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83 - 자작나무 본문

동식물 이야기와 사진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83 - 자작나무

새샘 2026. 4. 29. 16:04

자작나무 잎과 열매(출처-출처자료1)

 

한대 지방을 대표하는 나무로 새하얀 껍질이 몇십 겹으로 겹쳐 있다.

여기에는 기름기가 많아 잘 썩지 않을뿐더러 불을 붙이면 잘 붙고 오래간다.

흰 껍질은 매끄럽고 잘 벗겨지므로 종이를 대신하여 불경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리는데 쓰였다.

 

자작나무는 줄기 껍질이 종이처럼 흰 까닭에 사람들이 그 이름을 잘 기억한다.

이 나무는 높은 산에 많이 자라며, 기후가 따뜻한 낮은 곳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냉기가 도는 산기운 속에서 그 흰 줄기는 천만 년의 고요함과 원시 속에서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산속에서 자작나무를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그 모습을 자세히 보고 싶어진다.

온갖 잡된 나무들 사이에서 홀로 순수함과 정결淨潔(매우 깨끗하고 깔끔함)을 잊지 않고 품위를 지켜나간다.

 

외국 시인들은 자작나무를 소재로 하여 많은 감미로운 시를 쓰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선 그런 것 같지 않다.

이는 시인들이 자작나무가 있는 산속에 가본 적이 별로 없고, 접할 기회도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시인은 이 나무를 일컬어 "숲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숲의 가인佳人이여"라고 노래했다.

 

자작나무과 자작나무속의 갈잎 넓은잎 큰키나무인 자작나무는 시베리아 Siberia나 북유럽, 동아시아 동북부, 북아메리카 북부 숲의 대표적인 식물이다.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평안북도, 함경남북도와 같은 북부지방에 자생하며,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한다.

 

학명은 베툴라 펜둘라 Betula pendula, 영어는 East Asian white birch(동아시아 자작나무), 한자는 화樺 또는 화華로 쓴다.

 

 

○백두산 통나무집과 자작나무

 

필자는 해방 직전 조선총독부 영림서營林署(현재의 지방산림관리청) 직원으로 백두산 부근의 원시림 속에서 지냈었다.

길주에서 혜산진으로 가려면 그 중간 지점에 백암이란 정거장이 있다.

백암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무산으로 가는데, 역시 그 중간 지점에 유평이란 곳이 있다.

이 유평 작업장이 필자의 직장이었으며, 다시 이곳에서 거의 백 리나 되는 산속에 들어가 있었다.

 

처음에는 누구나 원하는 성진영림서 본서에 있었는데, 필자는 너무 배가 고파서 감자라도 많이 먹어보자는 생각에 자청해서 산속으로 갔다.

그때 영림서장은 필자를 보고 기특한 청년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그때는 전쟁 중이라서 식량이 부족했고, 영림서 청사 처마 밑에서 바라본 미군 폭격기 B29의 반짝이는 은빛이 어수선한 세상을 예고하는 것 같아 산골을 택했다.

 

필자는 산속 통나무집에서 지냈다.

부엌 하나에 방 하나만 있고 화장실은 없는 집이었다.

날마다 새벽이 되면 적당한 곳을 화장실로 이용해야 했고, 따라서 화장실은 항상 새로운 곳이었다.

필자는 여기서 자작나무와 친해졌다.

 

그곳 사람들은 사람은 보티나무(자작나무를 이렇게 부름)에 나서, 보티나무에 살고, 보티나무에 죽는다고 했다.

지붕을 자작나무 껍질로 덮었기에 자작나무 껍질 아래에서 태어난다는 것이고, 밥을 지을 때 자작나무 껍질을 불쏘시개로 쓰고, 어둠을 비출 때도 기름기가 많은 자작나무 껍질을 사용하며, 사람이 죽으면 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작나무 껍질에 싸서 땅속에 묻기에 이와 같은 말이 있게 된 것이다.

 

필자도 그때 백두산 원시림에 통나무집을 만들었는데, 지붕에는 자작나무 껍질을 덮고 그 위에 굵은 돌을 가득 얹어 바람에 날리지 않고 비가 와도 새지 않게 했다.

자작나무 껍질은 거의 모두가 기름이기 때문에 썩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웃집에서 놀다가 밤이 깊으면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길을 찾아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참으로 고마운 자작나무였다.

 

산길을 갈 때 자작나무 토막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나무줄기 속은 모조리 썩어서 없어져도 기름으로 된 껍질은 항상 새 나무처럼 보이기 때문에, 잘못해서 이것을 밟으면 넘어지거나 깊은 곳으로 떨어져서 위험하기 때문이다.

 

 

○나무의 특성

 

(왼)자작나무의 하얀 줄기와 (오른)잎과 꽃(출처-출처자료1)

 

자작나무는 같은 자작나무속의 박달나무와 인연이 깊은 나무이다.

생김새가 비슷하다.

다만 박달나무는 껍질에 흰 빛이 부족하고, 또 자작나무 열매(꼬투리)는 아래로 늘어지지만 박달나무 열매는 하늘을 쳐다보고 선다는 점이 다르다.

자작나무 껍질은 종잇조각처럼 옆으로 잘 벗겨져 어떤 사람은 이 껍질로 명함을 만들기도 한다.

필자도 예전에 자작나무 껍질로 명함을 만든 적이 있다.

 

자작나무는 씨로 번식시키지만 씨에 생활력이 없는 것이 많다.

이 씨는 가을에 따서 겨울 동안 보관했다가 봄에 뿌리는데, 저장을 잘못 하면 싹트는 힘이 줄어든다.

건조하고 찬 곳에 두어야 한다.

봄에 씨를 뿌리면 모래로 얇게 덮는데, 씨가 너무 가늘고 가볍기 때문에 비가 오면 씨 뿌린 곳이 패여서 못 쓰게 될 수 있다.

땅에 어느 정도의 습기만 있으면 곧 싹이 트게 된다.

 

자작나무는 어디까지나 깊은 산을 연상시키는 나무이므로 도시에는 잘 맞지 않는다.

오염된 공기에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밤과 낮의 기온 차가 큰 곳이 알맞다.

그리고 뿌리목 쪽에 개미가 달려들어 해를 주는 일이 많고, 심고 난 뒤 10년쯤 되면 하늘소가 줄기를 파먹게 된다.

 

자작나무는 뿌리가 땅속 깊게 들어가지 않으므로 바람이 강한 곳은 적당하지 않으며, 가지를 잘라주는 것을 매우 싫어해 유지 관리가 까다롭다.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고자 한다면 몇 그루의 나무를 모아서 심어야 한다.

도시 공원에는 심을 수 있지만, 가로수 또는 좁은 개인 집 뜰에는 적당하지 않다.

도심에 심을 때는 심은 뒤 15년 정도 되면 나무가 약해지기 시작하고, 20년쯤 되면 공해 때문에 대개는 죽게 된다.

그래서 자작나무는 되도록이면 산에 자연 상태로 두는 것이 좋다.

 

자작나무 목재는 단단하고 치밀하여 조각재나 특수용재로 쓰인다.

스웨덴 Sweden, 핀란드 Finland, 러시아 Russia와 같은 나라에서는 자작나무가 임산자원으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 목재도 값비싸게 매매되고 있다.

 

핀란드는 사우나 sauna(핀란드식 증기목욕에서 유래)의 본고장으로, 흥미롭게도 잎이 달려 있는 자작나무 가지를 다발로 묶어서 사우나탕 안에서 팔과 다리, 그리고 어깨를 두드린다.

혈액순환을 좋게 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사우나를 할 때 항상 자작나무 가지 다발을 사용한다.

 

자작나무는 가장 추운 환경에서 잘 견디는 나무이다.

북극에 가까워지면 난쟁이 자작나무가 얼어붙은 땅을 담요처럼 덮고 있다.

키가 커봐야 30~40센티미터를 넘지 못한다.

가장 극단적인 생활 조건을 이겨내는 것이 자작나무와 버들이다.

기름기 많은 껍질이 이 나무의 몸을 보호하는 것 같다.

 

 

○화촉을 밝히는 나무

 

강원도 인제 원대리의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출처-출처자료1)

 

자작나무는 줄기 껍질이 아름답고 목재가 쓸모가 많아 '나무의 여왕'이라 불린다.

또한 자작나무 줄기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면 모든 병이 물러나고 오래 살 수 있다고 한다.

 

영국 UK에서는 자작나무를 '숲의 숙녀'라고 부르고 있으며, 유럽 Europe의 난쟁이 자작나무는 예전에 이 나무로 예수를 매질했기 때문에 나무가 높이 크지 못하고 줄기도 바로 설 수 없다는 전설이 있다.

 

한편 러시아 Russia 농민들은 자작나무류 나무를 건강의 상징으로 믿고 있으며, 이들 나무로 만든 막대기로 몸을 두들겨 땀을 내는 습속이 있다고 한다.

이것을 한욕汗浴 sweat bath이라 부르고 있다.

 

자작나무는 한자로는 '화華' 또는 '화樺'로 쓴다.

결혼식을 화촉華燭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예전에는 촛불이 없어서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 대용으로 사용했고, 따라서 화촉을 밝힌다고 하면 결혼식을 말하는 것이 되었다.

내용인즉, 자작나무 껍질의 불로 어둠을 밝혀서 행복을 부른다는 것이다.

 

자작나무 껍질의 불은 가장 화려하고 행복한 결혼식을 뜻한다.

결혼식에는 촛불이 특히 필요했던 것 같다.

마태복음 25장 첫머리에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신랑이 오므로 등불을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등불 준비에 미련한 자들을 들어가지 못하였다"라는 대목이 있다.

 

"화촉을 밝히고" 할 때의 화촉은 색깔을 넣은 밀초라는 설명도 있으나, 우리나라 구식 혼례식에서도 촛대는 필요한 것이었다.

한낮 마당에 차려놓은 예식상에 불은 켜지 않아도 두 개의 촛대는 올려놓곤 했다.

자작나무류가 많은 지방에서는 이 나무에서 기름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들 나무는 곧 밝음과 빛이 상징이었다.

그러나 화촉은 반드시 결혼식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었고,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자작나무 껍질을 사용해 불을 밝혔다.

 

소식蘇軾의 시에 "그대(손님)를 보내는 숲 안에서 화촉(자작나무 껍질의 불)을 밝히고 있는데 타는 불꽃 향기 아름답구나(송객림중화촉향送客林中華燭香)"라는 대목이 있다.

이때 그대가 친구이든 애인이든 상관할 것 없다.

고요히 숲속에서 이별의 인사를 나누는데 화촉의 불을 밝혔다는 것에 정감情感이 느껴진다.

불을 밝히면서 우리 서로 갈라서자는 것일까?

 

또한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풍촉화연향風燭樺煙香"이란 대목이 있는데, 바람 앞에서 불안하게 타고 있는 촛불(화촉)에서 그윽한 향기를 맛본다는 것은 훌륭한 시인이 아니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경지이다.

우리도 바람 앞 촛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좋은 향기를 잃지 말자.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3(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6. 4. 2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