성장한다.
수정된 지 8주 이내의 생명체는 배아胚芽 embryo. 그 이후를 태아胎兒 fetus라고 한다.
보통 태아 상태일 때 임신 진단을 받기 때문에 우리에게 태아라는 단어가 훨씬 익숙하다.
그런데 수정란의 세포분열을 통해 만들어지는 작은 세포들은 모두 하나의 완전한 생명체로 자라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런 세포들을 '배야줄기세포 embryonic stem cells(ESCs)'라고 한다.
독일의 한스 슈페만 Hans Spemann(1869~1941)은 생명체의 모든 정보는 세포핵 속에 들어 있으며 핵을 떼어 난자에 옮겨주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한 과학자가 미국의 로버트 브릭스 Robert Briggs(1911~1983)였다.
브릭스는 1952년 분열중인 개구리의 수정란 세포에서 핵을 뽑아 다른 개구리의 핵이 없는 난자에 이식했다.
이렇게 핵을 바꾸어 끼우는 기술을 체세포體細胞 핵치환核置換 somatic-cell nuclear transfer(SCNT)이라 한다.
하지만 브릭스가 핵치환을 통해 만든 새로운 수정란은 대부분 정상적인 생명으로 자라지 못했다.
이런 정밀한 실험은 아이디어 자체가 옳았다고 해도 작은 실수나 오류가 실패로 연결된다.
브릭스의 실험 이후 10년이 지난 1962년 영국 생물학자 존 거든 John Gurdon(1933~)이 핵치환을 통해 정상적인 올챙이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분열하고 있는 수정란이 갖고 있는 많은 세포들의 핵 안에는 모두 동일한 유전정보가 들어있기 때문에 핵들을 뽑아 여러 난자에 이식하면 유전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수많은 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명체들이 바로 복제된 생명체 즉 클론 clone이다.
거든은 핵치환을 통해 양서류인 개구리 복제에 성공해 개구리 클론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양서류와 달리 인간이나 양 같은 포유류를 복제하는 것은 복제된 수정란을 다시 엄마의 자궁 안에 넣어 기르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 어렵다.
포유류 복제는 양서류가 복제되고 20여 년이 지난 1984년 덴마크의 스틴 빌라드센 Steen Willadsen(1943~)이 양을 이용해 성공시켰다.
빌라드센은 복제 수정란을 다른 양(대리모)의 자궁 안에 착상시키고 건강하게 출산하도록 하여 포유류 복제가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스코틀랜드 과학자 이언 윌머트 Ian Wilmut(1944~2023)는 빌라드센의 연구 결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싶었다.
윌머트는 배아줄기세포가 아닌 성장한 세포인 성체줄기세포 adult stem cells(ASCs)를 이용해 생명을 복제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해 생명 복제가 성공한다면 이론적으로 내 머리카락으로 또 한 명의 나를 만들 수 있다는, SF 영화에 나오는 일들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윌머트의 실험이 중요하다.
1996년 초 윌머트는 아빠 양의 젖샘에서 추출한 성체줄기세포와 엄마 양의 핵을 제거한 난자세포를 이용해 새로운 수정란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는 그 수정란을 새로운 대리모 양의 자궁에 넣어 착상시켰다.
엉겁결에 체외수정 시술을 받은, 하지만 자신의 DNA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자식을 임신한 대리모 양은 1996년 7월 건강한 새끼 양을 성공적으로 출산했다.
새끼 양의 유전정보와 완전히 동일함을 확인한 윌머트는 태어난 양에게 '돌리 Dolly'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포유류의 성체줄기세포 실험 성공은 전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이론상 앞으로 살아 있는 인간 복제가 가능하다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윌머트가 돌리에 대한 과학적인 논문 발표를 준비하던 1997년 2월 영국의 한 잡지가 이 소식을 먼저 특종으로 보도했다.
윌머트의 연구소와 돌리의 마구간에 전 세계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기자들에 의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 내용들은 일부 과학적인 분석 기사도 있었지만, 많은 부분이 흥미 위주의 인간 복제 가능성과 우려, 신에게 접근하려는 과학의 무례함 등 자극적인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신문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복제 인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유명 위인들의 DNA가 암시장에서 거래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각국 정부들은 무분별한 유전공학기술에 대한 우려 속에 정부 연구 보조를 줄였고, 연구를 감시할 수 있는 위원회를 만들었다.
물론 종교계의 반대 역시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그들을 복제해서라도 다시 만나고 싶어했다.
그들의 구구절절한 편지가 윌머트의 연구소로 쇄도했다.
물론 죽은 강아지를 보고 싶다는 아이의 편지도 있었을 것이다.
윌머트는 인간 복제를 위해 기술을 발명한 것이 아니며, 자신은 인간 복제를 반대한다는 인터뷰를 수천 번이나 했지만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재미있는 상상은 끝이 없었다.
유명 스포츠 선수를 복제하면 원본과 복제본 중 누가 강할지 상상했고, 일부 여성들은 남자 없이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만의 세상을 상상하기도 했다.
복제 양 돌리는 다른 양보다 잔병치레를 조금 더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건강했고, 자식을 여섯 마리나 낳았다.
하지만 말년에 치명적인 폐 질환에 걸리자 2003년 2월 윌머트 박사는 눈물을 머금고 돌리를 안락사시켰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했던 복제 양 돌리의 사체는 지금 에든버러 왕립박물관에 있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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