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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관아재 조영석 '바느질'

새샘 2025. 4. 10. 13:01

"바느질이 아름다운 '그때 그 시절'"

 

조영석, 바느질, 종이에 수묵담채, 22.4x23.5cm, 간송미술관(출처-출처자료1)

 

언니의 쑥떡은 봄의 전령사다.

언니는 해마다 이맘때면 남해에서 자란 쑥으로 만든 떡을 친지에게 선물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쑥떡이 도착했다.

가지런히 썬 떡을 보면 오감이 즐겁다.

은은한 쑥 향과 고소한 콩고물이 입 안 가득 번진다.

남해의 바다 내음은 덤이다.

언니의 정성이 봄볕처럼 따스하다.

 

언니는 우리에게 엄마 같은 존재였다.

동생들을 위해 간식을 만들고 뜨개질을 가르쳐주었는가 하면, 책도 함께 읽어주었다.

스피커가 유난히 큰 전축에는 언니가 좋아하던 가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가 기본으로 깔렸다.

때로는 비틀즈 The Beatles나 비지스 Bee Gees, 퀸 Queen 따위의 팝송 pop song을 따라 흥얼거리기도 했다.

우리는 언니가 하는 짓을 그대로 흉내낸 '따라쟁이'였다.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1686~1761)의 작품 <바느질>을 보고 있으면, 언니 생각이 절로 난다.

여인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바느질하는 장면이 우리 자매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다.

 

언니가 가르쳐준 바느질은 필자 인생의 첫 매듭이었다.

바느질은 모난 것을 둥글게 만들고, 구멍 난 것을 꿰매어 새것으로 만드는 마술이었다.

자투리 천을 기워 근사한 조각보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바느질은 한 사람의 솜씨는 물론 인품까지도 보여주는 섬세한 작업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묘한 매력까지 있다.

 

바느질은 고대부터 동물의 가죽이나 천을 이어 옷을 짓는데 사용했다.

바느질의 역사는 세대를 달리하며 변해왔다.

교복세대인 필자는 반짇고리(바느질고리: 바늘, 실, 골무, 헝겊 따위의 바느질 도구를 담는 그릇)가 필수품이었다.

오색실로 얇고 간편하게 엮은 반짇고리를 사은품으로 받으면 기분이 최고였다.

요즘은 그런 반짇고리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던 반짇고리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만큼 퇴물이 되었다.

질감이 좋고 올이 튼튼한 천이 개발되었고, 옷도 낡을 때까지 입지 않는 까닭도 있다.

기성복세대는 바느질할 일어 없어서 편하겠지만 한땀 한땀 정성을 들인 사람의 온기가 사라져 아쉽다.

 

조선시대는 남성 위주의 사회여서 바느질은 사대부집 여종이나 서민 아낙네의 일이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사대부나 신선이었지, 여성들은 아니었다.

그러자 조선시대 후기가 되면 서민의 아낙네가 그림에 등장한다.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며 발전한다.

18세기는 흔히 조선의 문예부흥기라고 할 만큼 학문과 예술이 꽃피웠던 시기였다.

한글 문학과 판소리가 유행하고, 그림에는 서민을 주제로 한 사실화와 풍속화가 나타나 진경시대가 펼쳐졌다.

 

조선시대 후기의 사실화를 조선의 화풍으로 그린 화가가 조영석이었다.

그는 선비로서, 서민에게 관심을 보인 사대부화가였다.

호를 '나 스스로 살피는 집'이라는 뜻으로 '관아재觀我齋'라고 지은 것만 봐도 그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선비로서의 품위와 학식이 높았고, 그림 소질 또한 출중했다.

그는 사실화도 뛰어났지만 인물화에 더 재능이 있었다.

형을 그린 초상화에서 평상복에 두 손을 모두 표현하여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기도 했다.

 

<바느질>은 세 여인이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는 광경이다.

여인들은 옆으로 나란히 앉아 있다.

한 여인은 한쪽 다리 위에 다른 쪽 다리를 올려 쭉 뻗었다.

그 위에 옷을 펼쳐서 바느질을 하는 중이다.

치마 사이로 맨발이 삐죽이 나와 있다.

입을 모으고 바느질에 몰입하는 포즈 pose(몸가짐)이 귀엽다.

가운데 앉은 여인은 다소곳이 천을 깁고, 맨 오른쪽 여인은 방바닥에 천을 펼쳐서 가위로 자른다.

머리 모양으로 봐서는 나이가 가장 많은 듯하다.

이목구비는 짧은 선으로 포인트를 주어 특징만 묘사했다.

인물의 사실적인 처리가 능숙하다.

 

그림에는 배경이 없다.

여인 셋만 덩그러니 앉아 있다.

인물에 초점을 두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손 모양과 앉아 있는 포즈가 제각각이다.

다정한 표정과 리드미컬한 rhythmical(율동적인) 동세動勢(움직임새, 무브망 mouvement: 림이나 조각에서 나타나는 운동감)에서 현장감이 물씬 풍긴다.

이는 조영석이 아랫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는 뜻이다.

 

그의 그림 14점을 모아 엮은 ≪사제첩麝臍帖≫에는 작두질하는 모습, 세 여인이 소담스럽게(생김새가 탐스럽게) 앉아 바느질하는 모습, 소젖을 짜기 위해 송아지를 앞에 세운 모습, 장기 두는 모습, 여인이 절구질하는 풍경, 병아리 등 사실적인 그림들이 들어 있다.

조영석은 사물의 특징과 형상의 디테일 detail(미술품의 전체에 대하여 한 부분을 이르는 말)을 충실히 묘사하고, 색채까지도 실제처럼 표현했다.

 

내 옆에는 언니가 보내준 쑥떡이 놓여 있다.

언니는 동생이 많아서 얼마나 심적인 부담이 컸을까 싶다.

그런 내색 하나 없이 동생들에게 사랑을 베푼 언니가 있어 나는 참 행복하다.

화가 조영석이 사대부이면서 서민을 삶을 이해하려고 했듯이 언니는 언제나 동생들을 깊이 배려해왔다.

형제는 한 뿌리에서 난 나무처럼 혈연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형제애를 알뜰살뜰 바느질해준 언니가 고맙다.

 

※출처

1. 김남희 지음, '옛 그림에 기대다', 2019. 계명대학교 출판부

2. 구글 관련 자료

 

2025. 4. 10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