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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제를 발견하기까지

새샘 2025. 4. 14. 19:37

디오스코리데스가 당시 마취제로 사용했던 맨드레이크를 든 간호사(영국 화가 어니스트 보드 Ernest Board 작품)(출처-출처자료1) .

 

흔히들 약물지藥物誌라고 부르는 약물藥物에 대하여 De Materia Medica(영어 On Medical Material)≫의 저자인 서기 1세기의 고대 그리스 ancient Greece 의사 디오스코리데스 Pedanius Dioscorides는 사람 모양을 한 신비로운 약초 맨드레이크 mandrake를 수술할 때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맨드레이크를 포도주에 넣고 끓여 먹으면 감각이 마비된다고 기록했다.

이런 방법의 마취痲醉 narcosis(또는 anesthesia)는 160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이슬람 Islam 의학자인 이븐 시나(영어 아비센나 Avicenna)도 자신의 책에서 마취제를 소개했다.

약초 가루(아편, 독미나리, 맨드레이크, 사리풀)를 물에 풀어 스펀지 sponge에 적신 뒤 환자의 코에 대고 들이마시게 하여 마취시키는 방식이었다.

 

본격적인 마취제 개발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수술은 환자의 의사 모두에게 '공포'였다.

끔찍한 고통을 참아가며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의 육체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수술 전의 심리적 두려움도 엄청나서 수술 전에 자실하는 환자도 많았다.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의 어려움도 만만치 않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환자를 제어하며 수술해야 했기 때문에 수술 칼에 본인의 손가락이나 조수의 손가락을 베기 일쑤였고 이따금 잘려나가기도 했다.

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섬세함이 아닌 속도였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최선을 다해 고통을 느끼는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 외과의사의 도리였다.

손이 빠르기로 이름났던 영국 외과의사 로버스 리스턴 Robert Liston은 3분 안에 다리를 절단할 수 있었다고 한다(그의 별명은 '날아다니는 칼'이었다).

외과의사에게 제일 허무한 상황은 겨우 수술에 성공했는데 환자가 수술 통증에 의한 쇼크(충격) shock로 사망할 때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외과 의학의 발달을 가져온 것이 마취제痲醉劑 anesthetic (agent)였다.

 

 

○에테르

 

'에테르 ether'라는 물질은 1275년 스페인 Spain 수도사 룰리우스(룰루스) Raymundus Lull(i)us(1232~1315)가 화학 실험을 하던 중에 처음 만들었다.

독일 의사 파라켈수스 Paracelsus는 1540년 에테르를 닭에게 먹여 닭이 깊이 잠들었다가 멀쩡하게 깨어나는 마취 효과를 확인했다.

파라켈수스와 비슷한 시기에 독일 의사로서 약리학자인 코르두스 Valerius Cordus(1515~1544)도 에탄올 ethanol과 황산을 반응시켜 에테르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물질을 '황산의 달콤한 기름 sweet oil of vitriol'이라 이름 붙이고, 휘발성이 높고 불이 잘 붙는다는 특징까지 세세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지금 사용되는 에테르라는 이름을 실제로 처음 지은 사람은 1730년대 독일 화학자 프로베니우스 August Sigmund Frobenius였다.

에테르는 휘발성이 있어서 공중으로 퍼져나가는데 이것을 "지상의 것이 아닌 물질이 하늘로 올라가려 한다'고 생각해 붙인 이름이었다.

땅 위의 만물이 4개의 원소(물, 불, 공기, 흙)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가 천상에 존재하는 제5원소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름 아닌 에테르였기 때문이다.

 

에테르는 마취보다 환각 효과가 먼저 발견되어 사람들의 즐거운 파티 party에 사용되곤 했다.

'에테르 파티'에 참가해 에테르의 효과를 체험한 적이 있었던 의대생 윌리엄 클라크 William Clarke는 1842년 환자의 이를 뽑기 전에 환자 얼굴에 에테르를 적신 수건을 덮고 이를 뽑아 최초로 에테르의 마취 효과를 확인했다.

하지만 마취에 관심이 없었던 클라크의 교수는 그 실험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최초의 에테르 마취 실험은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지나갔다.

 

 

○아산화질소

 

라부아지에 Antoine-Laurent de Lavoisier가 산소를 발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영국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 Joseph Priestley는 1772년 실험 중 우연히 아산화질소亞酸化窒素 nitrous oxide(N2O)를 최초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아산화질소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아산화질소의 마취 효과를 처음 주목한 학자는 영국의 험프리 데이비 Humphry Davy(1778~1829)였다.

그는 아산화질소를 흡입했을 때의 상태를 4단계(무통증→망상·환각→마취→호흡마비)로 정리했고, 1800년 이를 이용해 수술에 마취 목적으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발표했다.

 

하지만 에테르의 경우처럼 사람들은 아산화질소의 환각 효과에만 열광했다.

아산화질소는 '웃음 가스'란 이름으로, 아산화질소가 담긴 풍선은 '행복 풍선 Happy Balloon'이란 이름으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파티용품으로 퍼져나갔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2. 구글 관련 자료
 
2025. 4. 1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