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그림 대결3 본문
두 천재화가의 그림대결은 이제는 동제각화가 아닌 각자 마음대로 백성의 삶을 그려내는 것이다.
정조는 이 그림들을 육조관원과 함께 독화(讀畵)하겠다고 한다.
그림은 수백 자의 글로 설명할 수 없는 풍경을 단 한 장의 그림으로 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홍도는 타작마당과 대장간을 돌았고, 아이를 업든 보부상 부부도 열심히 따라 다녔다.
윤복은 기생집에서 머물면서 하루종일 기생들을 관찰했고, 무당의 굿판과 아녀자들과 중들의 싸움판을 싸돌아 다녔다.
그런 다음 둘다 도화서로 돌아와 화실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려낸 것이다.
정조 앞에 두 화원은 동시에 두루마기를 펼쳤다.
홍도의 그림은 넓은 마당에서 일꾼들이 타작을 하고 있는 모습.
화면 가운데는 나락단을 들고 알곡을 털고 있는 4명의 젊은 농군, 앞쪽에는 흩어진 알곡을 쓸어모으고 있는 나이든 농군, 그리고 뒤쪽에는 털 나락단을 가득 지게에 지고 오는 나이든 농군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즐겁게 얼굴 가득이 웃음 띤 모습이다. 그림 중에 수심이 가득찬 모습으로 있는 자는 단 한 명으로, 오른쪽 뒤에 낟가리 위에 자리깔고 한 팔로 머리베고 담뱃대 문 모습으로 편안히 누워 농군들을 감시하고 있는 양반 뿐이다.
정조 묻기를, "어찌 고된 타작일을 하는 일꾼들은 모두 입가 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는데 유독 낟가리에 기대어 음풍농월하는 양반의 표정이 저렇듯 어두운 것이냐?"
홍도 답하기를, "이는 열심히 일하고 땀흘리는 자들의 즐거움을 나태한 자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천한 일을 하지만 귀한 양반이라는 자들의 삶이 부럽지 않은 것이 그 까닭입니다."
이 말을 들은 정조는 "그렇다. 조선은 대대로 일하는 자를 업신여기고, 사대부라 하여 몸 움직이기를 게을리하였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삶의 기쁨이란 정직한 노동의 대가로 오는 것임을 말이다."
말을 맺은 정조는 윤복의 그림으로 눈길을 돌린다.
화사한 갈색의 기운이 도는 화폭 위에 세 명의 남녀가 보인다. 살집 좋은 사내 하나가 탕건을 쓰고 방 안에 앉아 있다. 모습으로 보아 이곳에 매우 익숙한 사내다. 마루에는 생황을 든 기생이 앉아 있다. 이 둘은 동시에 중문을 들어서는 전모 쓴 기생을 바라보고 있다. 이 기생 뒤에는 키작은 사내아이가 시중드는 모양으로 따르고 있다.
이 그림을 본 홍도는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윤복 그림답지 않게 간결하고 소박한 구도에 단순한 배경. 바로 자신의 그림 구도가 아닌가. 하지만 인물은 여지없는 윤복의 그림. 윤복은 홍도의 뛰어난 점을 자신의 그림에 차용하였던 것이다.
홍도는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끄러웠다. 윤복이 자신을 따르고 있음이 자랑스러웠고, 윤복의 그림을 따르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제 홍도는 더 이상 윤복의 스승이 아니었고, 윤복 또한 홍도의 제자가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말없이 가르치고 배우는 스승이자 제자인 것이다.
"이 정경의 뜻을 알기가 어렵구나. 기방의 한때인것만은 확실한데..." 정조가 읊조린다.
윤복이 긴 숨을 들이마시고 입을 연다.
"이들은 지금 큰 거래를 하는 중입니다. 계집을 사고파는 것이지요. 돈 많은 양반이 기방에서 제일가는 기녀를 첩실로 들이려는 것입니다."
정조는 말없이 그림만을 오랫동안 쳐다보는 것이었다.
2007. 11. 22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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