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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학의 탄생과 발전 과정 1: 두 번은 없다

새샘 2026. 6. 1. 21:02

남미 원주민에게 천연두는 자신들만을 골라서 공격하는 공포의 존재였다.(출처-출처자료1)

 

천연두(마마, 두창) variola는 흉측한 피부 발진 skin rash이 온몸을 뒤덮는 바이러스 virus 질환으로 치명률이 30퍼센트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천연두로부터 다행히 살아남은 사람들의 얼굴엔 흉한 곰보 자국이 평생 훈장으로 남겨졌는데, 이런 피부 흉터가 고대 이집트 Ancient Egypt 미라에서 발견될 만큼 천연두는 인류와 오랜 시간 함께한 질병이다.

중국과 인도의 문헌에도 발견되는 천연두는 로마 제국 Roman Empire에도 큰 피해를 주었으며 십자군 전쟁을 통해 아랍 세계에도 전파되었다.

하지만 유럽의 천연두가 남아메리카 South America 원주민들에게 끼친 영향은 세계사적으로, 또 면역학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스페인 Spain 탐험가 에르난 코르테스 Don Hernándo Cortés(1485~1547)가 1519년 단 600명의 군사로 남아메리카의 거대한 아즈텍 제국 Aztec Empire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의 승리가 아닌 천연두의 승리였다.

코르테스 병사들 중에 섞여 있던 천연두 환자의 병원체 때문에 아즈텍 제국의 병사와 원주민들은 천연두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남아메리카에서 무섭게 퍼져나간 천연두바이러스 smallpox virus는 1520년부터 약 10년 동안 남아메리카 전체 인구 3분의 1의 생명을 앗아갔다.

스페인 군인을 피해 원주민만 골라서 공격했던 천연두의 위협에 남아메리카인들은 적과 싸우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해야 했다.

남아메리카 원주민에게만 천연두 피해가 집중되었던 이유는 그들에게 천연두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천연두바이러스는 원래 소가 가지고 있었던 우두바이러스 cowpox virus가 변이된 것이다.

따라서 유럽인들은 소를 키우면서 알게 모르게 모두 우두바이러스를 접하면서 면역을 얻을 수 있었지만, 칠면조나 라마 같은 소규모 가축만 사육했던 남아메리카인들은 처음 접하는 천연두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서기전 4세기  당시 펠로폰네소스 전쟁  Peloponnesian War 당시, 아테네 Athens에 엄청난 역병이 돌아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질병을 아테네역병 Plague of Athens이라고 한다.

그리스 Greece 역사가 투키디데스 Thucydides(서기전 465 무렵~서기전 400년 무렵)는 그 질병에 대해 "두 번은 없다"라고 기록했다.

아테네 역병에 걸렸다가 회복된 사람은 그 병에 다시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환자들을 돌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투키디데스는 면역 현상에 대해 기록을 남긴 최초의 학자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약 2,000년 뒤 중국과 이슬람 Islam 지역의 사람들도 천연두에 대해 같은 현상을 발견했다.

확실히 한 번 천연두를 앓았던 사람은 다시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드디어 그들은 천연두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일단 천연두에 한 번 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천연두에 걸린 뒤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기에 그들의 고민은 다시 깊어졌다.

'어떻게 하면 천연두에 죽지 않을 정도로 약하게 걸릴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치명율이 높은 천연두가 유행할 때가 있고 치명율이 낮은 천연두가 유행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점에 착안해 사람들은 천연두에 약하게 걸리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것은 약한 천연두에 걸린 환자들의 피부 딱지와 고름을 분말로 만들어 건강한 사람의 콧구멍이나 상처 난 피부에 집어넣는 방법이었다.

또는 피부 발진에서 흐르는 분비물을 실에 적셔 말려놓았다가, 피부를 절개한 틈으로 그 실을 끼워 넣는 방법도 많이 사용했다.

이처럼 인간의 천연두 분비물을 이용해 천연두를 예방하려 했던 방법을 천연두접종(마마媽媽접종, 인두人痘접종 variolation)이라고 한다.

 

 

자신의 아들 에드워드에게 튀르키예의 천연두접종을 과감히 시행하고 유럽에 전파한 영국 귀족이자 시인이었던 메리 몬태규는 지혜롭고 열정적인 여인이었다.(출처-출처자료1)

 

중국과 이슬람 지역에서 성행했던 천연두접종을 튀르키예 Türkiye에서 근무 중이었던 영국 UK 외교관의 아내 메리 몬태규 Mary Wortley Montagu 부인(1689~1762)이 접하게 되었다.

그녀 역시 천연두를 앓은 적이 있어 열굴에 심한 곰보 자국이 있는 상태였다.

몬태규 부인은 자신의 아이들을 천연두로부터 보호해주고 싶었기에 1718년 고심 끝에 자신의 아들에게 튀르키예의 천연두접종을 시행했다.

다행히 결과가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모국인 영국으로 돌아온 몬태규 부인은 영국 왕실에 적극적으로 천연두접종의 효과를 홍보했다.

 

3년 뒤 그녀의 홍보에 힘입어 영국에서 최초로 백신 임상시험이 실시되었다.

천연두를 대상으로 천연두접종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험 참가의 보상으로 사면을 약속받은 사형수들이 그 대상이었다.

다행히 임상시험의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그로부터 약 8개월 뒤 영국 왕족을 대상으로 하는 천연두접종이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천연두접종은 완전하지 않았다.

접종에 사용되었던 천연두의 바이러스 정도가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연두를 접종받고 오히려 천연두에 심하게 걸려버린 사람들이 속출했으며 사망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자연적으로 천연두에 걸려 죽는 것과 건강했던 사람이 예방접종 뒤 천연두에 걸려 죽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사람들은 천연두접종을 주저했지만 천연두가 더 두려웠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천연두접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좀 더 안전한 방법은 없을까?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면역 이야기'(반니, 2023)

2. 구글 관련 자료

 

2026. 6. 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