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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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혜원 신윤복 "연소답청"

새샘 2025. 4. 19. 23:53

"그림으로 떠나는 두근두근 봄나들이"

 

신윤복, 연소답청, 18세기 후반, 종이에 담채, 28.2x35.6cm, 간송미술관(출처-출처자료1)

 

'고도를 기다리며', 봄을 맞는다.

어제와 같은 오늘도 여행자는 간절히 기다려도 오지 않는 구세주이자 신인 '고도  Godot '를 기다린다.

기다리다 지치면 소년이 나타나 "고도는 내일 온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사뮈엘 베케트 Samuel Beckett(1906~1989)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1952)의 한 장면이다.

4월의 봄은 또 그렇게 고도를 기다리듯 꽃처럼 흘러간다.

 

꽃소식이 한창이다.

팝콘이 터지듯 꽃들이 피고 있다.

꽃은 보약 같은 존재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곁에 누군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혼자여도 괜찮다.

꽃이 있는 곳에서는 외롭지 않다.

 

꽃을 찾아 떠날 수 없다면, '젊은이들의 봄 나들이' 모습을 그린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1758~1813 이후)<연소답청年少踏靑>을 감상하며 봄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화창한 봄날, 한양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내들이 어여쁜 기생을 대동하고 봄나들이에 나섰다.

진달래마저 앙증맞게 피었는데, 모두들 설레는 표정이다.

연분홍빛 흥이 넘친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여행은 언제나 가슴 부풀게 한다.

떠나는 길에서 만나는 이들은 모두가 스승이다.

젊을 땐 미지의 세계와 마주할 수 있는 생소한 곳이 좋았다.

낯선 곳에서 보고 느끼고 즐기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선물이었다.

신선함과 호기심 가득한 여행은 필자의 삶에 자양분이 되었다.

지금은 낯선 곳의 설렘보다 익숙한 곳의 여유를 누리는 편이 더 좋다.

빡빡한 일정보다 느슨하게 걷고 오래 머물고 싶다.

살다 보면 자기만의 길이 생기듯이 여행에도 자기만의 방법이 있다.

사람은 집 안에서의 평화보다 집 밖에서의 무질서 속에 성격이 드러난다.

떠나보면 안다.

상대방의 성격과 취향을.

그래서 여행에는 배려의 기술이 필요하다.

 

신윤복은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풍속화가다.

기생을 등장시킨 파격적인 그림으로 화단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정규직인 화원 출신이지만 춘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직장인 도화서에서 쫓겨났다.

이런 몇몇 정보 외에 그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현존하는 작품이 그의 존재를 증언할 뿐이다.

주로 양반과 기생이 어울려 유흥을 즐기는 모습을 자세히 묘사했다.

그늘진 사회의 뒷골목을 그림으로 풍자한 것이다.

 

절벽 위에 진달래가 소담스럽다.

이른 봄 약간은 쌀쌀하지만 마음은 봄바람에 살랑인다.

두 팀은 벌써 합류했다.

한 팀은 옷자락을 날리며 급하게 이동 중이다.

사내들이 타고 온 말에는 갖은 치장을 한 기생이 올라탄 채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기생 앞에서 양반의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한껏 멋을 부린 사내들이 옷차림도 화려하다.

 

그림 위쪽에는 걷어 올린 도포 자락을 리본 모양으로 묶어 간편하게 치장한 사내가 있다.

담뱃대에 불을 붙여 기생에게 건네는 중이다.

도포 자락 사이로 옥색 누비저고리가 고급스럽다.

얇은 비단신 코가 맵시를 더한다.

담뱃대를 받으려는 기생은 어깨가 좁은 상체에 꼭 맞는 저고리를 입고 섹시하게 뒤돌아본다.

맨 앞에 선 사내도 도포 자락을 멋스럽게 올렸다.

그 사이로 보라색 누비저고리가 세련미를 자랑하고, 허리춤에 찬 향낭이 향기를 날린다.

소품의 색상까지 돋보이는 패션이다.

한쪽 바지를 질끈 묶어서 다소 불량스럽게 보이지만 여행의 들뜬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기생은 머리에 진달래꽃을 꽂은 채 담뱃대를 물고 있다.

 

그림의 왼쪽 앞 장면도 가이다.

기생이 옷깃을 펄럭이며 말을 타고 있다.

사내가 헐레벌떡 뒤따른다.

행여 늦을까 봐 서두른 기세가 역력하다.

기생이 입고 있는, 촘촘하게 주름 잡힌 폭넓은 청색 치마가 산뜻하다.

여성들은 하나같이 가냘픈데, 호기심 가득한 사내들은 봄 햇살만큼이나 기운이 충만하다.

주인 곁을 지키는 시종들은 이 광경이 지루한 듯 무표정하다.

남성과 여성의 심리를 은유적이고 사실적으로 포착한 재기 넘치는 그림이다.

 

신윤복은 양반과 기생이 어우러진 향락적인 생활을, 해학성을 가미하여 수준 높게 그렸다.

도시적인 감각이 깃든 유려한 선과 원색을 구사한 그림이 비록 당대에는 '아웃사이더 아트 outsider art'(기성 예술의 유파나 지향에 관계없이 창작한 작품)였지만 지금은 더없이 소중한 한 시대의 초상이자 불후의 예술품이 되었다.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고도'가 있다.

그렇다면 ≪연소답청≫은 신윤복이 기다리던 고도가 아니었을까.

당시에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회의 뒷골목을 당당히 그려냈으니까.

화가인 필자에게 '고도'는 무엇일까.

신윤복이 선보였듯이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구현하는 것이 아닐까.

'고도'는 몇 겁의 생을 거쳐 우리가 기다리는 '그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출처

1. 김남희 지음, '옛 그림에 기대다', 2019. 계명대학교 출판부

2. 구글 관련 자료

 

2025. 4. 1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