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84 - 잣나무 본문

잣나무의 학명에는 물론 영어 이름에도 Korea가 들어가 있을 정도로 한반도 자생 토착종이다.
한반도 중북부에서 만주 동부를 거쳐 아무르강 Amur river(중국에서는 흑룡강黑龙江/黑龍江) 유역에 걸쳐 자란다.
열매인 잣은 식용하며 목재는 붉은 빛을 띠어 '홍송紅松'이라 하며, 재질이 좋아 기둥이나 고급 상자의 재료로 쓰인다.
소나무과 소나무속에 속하는 늘푸른 바늘잎 큰키나무인 잣나무는 20~30미터 높이, 1.5미터 지름 정도로 자라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착종 나무이다.
학명은 피누스 코라이엔시스 Pinus koraiensis, 영어는 Korean pine(한국소나무), 한자는 오엽송五葉松·홍송紅松·백자목柏子木·과송果松 따위로 표기된다.
○나무의 기백

잣나무는 한반도 북쪽 고산 지대에 많이 분포하며, 만주滿州 Manchuria 동쪽과 시베리아 Siberia에도 자생한다.
일본 임학자인 무라야마(촌산村山) 박사가 만주의 삼림식물대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잣나무의 분포 면적이 매우 넓게 나타나고 있다.
잣나무는 줄기가 굽는 일이 거의 없고 곁가지를 고루 사방으로 뻗어 단아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솔잎이 5개로 빽빽하게 달려서 기품을 높이고 색깔이 진해서 평범을 벗어난다.
또한 이 나무는 정제整齊(정돈하여 가지런히 함)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 푸른 상록常綠(나뭇잎이 사철 내내 푸름)은 불요不撓(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함)의 상징이고 굳은 절개를 뜻한다.
줄기가 굽지 않는다는 것은 높은 가치를 향해서 변함없이 죽죽 자란다는 것을 말한다.
약삭빠른 변절이 없고 눈치 보는 타협이 없다는 것이 잣나무의 위대성이다.
송백松柏(소나무와 잣나무) 같은 절개를 우리 조상들은 값진 것으로 여겼으며, 잣나무를 보면 누구라도 그러한 생각에 빠지게 된다.
자연의 힘은 위대한 것이다.
자연을 보존하고 그 자연에 접함으로써 지혜로우면서도 고결한 인성을 함양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물질문명의 병폐에 대한 인류의 성스러운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잣나무의 기품을 우리의 스승으로 삼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인류의 가치관에 군데군데 상처가 생겨나고 있을 때, 그것을 치유할 명약의 하나로 푸른 자연의 힘을 믿고 싶다.
나무의 지조를 통념화할 수 있고 또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에서 감화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나의 심성과 나의 사랑은 우거진 숲, 깊은 계곡에 머문다(애지구학愛止丘壑)"라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철학은 자연에서 배울 것이 지대하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신라의 화랑들이 심산유곡을 찾아 마음과 몸을 단련하고 소나무를 심어 자연을 가꾸었다는 것은 이들이 높은 기개를 함양하는데 필요했음을 말해준다.
○한자 이름
잣나무는 우리나라 자연 경관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인 김삿갓이 금강산을 유람하여 읊었다는 시구 중에서 "소나무와 잣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를 돌고 도니"라는 뜻의 "송송백백암암회松松柏柏岩岩廻"의 송松은 소나무일 것이고 백柏은 잣나무 또는 측백나무를 뜻하는 글자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날 시와 문학을 다룬 우리나라 선비들은 외관이 비슷한 나무를 모아서 하나의 이름으로 표현한 것 같다.
반면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편백扁柏 종류, 측백側柏 종류, 향나무(백전柏槇, 단백團柏, 회백檜柏) 종류에 따라 '백柏'자를 넣고 있다.
중국은 또한 가문비나무 종류와 전나무 종류는 일반적으로 '삼杉'자를 쓰고 있고, 잣나무는 홍송紅松, 해송海松, 과송果松, 유송油松, 오수송五鬚松, 백자목柏子木, 오엽송五葉松, 신라송新羅松으로 써서 '백柏'자는 쓰지 않고 있다.
잣나무를 신라송新羅松으로 부르게 된 유래는 다음과 같다.
신라시대 사신들이 중국으로 건너갈 때 잣(송자松子)을 많이 가지고 가서 팔았는데, 그때 중국 사람들은 이것을 신라송자新羅松子라 불렀고 따라서 '신라송'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잣을 옥각향玉角香 또는 용아자龍牙子라고도 불렀으며, 그때 잣이 매우 귀중한 식품으로 여겨져 선물용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잣은 우리나라 임산물로서 최초로 수출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이전에 다른 임산물이 상품으로서 외국에 나간 일이 있다는 기록을 찾지 못하는 이상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개국해서 최초로 수출한 임산물은 스트로브잣나무 목재라 하는데, 잣나무라는 점에 있어서 서로 통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라고 할까?
≪논어論語≫에 나오는 송백松柏은 공자가 뜰 앞에 서 있는 향나무를 보고 말한 것이라 한다.
'松'과 '柏'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로 뭉쳐서 향나무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태백이 노자묘老子墓를 찾았을 때 읊은 시 한 구절에 "홀로 상심하노라 천년 뒤까지 쓸쓸히 남아 있을 송백松柏의 숲"이란 구절이 나오는데, 이때의 송백도 묘 옆에 우거져 있는 향나무를 말하는 것이라 한다.
명부冥府(저승)의 영혼과 세월을 함께할 향나무는 쓸쓸할 수밖에 없다.
한편 다산 정약용은 '백자柏子'라 제목을 붙이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백자는 측백側柏이라. 이아爾雅에 말하기를 백柏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그 잎이 편평한 것은 측백 또는 측엽側葉이고 그 인仁을 백자라 한다. 해송海松(잣나무를 말함)은 유송油松, 과송果松, 오수송五鬚松을 말하며, 때로는 오립송五粒松이라고도 하며 그 인을 해송자海松子라고 한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잣나무(고송古松)를 백柏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과송판果松板을 백자판柏子板으로 혼동하고 있는 것도 잘못이다."
정약용의 서술을 살펴보면 그때의 사람들은 잣나무를 백柏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따라서 문객들도 소나무와 잣나무 등속을 송백松柏으로 묶어서 표현한 것으로 짐작된다.
송백 같은 우리 민족의 절개가 세월 따라 휘엉청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잣나무 숲이 줄어들었기에 절개도 희석되어 가고 있단 말인가?
○한시 속의 잣나무
잣나무는 우리나라에 집중 분포해 있고 만주와 시베리아, 아무르강의 지류인 우수리강 Usuri River 부근, 그리고 일본에도 약간 분포하고 있다.
만주 동부 지방을 제외한 중국 본토에는 없으므로 중국의 옛 시문에 나타나는 송백에는 잣나무가 끼어들지 못하고 있다.
두보의 시에 "취백은 짙게 색깔을 간직하고, 붉은 능금이 멀리 서리를 얻었더라(취백심류경翠柏深留景 홍리형득상紅梨逈得霜)"라는 것이 있다.
이때의 취백이 어떠한 나무룰 말하는지 필자로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역시 두보 시에서 "금속퇴 앞에 우거진 송백의 그늘을 당신은 보았는가(군불견금속퇴전송백리君不見金粟堆前松柏裏) 영광을 등에 올려놓고 뛰던 그때의 준마는 이제 보이지 않고 다만 바람을 마시는 새들만 보이는 것이···"라고 한 곳에서 금속퇴金粟堆는 왕릉王陵으로, 이때의 송백도 묘 옆이라 향나무로 볼 만한 것이 아닐까 한다.
"송백 우거진 곳에 비어 있는 궁궐을 보고 (송백첨허전松柏瞻虛殿)
모래 먼지 일고 있는 저녁 길에 섰노라 (진사입명도塵沙立瞑途)"
위 두보 시의 송백은 향나무로 보기 어렵고 소나무 종류나 가문비나무, 전나무 따위로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것이 이곳 풍광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한편 소식의 글에 "돌아갈거나, 돌아가. 가난하여도 내 집으로 돌아갈거나. 어찌 추창惆愴하게(실망하여 슬프게) 홀로 슬퍼할 건가. 고향 집 앞 길은 거칠었지만 송국松菊은 아직 남았노라"라는 대목이 있다.
이는 무엇일까?
따지는 것이 이상하겠지만 높고 푸른 나무로 생각하면 족할 것이다.
○잣나무의 진가

1944년 가을 백두산 부근 밀림지대에서 겨울을 날 때 경험한 것으로, 그곳 화전민들은 가을 감자 수확과 감자 녹말내기 일이 끝나면 잣나무 숲을 찾아갔다.
잣송이를 모을 때로 모아 잣알로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겨울 내내 온 식구가 모여 앉아 잣을 먹는다.
그들은 몇 길의 눈이 쌓여 있어도 잣알의 기름기로 백두산의 추위를 견뎌내곤 했다.
우리 민족은 위대하다고들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잣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로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더 Himalayan cedar)또는 백향목栢香木(레바논시더 cedar of Lenbanon)를 한결같이 꼽는데, 모양이나 색깔이 잣나무와 비슷하다.
아니 잣나무가 더 아름답다.
씩씩하고 웅장하며, 거기에 부드러움이 있다.
그래서 잣나무를 코리언시더 Korena cedar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외국 사람들은 코리언 파인 Korean pine으로 부르고 있으며, 이 역시 받아들일 만한 이름이다.
잣나무는5개의 잎이 모여서 한 다발을 만들고 있지만, 소나무 종류는 종에 따라 한 다발에 나는 솔잎의 개수에 차이가 많다.
≪격물총론格物總論≫에서는 잎이 3개씩 나는 것을 '괄자송栝子松'이라 하고, 5개씩 나는 것을 '송자송松子松'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시진의 ≪본초本草≫에도 이와 비슷한 설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도 잎이 한 다발에 3개씩 나는 것에 주목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중국은 우리나라의 잣을 탐내어 많은 양을 공물貢物로 요구해왔고, 조선은 그것을 수집해서 바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잣 하면 지난날의 중국이 몹시 미워진다.
물론 우리나라 조정에서도 잣송이를 포함하여 많은 임산물을 공물로 거두어들였고, 잣송이는 한 송이, 두 송이처럼 송이(소응이所應伊)로 계산하고 있었다.
대전大殿(임금이 거처하는 궁전)에 바치는 임산물에는 햇잣(신백자新柏子), 생송이, 산포도, 은행, 개암(진자榛子), 배, 홍시, 석류, 유자, 모과, 호두 따위가 있고, 그 밖에 선혜청宣惠廳(조선시대에, 대동미와 대동목, 대동포 따위의 출납을 맡아보던 관아), 장흥고長興庫[고려 및 조선 시대에, 돗자리·유둔油芚(이어 붙인 두꺼운 기름종이) 따위의 관리를 맡아보던 관아], 풍저창豐儲倉(고려 및 조선 시대에 중앙의 모든 경비經費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혜민서惠民署(조선시대에 둔 삼의원의 하나로서, 가난한 백성을 무료로 치료하고 여자들에게 침술을 가르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따위에서 요구한 공물로는 괴화槐花(한방에 사용되는 회화나무 꽃), 매실, 전죽箭竹(화살대), 저주지楮注紙(닥나무 껍질로 만든 두꺼운 종이), 옻(칠漆), 송진松津(송지松脂: 소나무나 잣나무에서 분비되는 끈적끈적한 액체), 대추, 산사山査(산사나무), 구기자, 개나리(연교連翹), 치자, 칡꽃(갈화葛花), 오배자, 오갈피, 복분자, 으름덩굴(목통木統) 따위로 그 종류가 다양했다.
잣송이를 따다 공물로 바치는 데에는 민중의 큰 고생이 뒤따랐을 것이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3(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구글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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