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7부 세계의 중심에 선 서양 - 22장 제국주의와 식민주의(1870~1914) 3: 제국주의 2 - 신제국주의와 그 발생원인 본문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7부 세계의 중심에 선 서양 - 22장 제국주의와 식민주의(1870~1914) 3: 제국주의 2 - 신제국주의와 그 발생원인
새샘 2026. 6. 2. 19:19
| 제국의 주요 충돌들(1839~1905년) | |
| 제1차 아편전쟁, 중국 대반란, 인도 하르툼 포위, 수단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파쇼다 위기, 수단 미국-에스파냐 전쟁 보어 전쟁, 남아프리카 의화단 운동, 중국 러일전쟁 |
1839~1842년 1857~1858년 1884~1885년 1896년 1898년 1898년 1899~1902년 1900년 1904~1905년 |
모든 역사적 사건은 많은 원인을 갖고 있다.
신제국주의의 범위, 강도, 장기간에 걸친 중요성 따위와 더불어 그것이 발전하게 된 원인은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영향력 있고 오래 지속된 해석은 제국주의의 경제적 역동성을 지적한다.
1902년 초 영국 UK 작가 J. A. 홉슨John Atkinson Hobson(1858~1940)은 자신이 '아프리카 쟁탈전 Scramble for Africa'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부유한 금융가 소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추진되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납세자들은 정복 및 점령 군대에 보조금을 지불했고 언론인들은 대중의 '맹목적 애국주의의 방관자적 욕망'을 자극했지만, 홉슨은 제국주의 이면에 있는 핵심적 이해관계는 국제적 자본가들의 욕망이라고 믿었다.
그는 격렬한 경제적 경쟁이 보호주의와 독점을 야기하고 있던 시기에 서유럽 Western Europe이 산업이 필요로 하는 시장을 제공하지 못할 때 투자가들은 해외, 즉 식민지들에서 투자 기회를 확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홉슨은 투자가들과 국제 은행가들이 중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나라에서는 어떤 수지맞는 투자도 할 수 없는 상당한 저축이 이루어진다. 이 저축들은 다른 곳에서 사용될 곳을 찾아야만 한다."
하지만 투자가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투자가들과 국제은행가들의 이해관계는 식민지 무역, 군대, 무기 산업 따위와 관련된 제조업자들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다.
홉슨은 개혁가이자 사회비평가였다.
그의 요점은 국제금융 및 기업이 영국의 진정한 국가적 이해관계에 대해 왜곡된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홉슨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영국의 제국주의적 경향에 대한 대항 수단이 되기를 희망했다.
여전히 널리 읽히는 홉슨의 분석은 러시아 Russia의 사회주의자이며 혁명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Vladimir Ilyich Lenin(1870~1924)에서 기원한 제국주의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비판에 영감을 주었다.
홉슨처럼 레닌은 제국주의의 경제학을 강조했다.
하지만 레닌은 홉슨과는 달리 제국주의가 19세기 말 자본주의의 필수적인 부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국주의가 창출한 경쟁과 독점은 국내의 이윤을 낮추어왔다.
레닌은 자본주의자들이 이윤을 더욱 낮추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일이기는 하지만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함으로써 국내시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내부적 모순'이 자본가들로 하여금 해외에서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고 투자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제국주의를 낳았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민주적 개혁을 향한 홉슨의 희망은 부적절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자체를 전복시키는 것만이 제국주의적 팽창, 갈등, 폭력 따위를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레닌은 많은 사람들이 제국주의 전쟁이라고 생각한 제1차 세계대전의 절정기에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 Imperialism: The Highest Stage of Capitalism≫(1916)를 출간했다.
혁명만이 자본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세계를 재난 직전의 상태로 몰아넣은 세력들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그의 주장에 비추어보면 이 책의 출간은 정말로 시의적절했다.
오늘날 역사가들은 경제적 압력들이 비록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제국주의의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이라는데 동의할 것이다.
영국의 경우 대략 약 40억 파운드의 해외 투자액 중 절반이 제국 내에 투자되었다.
홉슨, 레닌, 그리고 그들의 동시대인들이 정확하게 기술했듯이 19세기 말의 런던 London은 빠르게 세계의 은행가가 되고 있었다.
모든 서유럽 국가에서 원료에 대한 수요는 식민지를 필수적인 투자처로 보이게 만들었고, 점점 더 제국주의는 해볼 가치가 있는 정책으로 여겨졌다.
식민지에서 생산된 고무, 주석, 광물 따위는 유럽의 산업에 공급되었고 식량, 커피, 설탕, 차, 양모, 곡물 따위는 유럽의 소비자에게 공급되었다.
하지만 경제적 설명에는 한계가 있다.
식민지 시장들은 유럽 제조업자들의 필요에 부응하기에 전반적으로 너무나 빈약했다.
유럽인 Europeans이 미친 듯이 쟁탈전을 벌였던 아프리카 Africa에서 투자가들은 가장 빈약한 최소한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해외투자와 관련해 1914년 이전에 독일 Germany 자본의 극히 일부만 독일의 식민지들에 투자되었고, 프랑스 France 자본의 단지 5분의 1만 식민지에 투자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는 독일에 대항해 동맹국인 러시아를 안정시킬 것이라는 기대에서 자국의 모든 식민지보다 더 많은 자본을 러시아에 투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계산법은 일부의 경우에만 명확하다.
유럽인은 식민지가 이윤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했다.
예컨대 프랑스 신문들은 콩고 Congo가 '엄청난 양'의 금, 구리, 상아, 고무를 보유한 "풍요롭고 활발하며 비옥한 처녀지"라고 보도했다.
이러한 희망은 제국이 거둔 이윤이 유럽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지라도 확실히 팽창주의에 기여했다.
제국주의에 대한 두 번째 해석은 경제적 이해관계보다 전략적이고 국가주의(내셔널리즘 nationalism)적인 동기를 한층 더 강조한다.
국제적 경쟁관계는 지극히 중요한 국가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는 믿음을 강화시켰고, 유럽 열강들로 하여금 저개발국가들 및 속령들의 정부와 경제 양쪽을 통제하기 위해 더욱 결의에 차게 만들었다.
프랑스 정치가들은 1870~1871년 프로이센 Preußen 또는 Preussen에게 수치스런 패배를 당하면서 상실한 위신과 명예를 되찾기 위한 수단으로서 제국주의를 지지했다.
반면에 영국은 독일과 프랑스가 산업화의 속도를 가속시키는 것을 경계의 눈으로 보았고, 자국이 이미 갖고 있거나 가질 가능성이 있는 세계시장을 상실할 것을 염려했다.
뒤늦게 근대 국가로 통일된 독일은 해외 제국을 국가적 생득권生得權(선천적으로 보유한 권리)이자 강대국 클럽 club에 진입하는 방편으로 보았다.
또 다른 비경제적 해석은 제국주의와 19세기 국가 및 국가 건설 사이의 새로운 연관성을 강조한다.
국가들이 제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항상 자명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 통일의 건설자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 Otto von Bismarck(1815~1898)는 해외에서의 식민주의는 유럽 대륙의 한층 더 심각한 문제들로 인해 발생한 소동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하지만 1890년대에 독일은 프랑스와 영국과 더불어 영토 획득을 위한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기업가 및 탐험가에서 작가(예를 들어 영국의 러디어드 키플링 Rudyard Kipling) 및 정치이론가에 이르기까지 식민주의의 옹호자들은 신생 국가에 제국주의가 왜 중요한가를 상세히 설명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식민지는 군사력을 과시하는 것 이상을 뜻했다.
예컨대 식민지는 한 국가의 경제적 활력, 확신의 강도, 시민의 의지, 법의 위력, 문화의 힘 따위를 보여주었다.
하나의 강력한 국가 공동체는 새로운 땅과 새로운 사람들에게 진보를 가져다주면서 다른 나라들을 동화시킬 수 있었다.
독일의 한 팽창주의 지지자는 식민주의를 '독일 통일 욕구의 국가적 연장선'이라고 표현했다.
독일 식민협회, 프랑스 식민당, 영국 왕립식민학회 같은 로비(막후교섭) lobby 집단은 선풍적 인기를 끄는 해외 정복의 이야기가 지닌 매력을 인식했던 신문들과 유사한 말투로 제국에 찬성하는 주장을 펼쳤다.
국가 건설의 한 방식으로 나타난 제국주의는 특정한 이해관계나 세속적 비용편익 분석을 초월해 대두한 것처럼 보인다.
문화, 법, 종교, 산업 따위는 없어서는 안 되는 국가적 산물이었고, 그것의 가치는 해외로 수출되고 방어됨으로써 상승했다.
세 번째는 제국주의가 중요한 문화적 차원을 갖고 있었다는 해석이다.
한 프랑스 외교관은 영국의 제국주의 모험가 세실 로즈 Cecil John Rhodes(1853~1902)를 '사상으로 주조된 군대'라고 묘사했다.
제국주의 자체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상으로서의 제국주의는 스코틀랜드 Scotland의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 David Livingstone(1813~1873) 같은 탐험가의 생각을 사로잡았다.
그는 영국의 아프리카 정복이 동아프리카의 노예무역을 종식시키고 '흑인 가족에게 공동 국가 체제를 도입하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러디어드 키플링 Rudyard Kipling(1865~1936)은 <백인의 짐 The White Man's Burden>이라는 시를 썼는데, 지구상의 '야만적'이고 '이교도적'인 지역이라고 생각하는 곳을 '문명화'하기 위한 유럽인의 사명을 언급한 악명 높은 시였다.
노예무역, 전염병, 무질서, 문맹 따위에 대항해 무기를 드는 것은 많은 유럽인에게 아프리카 및 아시아 Asia를 침략하기 위한 이유일 뿐만 아니라 어쨌든 우월한 문명의 의무이자 증거처럼 보였다.
이런 신념이 제국주의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제국 건설이 어떻게 서양에 지닌 자기 심상(이미지 image)의 중심이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마디로 제국주의의 경제적·정치적·전략적 원인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제국주의의 동기들이 어떻게 중첩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전략적 이해관계는 종종 정책 입안자에게 경제적 문제가 걸려 있다고 믿게 만든다.
군대, 국제 금융가, 선교사, 국내의 식민지 막후교섭(로비) 집단과 같은 서로 다른 제국주의의 후원자들은 제국주의의 목적과 이득에 대해 상이하면서도 상충되는 미래상(비전 vision)을 가졌다.
제국주의 정책은 장기적인 계획의 문제라기보다는 특별한 상황에 대한 즉흥적인 일련의 신속한 대응이었다.
국제적 경쟁관계는 정책 입안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야망을 분명하게 하도록 이끈다.
그래서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을 확립한 탐험가, 사업가, 정착민 집단은 본국 정부가 이를 인정하고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생각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유럽인은 이 무대에서 유일한 주역은 아니었다.
그들의 목적과 수완은 자신이 관련된 나라들에서의 사회 변화들로 인해 형성되었다.
다시 말하면 그것들은 식민지인의 독립적 이해관계와 함께 자주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 스스로가 이해할 수 없고 멈추기에는 무력하다는 것을 발견한 저항 따위로 형성되었다.
19세기의 제국주의를 '새로운 것'이라고 부를 이유가 있는가?
경제 통합이나 유럽인에게 유리한 투자 및 무역 노선의 발전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라틴아메리카 Latin America(중남미), 중국, 오스만 제국 Ottoman Empire에서 실시되었던 비공식적이면서도 암암리에 진행된 유럽의 권력 행사는 좀 더 장기적인 과정이었다.
이런 종류의 권력은 근대 시대를 통해 계속 팽창했다.
그러나 19세기 제국주의는 유럽 안에서의 발전과 유럽인에 대한 원주민의 저항으로 나타난 새로운 측면이나 특정한 특색을 지녔다.
※출처
1. 주디스 코핀 Judith G. Coffin·로버트 스테이시 Robert C. Stacey 지음, 손세호 옮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하): 근대 유럽에서 지구화에 이르기까지, Western Civilizations 16th ed., 소나무, 2014.
2. 구글 관련 자료
2026. 6. 2 새샘
'글과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면역학의 탄생과 발전 과정 1: 두 번은 없다 (1) | 2026.06.01 |
|---|---|
| 이중섭 '신문을 보는 사람들' (0) | 2026.06.01 |
| 점령하기 애매한 계륵 같은 땅들 (1) | 2026.05.29 |
|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7부 세계의 중심에 선 서양 - 22장 제국주의와 식민주의(1870~1914) 2: 제국주의 1 - 서론 (1) | 2026.05.28 |
| 이토록 재밌는 면역 이야기 9: 능동면역과 수동면역 (0) | 2026.05.2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