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87 - 진달래 본문

진달래는 이른 봄날이면 양지 바른 산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봄꽃이다.
꽃잎으로 술을 담거나 찹쌀 부침개에 얹어 꽃전(화전花煎)을 부쳐 먹기도 한다.
'두견화杜鵑花'나 '참꽃'으로도 부른다.
한반도 전역에서 나며, 일본 쓰시마 섬, 중국 동북부, 몽골, 러시아 극동지방에도 분포한다.
진달래과 진달래속으로, 높이 2~3미터 정도로 자라는 갈잎 넓은잎 떨기나무이다.
학명은 로도덴드론 무크로눌라툼 Rhododendron mucronulatum, 영어는 Korean rhododendron(한국 진달래), 한자는 두견화杜鵑花로 쓴다.
○내 고향의 진달래

우리는 모두 진달래꽃 피는 마을에 살고 있다.
화려한 꽃대궐 안에서 살림을 하는 민족이라 그리들 착한 것인지.
우리의 착하다 못해 멍청할 정도의 기질은 이러한 꽃에서 길러진 것일까?
이러나저러나 자랑스럽다.
두견과 뻐꾸기는 서로 비슷한 새로서 이들이 온밤을 울어대고 피를 토해서 진달래꽃이 붉게 물들었다면 그 원통함으로 해서 진달래꽃을 바로 볼 수 없지만, 우선 그런 것은 잊어버리고 더 좋아하는 분홍의 부드러움에 매료되어 본다.
배꼽이 훤하게 보이는 바지저고리 입고 진달래꽃 꺾어 꽃방망이 만들어 산마루를 노루처럼 달릴 때, 한쪽 짚신은 잔솔가지에 걸려 벗어지기도 한 어릴 때의 고향이 꽃 때문에 자꾸자꾸 생각난다.
누군들 꽃피는 고향을 잊을 수 있겠는가?
아직은 찬바람이 소매 끝에서 겨드랑 쪽으로 파고드는데, 젊은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동생들은 밀가루, 찹쌀가루, 솥뚜껑을 이고 지고 진달래 꽃밭 산으로 올라갔었다.
남정네들은 물을 지고 산으로 올라와서는 바로 내려갔고, 결국 부녀자와 아이들의 꽃잔치가 되었다.
우리 마을에서 이러한 화전놀이가 열리는 장소는 해마다 거의 정해져 있었는데, 그것은 진달래 꽃밭이 자랑한 만한 데에도 있었고, 멀리 구비쳐 내려가는 큰 시냇물도, 또 닷새 만에 한 번씩 장이 서는 읍내도 멀리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달래를 두견杜鵑 또는 두견화杜鵑花로 부르는 것은 두견의 피 때문이지만, 어떤 사람은 진달래꽃이 두견새 입속 색깔과 닮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진달래꽃으로 두견주杜鵑酒를 담그기도 하는데, 이를 백일주百日酒라 해서 술을 담은 지 백 날 만에 마시면 좋다고 한다.
두견주의 색깔은 진달래 꽃잎 색깔과 비슷하며, 맛은 약간 쌉쌀한 편이다.
한번에 많이 마실 것은 못 되고 조금씩 마시는 것이 몸에 좋다고 한다.
다소 독성이 있는지 너무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이다.
두견주는 다른 것을 섞지 않고 진달래 꽃잎만으로 담근다.
독에 담아 넣은 뒤 밀봉해서 물이 흐르는 개울가 땅속에 묻어두고 꼭 백 날 되는 날에 꺼내서 맛을 본다고 한다.
찬 기운 속에서 술이 익어가야 하는 것일까?


진달래는 겨울에 잎이 떨어지는 떨기나무로 봄 잎이 피기 전에 꽃을 단다.
꽃 조각의 아랫부분은 서로 붙어 있는데 이것을 통꽃 또는 합생合生이라고 한다.
○산성 토양의 진달래
진달래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꽃밭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서울 남산 북쪽 사면에는 봄이 오면 진달래가 피어서 장관을 이룬다.
키 낮은 소나무가 드문드문 나 있는 산허리라면 어디에나 거의 예외 없이 진달래가 밭을 이룬다.
우리나라에서는 갈잎넓은잎나무숲으로 된 원래의 식생이 파괴되면 그 뒤 솔숲이 들어서고, 다시 솔숲이 상처를 받게 되면 그 뒤에는 진달래밭으로 변한다.
진달래는 숲이 상당히 황폐한 징조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사실 진달래가 많이 나 있는 곳은 임업적으로 생산성 또는 경제성이 낮다.
진달래는 대표적인 호산성好酸性 식물로, 진달래가 잘 자란다는 것은 그만큼 땅이 산성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높은 산에 나는 들쭉나무도 진달래과에 속하는데, 이것도 강한 산성 땅에서 무성한 자람을 보인다.
대체로 진달래과 나무들은 모두 그 특성으로서 산성 땅을 즐기고 있다.
진달래의 뿌리를 보면 털과 같은 잔뿌리가 있으며, 땅속 깊게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진달래는 땅이 얕아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거의 없고, 오히려 그러한 조건에서 다른 나무를 이겨내고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진달래는 건조에 약하다.
양지쪽을 좋아한다지만 산의 북쪽이나 동쪽 비탈에 많이 나는 것은 그곳 땅에 습기가 더 있기 때문이다.
○헌화가
우리나라에 나는 진달래는 꽃 색에 있어서나 꽃의 양에 있어서나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하고, 품종 개량을 하지 않아도 매우 아름답기 때문에 그대로 심을 만하다.
신라 33대 성덕왕聖德王(재위 702~737) 때(8세기) 미인 수로水路 부인이 남편 순정공純貞公을 따라 강원도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던 중 잠시 수레를 멈추고 쉬었는데, 그곳에는 진달래꽃이 만발해 있었다고 한다.
꽃을 좋아한 수로 부인이 꽃을 한 송이 따오라고 했지만 산이 워낙 험해서 사람들이 망설이고 있는 차에, 암소 한 마리를 몰고 오던 노인이(견우노인牽牛老人)이 진달래꽃을 따서 수로 부인에게 헌화獻花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진달래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가장 오래된 이야기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이것이 바로 헌화가獻花歌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원문은 다음과 같다.
"보라색 바윗가에 (자포암호변희 紫布岩乎邊希)
잡아온 암소 놓으시고 (집음호수모우방교견 執音乎手母牛放敎遣)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신다면 (오힐불유참힐이사등 吾盻不喩慚盻伊賜等)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화힐절질가헌호리음여 花盻折叱可獻理音如)"
이 밖에도 진달래를 소재로 하여 읊은 시와 노래는 너무나 많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중 헌화가에 해당하는 부분을 소개해본다.
떠나가는 사람에게 꽃길을 밟게 해주는 고운 마음과 높은 감성을 보여준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당나라 때 유정지劉庭芝의 시에 "연년세세화상사 年年歲歲花相似 세세연연인부동 歲歲年年人不同"이라고 하여 "해가 지고 또 가도 꽃은 옛 모습인데 사람만은 그렇지 않더라"하는 대목이 있다.
또한 위씨 형제들이 우애(화수지락花樹之樂)를 노래한 잠삼岑參의 시 <위원외가화수가韋員外家花樹歌>도 음미해볼 만하다.
"올해의 꽃은 지난해와 닮아 고우나 (금년화사거년호 今年花似去年花)
지난해의 사람은 올래 들어 늙었구나 (거년인도금년노 去年人到今年老)
비로소 알겠다 사람은 늙어가서 꽃만 못한 것을 (시지인노불여화 始知人老不如花)
애석하다 떨어진 꽃일망정 그대 쓸어버리지 말게나 (가석낙화군막소 可惜落花君莫掃)"
○진달래의 한자 이름과 두견새

진달래의 한자 이름은 두견杜鵑 또는 두견화杜鵑花로, 진달래를 두견화로 부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전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두견새는 자규子規, 불여귀不如歸, 두백杜魄, 촉조蜀鳥, 촉백蜀魄, 시조時鳥 따위로도 불린다.
두견새가 한 맺힌 울음으로 피를 토해서 그 피로 진달래꽃이 붉게 물들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하여 진달래가 생겨났다면 이 꽃은 슬픔에 뿌리박고 있다는 것이다.
두견새가 피를 토한 자리에서 진달래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역시 진달래가 어떤 슬픔을 몸속에 담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사연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마음에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시와 문장에도 등장하여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진달래를 '두견화'라고도 하는데, 이에 얽힌 이야기는 우리에게 흥미로움보다는 어떤 실감實感을 가지고 다가온다.
중국 촉나라 임금 두우杜宇의 호는 망제望帝로서, 그는 왕의 자리를 별령鼈靈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망제는 그 뒤 세상을 피하고(망제자도 望帝自逃) 다시 왕의 자리에 오르기를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후욕복위부득 後欲復位不得), 그래서 그는 죽어서 두견새가 되었다(사화위견 死化爲鵑)고 한다.
해마다 봄이 되면 밤낮 슬피 울어(매춘월간주야비명 每春月間晝野悲鳴), 촉나라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우리 망제의 혼이다(아망제혼야我望帝魂也)라고 했다고 한다.
"두견새가 와서 울제 봄은 적막하구나(촉혼제래춘적막 蜀魂啼來春寂寞)"하는 두견의 노래는 슬픔을 자아내게 한다.
밤낮 울고 울다 보면 목이 터져서 피를 토했을 것이고, 그것이 그곳의 진달래꽃을 물들였다는 것이다.
"두견새 천년을 두고 아직껏 누구를 원망하는고(촉백천년상원수 蜀魄千年尙怨誰), 울음 울음마다 피를 토해서 그 피가 꽃가지 위에 떨어진다(성성제혈개화지 聲聲啼血開花枝)"라는 당대 말기의 나업羅鄴의 시가 그것을 말해준다.
두견은 왜 우는가?
두견은 망제의 넋이 화해서 된 새이므로 그 울음은 인간에 호소하고 파고드는 그 무엇으로 보아야 한다.
두견새의 울음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고하고 있는(촉백성성사고인 蜀魄聲聲似告仁) 느낌이라는 시 구절은 우리를 감동의 세계로 몰아간다.
백거이白居易의 <비파행琵琶行>에도 두견새가 등장한다.
백거이가 나루터에서 배 안의 어떤 여인의 비파 타는 소리를 듣고 크게 감동하여 시를 지어 그 여인에게 보답했다는 것이다.
"두견새는 피를 토하면서 울고 원숭이 또한 슬피 운다 (두견제혈원애명 杜鵑啼血猿哀鳴)
봄 강물에 이웃해서 꽃피는 아침과 달뜨는 가을밤 (춘강화조추월야 春江花朝秋月夜)
때로 술을 들고 다시 술잔을 홀로 기울이노라 (왕왕취주환독경 往往取酒還獨傾)
어찌 산에 노래가 없고 마을에 피리소리가 없겠는가만 (기무산가여촌적 豈無山歌與村笛)
조잡하고 시끄러워 드을 만한 것이 못 된다 (구아조찰난위청 嘔啞嘲哳難爲聽)
오늘밤 그대의 비파 노래를 들은즉 (금야문군비파어 今夜聞君琵琶語)
선악을 듣는 듯 귀가 잠시 밝아진다 (여청선악이잠명 如聽仙樂耳暫明)
사양 말라 다시 앉아 한 곡조 들려주면 (막사갱좌탄일곡莫辭更坐彈一曲)
그대를 위해서 나는 비파행의 노래를 지으리라 (위군번작비파행 爲君飜作琵琶行)"
한편 '단종이 지은 두견새의 시(단종어제 端宗御製 자규루시子規樓詩)'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강원도 영월 청령포 숲속으로 몰려난 단종이 궁궐을 회상하면서 소쩍새 울 때면 함께 울어 피를 토했을 것이다.
단종은 이른 봄 두견새 울고 진달래 피어날 때 함께 피를 토하면서 눈물을 흘렸던 심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한 마리 원통한 새가 궁궐을 나와 (일자원금출제궁 一自寃禽出帝宮)
외롭게 푸른 산속에 갇혔다 (고신척영벽산중 孤身隻影碧山中)
밤이면 밤마다 잠 못 이루고 (가면야야면무가 假眠夜夜眠無假)
한은 해마다 쌓여만 간다 (궁한년년한불궁 窮恨年年恨不窮)
두견새 울음 다하고 남은 달은 희다 (성단효잠잔월백 聲斷曉岑殘月白)
피 흘린 골짜기 붉고 꽃잎 지고 (혈류춘곡낙화홍 血流春谷落花紅)
하늘은 아직 이 호소를 듣지 못했는가 (천롱상미문애소 天聾商未聞哀訴)
어쩌다 수심에 잠긴 나만 귀가 밝은가 (하내수인이독총 何奈愁人耳獨聰)"
○만병초

진달래 종류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병초萬病草가 있다.
만병초는 잎이 길고 크며 가죽처럼 두텁고, 표면은 진초록으로 광택이 있으며, 뒷면에는 갈색 털이 빽빽하게 나 있다.
우리나라 높은 산에 나고,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다.
줄기가 한 자 두 자 깊이의 눈에 묻혀 있어도 줄기에 달린 잎은 겨울 동안에도 파아랗고 강한 힘을 보여준다.
이러한 것이 신기한 인상을 주었는지 사람들은 이 나뭇잎을 달여 마시면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으로 믿었다.
가슴앓이, 배앓이, 신경통 따위에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만병초는 돌이 많은 남쪽 비탈에 많이 난다고 해서 석남石男으로도 불린다.
필자가 무성한 만병초 군락을 본 곳은 울릉도의 높은 산꼭대기였다.
줄기와 가지가 엉키고 설켜서 만병초 밭을 빠져나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열대 지방 해안가에 나는 맹그로브 Mangrove의 복잡한 뿌리(지상근地上根)을 생각나게 하는 만병초 밭이었다.
만병초의 줄기로 지팡이를 만들면 무병장수한다는 말이 있는데 믿을 만한 말은 아니다.
만병초는 여름에 피며 꽃색이 희다.
그러나 노랑꽃을 다는 노랑만병초, 분홍꽃을 다는 홍만병초도 있다.
이러한 만병초들은 모두 깊은 산속에 나며, 낮은 곳에 옮겨 심으면 대개 죽고 만다.
노랑만병초를 향수香樹라 하며, 줄기는 곧게 서고 여러 개가 모여서 나며 장백산에 가장 많다.
향기가 있어 제사 때 향불 피우는 데 쓴다.
돌 언덕에 나는 것은 마디가 생기는 까닭에 죽절향竹節香이라고도 한다.
노랑만병초는 만병초와는 달리 줄기에 비늘 조각(인편鱗片)이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고, 역시 높은 산에 난다.
만주 사람들은 이 나무의 나뭇진(수지樹脂)에서 일종의 말향抹香(가루 향)을 만들어 제사 때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전에 노랑만병초의 잎을 만병옆萬病葉이라 해서 약으로 썼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3(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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