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동제각화 대결2 본문

글과 그림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동제각화 대결2

새샘 2007. 11. 13. 11:28

정조가 낸 두번째 동제각화 주제는 '정변(井邊)' 즉 우물가의 백성들의 삶을 그려 사흘 후에 내라는 것이다.

동제각화는 두 천재화가의 대결인 동시에 정조가 두 화가와 겨루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과연 우물가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그걸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정조는 이런 생각만도 즐거워 죽을 지경인 것이다.

 

단원과 혜원은 다음날 새벽 재물과 권력을 얻은 신흥부자들이 건설한 자기들만의 새로운 마을인 중촌(中村)(북촌은 고관대작마을, 남촌은 무관과 당하관 마을)을 찾아 희미한 안개 너머로 돌담 근처의 우물간을 찾았다.

중촌은 하루가 다르게 연못을 갖춘 후원과 회벽으로 장식한 담장을 가진 유행 호화저택이 들어서고 있었다.
집집마다 우물을 팠지만 대가 여종들은 대개 집 밖 골목의 우물에서 물을 길었다.

그것은 하루종일 부엌일에 시달리는 여종들과 부엌데기들이 유일하게 집 밖 출입을 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우물가는 갑갑한 집안의 담장을 벗어난 여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한다.

그곳에서 여인들은 커가는 아이들 이야기며, 무지렁이 남편의 흠이나 깨가 쏟아지는 신혼 즈음의 즐거움을 이야기했다.

우물가에는 한 어린 여종이 물을 긷고 있었다. 또 다른 한 여인이 물동이를 내려놓으며 여종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툭 쳤다.

여종은 기겁을 하면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네 년 방뎅이를 보니 시집갈 때가 다 되었구나!"

여인은 의미있는 눈빛을 던지며 물동이를 채운다. 소곤거리고, 키득거리고, 손으로 입을 가린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진다.

채운 물동이를 우물턱에 얹어놓자 한 여인이 다른 여인의 똬리 위에 물동이를 얹어주었다. 여인은 눈인사를 남기고 총총걸음을 옮겼다.

 

이 광경이 그 우물가에 두 화가가 본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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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두 천재화가가 메고 온 두루마리에서 끄집어내는 종이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면서 그림 속의 우물간 풍경을 상상해본다.

"지난 번처럼 도성 안의 우물가를 두루 돌아다닌 것이냐?"

"아닙니다. 광통교 인근의 우물을 지키고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이틀동안 관찰했습니다."

 

정조는 짜릿함이 터지는 웃음으로 "기대는 배반당할수록 즐거운 것이지.  하하하!"

 

이런 왕이 있었던가? 천한 도화서 화원들의 붓끝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구석구석 살피는 왕이.

자신의 생각을 뒤집은 천한 자들을 웃음으로 격려하는 군주가.

그는 천재들을 다스리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홍도와 윤복이 다다르지 못할 경지에 있는 또 다른 천재일지도 모른다.

 

홍도가 두루마리를 펼치자 윤복의 두 눈이 번쩍 빛을 발한다.

 

세 명의 여인과 한 사내가 있다. 배경은 옅은 갈색으로 투명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이다.

놀랄만큼 단순명료한 구도다. 두 여인은 화면 왼쪽에 배치한 우물가에 서서 두레박을 쥔 모습니다.

맨 왼쪽의 나이든 여인은 흰 저고리에 회색 치마를 치마끈으로 질끈 동여매고 있고, 젊은 듯 보이는 여인은 녹색 저고리에 푸른 치마차림.

우물벽 위에는 오지 물독과 나무 물통이 올려져 있다.

그러나 그림의 주인공은 저고리 고름을 활짝 풀어헤쳐 털이 더부룩한 탄탄한 가슴을 내보이며 두레박 가득 담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사내다. 사내의 목젖을 타고 벌컥거리며 물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벗어젖힌 갓을 쥔 왼손을 허리춤에 짚고 두레박자루를 쥔 모습은 거침없는 사내의 성정을 말해주고 있다.

사내에게 건넨 두레박줄을 잡은 푸른 치마의 젊은 여인은 사내의 맨 몸을 바로보기 민망한 듯 다소곳이 고개를 돌려 눈길을 피하고 있다.

화면 가운데를 꽉 채운 존재감으로 중심을 잡고 있는 사내와, 그 사내를 외면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호기심에 귀를 세운 여인,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이 화면의 중심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림의 오른쪽에는 우물가의 남녀에게는 전혀 관심도 없다는 듯이 힘겨운 표정으로 물동이를 인 민짜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보인다.

기골이 굵고 튼실한 것으로 보아 어느 부잣집 막일을 하는 부엌종인 듯하다. 우물가에서 일어나는 젊은 남녀의 희롱에 관심을 보이기에는 너무도 고달픈 삶의 무게가 엿보인다.

 

이번에는 윤복의 두루마리에 눈길을 주는 정조.

 

이 그림을 본 순간 홍도는 뒷골이  찌릿하였다. 윤복의 그림은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절반을 넘는 화면을 차지한 것은 인물이 아니라 바로 풍경. 우물 뒷쪽의 암벽과 바위벽 사이사이에 낀 이끼, 절벽 위의 고목등걸과 무성하게 웃자란 나무숲....

정조왈 "이건 바로 겸재 정선의 실경산수화법이 아닌가!"

이 말을 들은 단원이 부연하기를 "실경산수는 인물이 극단적으로 배제되는 산수화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실경산수의 기법이 인물과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가장 조화로운 모습이라 하겠지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홍도는 마른 입술을 깨문다.

이 젊은 천재는 사람의 삶을 그리는데 자연을 끌여들였다. 그것도 겸재란 화단의 거인이 구사했던 실경산수기법을 사용하여...거기에 비하여 배경을 배제하고 인물만을 그린 자신의 그림은 얼마나 초라한가!

 

붉은 봄꽃이 가지마다 흐드러진 봄밤. 붉은 기운이 흐드러지게 번진 하늘 위에는 하얀 보름달이 떠 있다. 달 아래에는 어느 대가의 일각대문 처맛자락이 보이고, 길게 돌담이 이어져 있었다. 지붕 없는 둥근 우물은 단원의 것과 모양새가 다르지 않다. 우물벽 위에는 오지독 하나와 나무 물통 하나가 놓여 있었다.

녹색 저고리에 푸른 치마를 입은 여인은 두레박줄을 잡고 있고, 흰 민짜저고리에 똬리를 얹은 나이든 여인은 머뭇거리며 여인에게 말을 전한다. 인물의 생김새와 복색은 단원의 것과 흡사했다. 그리고 사방관을 쓴 지체 높은 양반인 듯한 남자가 돌담 너머에 몸을 숨긴 채 두 여인을 초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즉 양반이 밤중에 담 너머로 우물가의 젊은 아낙을 희롱하고 있는 것이다.

긴밀한 두 여인 사이의 시선과 담 뒤의 남정네 사이에 흐르는 흰 달빛만큼이나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도는 그림이었다.

 

정조는 두 그림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핀 후에 판정관으로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천하의 명인들이다. 이틀 동안 같은 풍정을 보고 이렇듯 다른 그림을 내놓다니....

단원의 그림은 따뜻한 햇살이 퍼지는 환한 대낮이며 혜원의 그림은 보름달이 교교한 달밤이로다.

단원은 일체의 배경을 삭제하여 인물들에 주목한 반면, 혜원은 흐드러지 꽃가지와 아스라한 암벽과 창백한 달빛으로 등장인물들의 마음속을 표현했다. 예원은 화려한 색감과 섬세한 묘사를 위주로 했으나 단원은 질박한 색감과 과감한 구도를 썼다.

너희는 해와 달처럼 하늘에 떠 있는 두 빛이니, 해는 해대로 밝고 따스하며 달을 달대로 교교하고 아름다운 것과 같다."

 

2007. 11. 1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