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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고구려인들이 구현한 메타버스 '벽화'

새샘 2025. 4. 2. 14:34

메타버스(출처-http://www.newsdream.kr/news/articleView.html?idxno=41159)

 

최근 들어 제페토 ZEPETO, 로블록스 Roblox, 샌드박스 Sandbox 등 메타버스 플랫폼 platform(정보 시스템 환경 기반 서비스)들이 급부상하는 중이다.

메타버스 Metaverse는 '가상', '초월' 따위를 뜻하는 영어 '메타 meta'와 '우주'라는 의미의 '유니버스 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 세계에서처럼 사회, 경제, 문화 활동이 이루어지는 3차원의 가상 세계를 말한다.

현실과 가상현실이 혼재된 메타버스의 본질은 현실의 나를 초월해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2,300여 년 전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였던 장자莊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고사는 현실을 넘어선 새로운 자아를 갈망하던 인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호접지몽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나비에 관한 꿈'이라는 뜻으로, 장자가 꿈에서 호랑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다가 꿈에서 깨고 난 뒤 자기가 꿈속에서 호랑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호랑나비가 장자로 변했던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 것에서 유래했다.

고대 이래로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초월한 새로운 세계를 꿈꿔왔다.

그 바람은 때로는 꿈으로, 때로는 유체 이탈을 하는 샤먼 shaman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고고학자의 시선에서는 무덤에 그려진 벽화가 고대인들이 구현했던 일종의 메타버스로 보이고는 한다.

그럼 지금부터 옛사람들이 남긴 유물들을 통해 초월적 삶을 꿈꿔온 인류의 바람을 살펴보자.

 

 

○우리는 날마다 꿈속에서 메타버스를 경험한다

 

인간이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꿈이다.

20세기 초반 프로이트 Freud와 융 Jung이 꿈은 인간 무의식의 표현이며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 이전부터 인류에게 꿈은 또 다른 세계를 실현시켜주는 유력한 도구였다.

 

가령,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 Indian들은 꿈을 현실 세계와 동일시하고 '드림캐처 dream catcher'라는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드림캐처는 버드나무와 새의 깃털, 구슬 따위를 재료로 제작되었는데, 인디언들은 이 드림캐처를 머리맡에 걸어두면 악몽을 잡아주어 좋은 꿈을 꿀 수 있다고 믿었다.

가상 세계(꿈) 속 좋지 않은 무언가를 잡아준다는 측면에서 실시간 증강현실 게임인 '포켓몬고 Pokémon GO'의 원형인 셈이다.

중세시대 서양 사람들 역시 인큐버스 Incubus나 서큐버스 Succubus같은 꿈속의 악마가 현실의 사람을 헤칠 수 있다고 믿었다.

 

신기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고려시대 책인 ≪수이전殊異傳≫에는 '최치원'이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있다.

최치원이 어려서 당나라에 단신으로 유학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장쑤(강소성江苏/江蘇) 난징시(남경시南京市) 율수현溧水縣에 현감으로 초임 발령을 받은 뒤 귀신 자매와 연애를 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이야기 속 자매의 무덤은 현재 중국 장쑤성 난징시 남쪽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유적지로 조성되어 있다.

지금은 한나라 때의 무덤이라고 밝혀졌지만, 최치원의 경험인 꿈속의 사랑 이야기는 한국과 중국에 널리 알려져 있다.

최치원이 겪은 쌍녀분雙女墳 이야기는 과연 진실일까?

 

죽은 쌍둥이 자매가 환생해서 시를 나누고 심지어 운우지정雲雨之情까지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곧이 믿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치원의 상황을 헤아려보면 충분히 이런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다.

어린 시절 홀로 타지에 유학을 와서 극도의 외로움 속에서 살았던 사내였으니 다양한 로맨스 romance(사랑 이야기)가 꿈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최치원이라는 문장의 대가에게 깃든 꿈속에서의 사랑은 시가 곁들여지며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졌을 것 같다.

 

이처럼 사람들은 꿈을 곧 인간 삶의 연장으로 보았다.

또한, 그 꿈을 다스리고 해석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실 생활의 도피처로 삼기도 했다.

 

 

○샤먼만이 가능했던 특수한 메타버스, 유체 이탈

 

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정신현상이지만, 잠을 자야만 가능하고 의식적으로 그 내용을 조절할 수 없다.

반면, 샤먼은 제의祭儀(제사 의식)를 통해서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어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초능력을 발휘하는 존재였다.

'엑스터시 ecstasy(감정이 고조되어 자기 자신을 잊고 도취 상태가 되는 현상)'라고 불리는 이런 샤먼의 특수한 상태를 유체이탈幽體離脫 out-of-body experience(OBE, OOBE)이라고 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오는 사람이 경험하는 임사체험臨死體驗 near-death experience(NDE)에서도 유체 이탈 현상이 보고된다.

하지만 의학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환각이라고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600여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만리장성 근처에서 발견된 유목민의 조각상. 마치 VR 안경을 쓴 듯한 모습이다.(출처-출처자료1)

 

샤먼들은 다양한 환각제와 술 그리고 제의를 통하여 인간의 육체적 틀을 벗어나 영적 세계를 여행했다.

샤먼의 흔적은 다양한 고고학 기록에 남아 있다.

2,600여 년 전 중국 베이징(북경北京) 인근 만리장성에 살던 유목민의 무덤에서는 개구리와 비슷하게 생긴 양서류 모양의 관을 쓰고 무엇인가를 보는 모습의 인물상이 발견되었다.

마치 오늘날 가상현실假想現實 VR(virtual reality) 안경을 쓴 것 같은 형태였다.

옛사람들은 특히 뱀, 도마뱀, 개구리 등 파충류나 양서류 형상을 선호했는데, 이들은 육지와 습지를 오가며 생활하는 습성을 지닌 동물들이다.

그런 까닭에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의 상징으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약 5,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바이칼에서 발견된 샤먼의 정령상(서울대학교박물관)(출처-출처자료1)


러시아 Russia 시베리아 Siberia 남부에 위치한 바이칼 Baikal에서는 약 5,000년 전에 만들어진 샤먼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샤먼이 유체이탈한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유물이 발굴되었다.

인간과 동물의 형태가 뒤섞인 몸을 가진 정령精靈(산천초목이나 무생물 따위의 여러 가지 사물에 깃들어 있다는 혼령)의 기다란 꼬리 끝에 샤먼의 얼굴이 달려 있는 조각상이었다.

이 조각상에는 자신들이 믿는 정령을 따라서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세계를 여행하는 인간의 모습이 표현되었다.

내몽골의 훙산(홍산红山/红山) 문화 유적에서는 애벌레와 같은 형태의 곱구슬(곡옥曲玉: 옥을 반달 모양으로 다듬어 끈에 꿰어서 장식으로 쓰던 구슬)과 벌레, 구름 속 나비 등이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표현한 옥제품이 무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고구려인, 벽화를 통해 가상 세계를 구현하다

 

덕화리 1호분 천장 벽화(국립문화재연구소)(출처-출처자료1)

 

고구려 벽화는 매우 특별한 유적이다.

고구려인들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생사관 그리고 신화의 세계까지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땅을 파 무덤을 만들고 사방이 어두운 공간에서 희미한 등불에 의지한 채로 벽화를 그렸을 과정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고분 내부에 벽화를 그렸던 이들은 후세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은 오직 무덤의 주인공을 위해 벽화를 그렸을 테니 말이다.

 

무덤은 죽은 자의 집이다.

무덤 입구는 현관에 해당하고, 무덤 주인공은 안방에 해당하는 가장 안쪽 방에 안치된다.

옛사람들은 죽음을 삶의 끝이라고 믿지 않았다.

죽어서도 삶이 이어진다고 믿었던 이들은 무덤을 무덤 주인공의 저승에서의 삶을 위한 거처로 다양하게 활용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간의 바람은 죽은 자의 영원한 거처인 무덤 곳곳에 녹아 있다.

고구려를 비롯해 수많은 지역에서 발견되는 고분에서는 형이상학적인 기호와 모티브 motive(예술 작품을 표현하는 동기가 된 작가의 중심 사상), 밤하늘 등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가 시신이 안치된 방을 감싸고 있다.

 

가령,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지상을 의미하는 벽에는 고구려인들의 실제 생활상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고, 천장 쪽으로 올라가면서 하늘의 별을 비롯해 신화적인 요소를 섞어서 표현했다.

는 마치 현실과 판타지가 한데 어우러진 가상현실 배경과도 비슷하다.

현실과 가상의 모습을 두루 섞어서 3차원의 가상 세계를 구현해 낸 메타버스가 이미 1,500여 년 전 고구려 벽화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 외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견되는 벽화나 바위그림은 죽음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로 생각했던 옛사람들의 믿음을 가상과 현실이 조합된 메타버스 형태로 구현해낸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과 이어진 천장의 비밀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집 유르트 천장(출처-출처자료1)

 

고구려 고분에서 눈에 띄는 점은 벽화 말고도 또 있다.

바로 천장의 모양이다.

고구려 고분의 천장은 '모줄임(또는 말각조정식抹角藻井式)천장'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형태다.

모줄임은 무덤의 네 벽 위에서 1~2단 안쪽으로 돌을 비스듬히 괴어 올린 뒤, 네 귀에서 세모의 굄돌을 걸치는 식으로 모를 줄여가며 올리는 건축 기술로서, 이는 유라시아 Eurasia 유목민들이 집 즉 유르트 yurt(몽골에서는 게르 ger라고 부름)를 지을 때 천장을 마치 하늘처럼 만드는 데에서 유래했다.

모줄임 방식을 적용하면 굉장히 입체적이고 층고가 높은 천장이 만들어진다.

모줄임천장은 고구려의 대표적인 고분 건축술로 경기도 용인과 충청도 일대의 고구려 고분에서도 그 양식이 발견된다.

 

고구려인들은 고분 천장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그 사이사이에 별자리와 해당 별자리와 관련된 신화 속 인물들도 새겨 넣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그림 가운데 널리 알려진 삼족오三足烏(태양 속에서 산다는 세 발을 가진 까마귀)도 모줄임천장에 그려진 것이다.

보통 죽은 사람의 몸은 하늘을 보고 뉘인 형태로 안치된다.

어쩌면 무덤을 만든 이들은 무덤 주인이 자리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를 감상하고, 신화 속 인물들과 조우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모줄임천장은 고구려인들이 발명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천장을 마치 천체투영관처럼 입체적이고 높게 쌓아 올리는 방식은 중앙아시아 초원에 사는 유목 민족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몽골 초원에서 밤을 지내본 사람이라면 그곳 하늘에서 벌어지는 쏟아질 듯한 별들의 향연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하늘을 이불 삼아 사는 유목민들에게 별자리는 그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또한,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이들의 중요한 재산인 가축을 먹여 살리는 힘의 원천이다.

보통 초원의 유목 민족들은 '게르 ger' 또는 '유르트 yurt' 등으로 불리는 이동식 천막이나 나무로 만든 오두막집에서 산다.

천막의 경우 자연스럽게 돔형 dome-shaped으로 천장이 만들어진다.

반면, 나무를 쌓아 만든 오두막집은 하늘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모줄임이라는 독특한 기법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은 천장 사이로 낮에는 태양 빛이 쏟아졌고, 밤에는 은하수가 지나갔다.

 

유목민이 만들어낸 천체투영관은 고구려로도 전해졌다.

모줄임천장은 다른 말로 말각조정식 천장이라고도 불리는데, 말각조정抹角藻井은 '맑고 푸른 하늘(궁창穹蒼 또는 창천蒼天)'을 뜻한다.

고구려인들은 유목 민족들이 어두운 유르트 안에서 태양을 바라보듯이 무덤 주인이 어두운 무덤 속에서도 찬란한 태양 빛과 함께 하기를 바랐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고구려 고분과 거기에 그려진 벽화는 한반도 최초의 천체투영관인 셈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타임 슬립 time slip(시간 여행)을 해서 다른 세상으로 이동을 하거나 두 사람 사이의 영혼이 뒤바뀌는 설정이 종종 등장한다.

현대 과학으로는 아직까지 실현이 불가능한 설정이지만 이러한 설정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특히 최근에는 '회빙환回憑還'이라고 해서 웹소설 등에서 회귀回歸, 빙의憑依, 환생還生하는 설정이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도 한다.

오늘날에도 인류는 현실을 벗어나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꿈을 꾼다.

이는 인간의 아주 오래된 욕망이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먹는 사람의 미각이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기술이 대단히 발달한다고 해도 우리의 오감이 감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기술에 그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신체는 몇만 년 전 초기 현생인류가 등장한 이후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기술의 발달에 환호하기 이전에 우리가 어떻게 메타버스의 세계를 갈망해왔는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시도들을 해왔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 우선인 이유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세상 모든 것의 기원, 흐름출판, 2023.

2. 구글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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