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85 - 전나무 본문

개마고원과 같은 북쪽의 추운 지방에서 원시림을 이루어 높이 40미터, 지름 1.5미터로 크게 자라는 전나무는 소나무과 전나무속에 속하는 늘푸른 바늘잎 큰키나무이다.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으로 강원 오대산 월정사, 경기 포천 국립수목원, 전북 부안 내소사를 꼽을 정도로 남한의 절 주변에서도 잘 자란다.
학명이 아비에스 코레아나 Abies koreana인 한반도 토착종 구상나무 Korean fir도 같은 전나무속 나무다.
나무는 좀 약하지만 곧바르고 옹이가 적어 큰 건물의 기둥으로도 쓰인다.

전나무란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해진다.
하나는 솔방울에서 나오는 우윳빛 나뭇진이 마치 '젖'이 나오는 것처럼 보여 '젖나무'로 부르다가 소리나는 데로 '전나무'가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잎의 끝이 바늘처럼 길게 뾰족하면서 솔방울 크기가 같은 전나무속의 분비나무나 구상나무에 비해 2배 이상 커다는 뜻의 비속어인 '젓'을 사용하여 '젓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학명은 아비에스 홀로필라 Abies holophylla, 영어는 needle fir(바늘전나무), 한자는 종樅 또는 회檜로도 쓴다.
전나무는 추운 지방에 많은 나무이다.
우리나라에 원래부터 있었던 전나무는 주로 북한의 고산지대와 고원지대에 자라고 있다.
남쪽 지방에는 주로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전나무가 심어졌는데, 그 자람이 볼 만하다.
일본전나무는 따뜻한 곳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거의 같은 이름이고 또 서로 닮은 전나무이면서도 하나는 한대성이고 다른 하나는 온대성으로 그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전나무와 일본전나무는 그 구별이 어렵지 않다.
전나무는 잎의 끝 쪽이 송곳 끝처럼 생겼지만, 일본전나무는 끝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전나무는 잎이 바늘처럼 생긴 늘푸른나무로, 줄기가 밋밋하고 가지의 든든함과 빽빽하게 달린 잎이라든가 나무줄기(수간樹幹)의 가지런함이 모두 모여 이 나무의 장엄한 기품을 보여 준다.
어떤 사람들은 전나무가 20~30년까지는 그 모양이 매우 아름답지만 그 뒤에는 흐트러져 볼품이 없어진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옳지 않다.
물론 젊음의 아름다움은 그 나름대로 인정할 수 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풍겨내는 이 나무의 당당한 위풍에 어떤 위압감마저 느끼게 된다.
○사찰의 전나무

전나무는 사찰 부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필자가 우리나라의 전나무를 가장 먼저 본 곳은 명봉사鳴鳳寺라는 절 입구의 길가에서였다.
명봉사는 경북 예천군 북쪽의 소백산 자락에 있는 절로 아름다운 산천에 둘러싸여 있다.
이 절로 향하는 길 양쪽에 서있는 장엄한 모습의 전나무들을 보고서 사람들은 더욱더 종교적 감정에 빠지게 된다.
무엇에 사로잡히는 느낌, 조심스럽고 긴장되는 느낌,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발견 따위의 이러한 감정에 빠지게 되는 것은 신앙으로 들어서는 예비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말문이 막히고 세속적 잡념이 씻겨내려가 양심이라든가 본심으로 표현할 만한 순수성이 몸 안에 남고 담겨질 때 절간의 신비는 더욱 빛을 내게 되는 것이다.
절간의 단청이, 황금빛의 불상이, 총 천연색의 불화佛畵가 전나무와 어울리지 않고서는 신앙의 분위기가 조성되기 어렵다.
전나무라는 대자연의 위압감과 신비감이 하나로 뭉칠 때 종교의 힘이 발산하게 된다.
참새처럼 파닥거리는 약한 가슴을 안고서 이 전나무 행렬 사이를 지날 때, 그 나무의 높음과 위풍이 필자는 스스로가 하루살이처럼 약한 미물로 생각되었다.
전나무는 필자에게는 위대한 종교였고 스승이었으며, 인간성 개조의 큰 힘이었다.
그것은 전나무가 위대한 자연이었기 때문이리라.
전나무 숲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강원도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일 것이다.
필자는 월정사의 그 역사도 귀중하지만, 이 전나무 숲은 그에 못지않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 숲의 나무들을 베어서 그 목재를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그것을 그대로 남겨두고 보는 데에는 이 숲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정신적인 영향이 더 소중하고 값지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라도 이 숲의 나무들을 베어서 이용하자는 데에는 단번에 거절할 것이다.
이 숲을 남겨둠으로써 보다 더 큰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연의 존재적 가치가 크게 인정됨을 알 수 있다.
○곧게 자라는 나무

중국의 진한秦漢시대 사전인 ≪이아爾雅≫에 <송엽백신왈종松葉栢身曰樅>이라는 글이 있다.
이 글은 '잎은 소나무와 닮았고 줄기는 잣나무와 닮은 것이 전나무(종樅)'라는 표현인데, 사실은 솔잎과 전나무 잎은 서로 많이 다르다.
그러나 늘 푸르다든가 잎이 바늘 모양이라든가 하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긴 하다.
전나무, 가문비나무 따위를 합쳐서 옛적부터 우리는 삼송杉松이라 했고, 잣나무를 홍송紅松이라 불러왔다.
잣나무 줄기의 내부가 붉은색을 띠고 있어 홍송이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전나무는 오래 되면 줄기 아랫부분의 굵은 곁가지가 거의 없어져 밋밋하게 되고 줄기가 굽는 일이 없기 때문에, 예전에는 궁궐이나 사찰, 관아 따위의 건물이나 큰 서원을 지을 때 기둥이나 대들보로 이용했다.
예전에는 목재를 다듬는 기구가 발달하지 않아 힘이 들었기 때문에, 전나무처럼 생긴 줄기는 큰 건물을 만드는 데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월정사로 들어가는 길가에 월정천이 흐르며 그 양쪽 산허리에 드문드문 전나무가 있고, 나무 아래에는 온갖 이름 없는 잡목들이 잔뜩 자라고 있다.
그 사이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전나무의 모양은 군계일학이란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사람 손을 타지 않으면 전나무 씨가 떨어져 어린 새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런데 이 전나무는 그늘에서 잘 견디는 음지나무(음수陰樹)이기 때문에, 어린 싹들은 잡목 아래에서 더 잘 태어나고 더 잘 자라날 수 있어 자연의 묘한 질서를 알 수 있다.
어린 전나무는 유연한 가지를 달고 있어 쉽게 잡목 사이를 비집고 올라와서 위로 솟아오르게 된다.
이렇게 해서 전나무 수가 불어나면 그 아래에 짙은 그늘을 만들고, 그곳에 있었던 잡목들은 햇볕이 부족해서 죽게 된다.
이런 면에서 전나무는 배은망덕한 나무로 생각될 수도 있다.
어릴 때 보호해 주던 잡목을 나중에 가서 힘이 생겼을 때 그것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에는 항상 치열한 경쟁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자연의 질서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전나무는 북한 고원지대 밀림의 주인공으로 우점종의 위치에 있다.
백두산 화산 활동의 역사와 함께 전나무 숲은 온갖 풍파를 겪으면서 살고 있다.
몇 그루가 모여 있는 전나무는 안정되고 격조 있으며 강인한, 그러나 한량없이 평화스러운 정취를 보여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심고 좋아하는 것 같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3(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6. 5. 5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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