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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5부 근대 초 유럽 - 16장 17세기의 새로운 과학 2: 코페르니쿠스의 혁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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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5부 근대 초 유럽 - 16장 17세기의 새로운 과학 2: 코페르니쿠스의 혁명

새샘 2025. 4. 1. 12:55

1543년 발간된 코페르티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해'(출처-https://m.cafe.daum.net/joucheol/587L/824?listURI=%2Fjoucheol%2F587L)

 

중세 우주론(중세의 우주 모형 model)은 고대 문헌 특히 알렉산드리아 Alexandria의 프톨레마이오스 Ptolemaeus(영어 Ptolemy)(100?~170?)가 다듬고 체계를 잡은 아리스토텔레스 Aritstoteles(영어 Aristotle)(서기전 384~322)의 저작에 의존했으며, 프톨레마이오스는 초기 그리스 Ancient Greece의 천문학자 사상에 의존했다.

이 전승된 우주론에 따르면 하늘은 주도면밀하게 조직된 천구들의 체계로 지구를 중심으로 궤도를 그리며 돌고 있다.

지구와 천체는 근본적으로 달라 상이한 물질로 이루어졌고 서로 다른 운동 법칙을 따른다.

태양, 달, 별, 행성은 불변하는 (그리고 완벽한) 가장 순수한 형체나 에테르 ether로 형성되어 있으나, 이와 대조적으로 지구는 네 가지 요소(땅, 물, 불, 공기)로 구성되어 있고 각 요소들은 본래의 자리가 있어서 무거운 요소(땅과 물)는 중심으로 향하고 가벼운 것은 더 멀리 나가려는 경향이 있다.

천체 가운데서 행성들과 별들은 완전한 원형을 그리며 정지해 있는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

이러한 천체 운동은 그리스도교인이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제1운동자가 만들었다.

이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에 적합한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대상은 외부의 힘이 작용할 때에만 움직일 수 있는데, 그것은 우주의 근본 요소가 각각 본래의 자리를 갖고 있다는 믿음에도 잘 들어맞았다.

더욱이 이 관점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창조된 우주라는 믿음에서 비롯되었고 이 믿음을 확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세 말에 이르러 천문학자들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라고 불렀던 이 우주론이 많은 사람들의 관찰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궤도는 완전한 원을 그린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이상을 따르지 않았으며, 행성들 특히 화성은 때때로 궤도의 진행을 계속하기 전에 고리 모양을 그리며 뒤로 움직였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어떻게 해서든 이러한 궤도의 불규칙성을 복잡한 수학으로 설명해야 했다.

15세기 초에 이르러 지구 중심적 우주론에 입각한 완전한 원형 모형에 관찰된 행성들의 움직임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복합적인 것들의 미로로 이루어진 천문도를 만들어냈다.

마침내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달력의 심각한 난점들을 해결할 수 없음이 판명되었다.

이러한 위기는 코페르니쿠스의 지적 도약이 전면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재촉했다.

 

16세기 초 무렵의 낡은 로마식 달력은 천체 운동 배열과 상당히 달랐다.

주요 성자의 축일, 부활절, 그 밖의 신성한 날들은, 별들에 따르면 때때로 그날들이 실제로 있어야 할 날보다 몇 주씩이나 벗어나 았었다.

가톨릭 Catholic 당국자들은 전 유럽의 수학자와 천문학자에게 자문을 구하며 이 문제를 바로잡으려 애썼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바로 폴란드 Poland 교회의 직원이자 천문학자였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Nicolaus Copernicus(1473~1543)이었다.

폴란드와 북부 이탈리아 Italia에서 교육받은 코페르니쿠스는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천문학, 교회법, 의학을 공부했다.

그는 그리스어 Greek를 읽을 줄 알았으며 그리스 철학에도 정통했다.

그는 또한 꼼꼼한 수학자이자 신의 우주는 프톨레마이오스 모형에서 나타난 것만큼이나 번잡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은 독실한 가톨릭교도였다.

그가 수학적 계산에 입각해 제시한 해결책은 단순하면서도 급진적인 것이었다.

한마디로 프톨레마이오스는 틀렸다는 것이다.

즉, 지구는 정지해 있는 것도 아니며 태양계의 중심에 있지도 않았다.

또한 지구는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다른 행성과 더불어 태양 주위의 궤도를 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프톨레마이오스적인 체계를 다시 정리해서 천문기하학을 단순화하고 행성의 궤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보수적인 사상가였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교회는 물론이고 고대 문헌의 권위와 단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몇 세기에 걸쳐 잃어버린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순수한 이해를 회복시켰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이론이 내포하고 있는 것들이 그를 괴롭혔다.

그의 사상은 몇 세기에 걸쳐 내려온 천문학적 사상과 모순되었을 뿐 아니라 지구상의 관찰된 사물의 움직임과도 조화되기 힘들었다.

만약 지구가 움직인다면 그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코페르니쿠스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를 최소 960만 킬로미터로 계산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지구는 시간당 몇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머리가 핑핑 돌 정도의 속도로 태양 주위를 빠르게 돌고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사람과 사물이 어떻게 서 있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지구는 태양에서 약 1억 5,000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시간당 10만 7,200킬로미터의 속도로 궤도를 돌고 있으며 자전축은 시간당 약 1,600킬로미터의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물리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뒤엎기보다는 다듬으려 했지만, 그러한 물리학과 자신의 새로운 태양 중심적 우주 모형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은 그가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와 모순을 초래했다.

이로 인한 좌절과 혼란이 코페르니쿠스의 말년을 괴롭혔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사실들을 출간하는 것을 망설였다.

코페르니쿠스는 죽기 직전인 1543년에야 ≪천체의 회전에 관해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영어 On the Revolutions of the Celestial Spheres)≫를 출간하는데 동의했다.

출판 과정에서 그의 원고를 보았던 루터교파 Lutheran의 학자는 악의적 비방을 피하기 위해,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추상이고 천문학을 하기 위한 일련의 수학적 도구이며 하늘과 땅의 본질에 관한 위험한 주장이 아니라는 내용의 서문을 덧붙였다.

1543년 이후 몇십 년 동안 코페르니쿠스의 사상은 바로 그러한 의미, 즉 실제적인 수학적 가설이 아니라 유용한 도구로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역사가인 스티븐 샤핀 Steven Shapin(1943~)이 언급했듯이 코페르니쿠스의 사상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에 대한 최초의 '중대하며 체계적인' 도전이었다.

 

※출처

1. 주디스 코핀 Judith G. Coffin·로버트 스테이시 Robert C. Stacey 지음, 손세호 옮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하): 근대 유럽에서 지구화에 이르기까지, Western Civilizations 16th ed., 소나무, 2014.

2. 구글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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