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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인재 강희안 "고사관수도"

새샘 2007. 10. 13. 15:30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은 세종, 문종, 단종, 세조 때의 문인화가로서 글(詩), 글씨(書), 그림(畵) 세 방면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 불리웠다.

안견, 최경과 더불어 15세기의 3대화가로서 인정받고 있을만큼 그림 실력이 뛰어났다.

그리고 인재는 꽃과 나무를 키우는 데도 일가견이 있어 ‘양화소록(養花小錄)’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원예책도 펴 냈다.

 

인재는 후학들이나 자식들에게 ‘그림은 천한 기술이니 후세에 전하지 마라’고 얘기하면서 그림 그리는 것을 꺼렸다.

사대부로서 하찮은 기술에 불과한 서화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며, 자신은 천지만물의 이치와 본질을 깨닫는 하나의 도구로서 그림을 그릴 뿐이라고 하였다.

 

인재의 그림은 산수화를 그리되 사람 즉 선비를 중심으로 산수를 그렸다는 점이 다른 화가들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를 깨달았거나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비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한다.

인재의 그림이라고 알려진 것 가운데 낙관이 있는 것은 고사관수도 외에는 없다.

하지만 고사관수도 역시 진위의 논란이 있다.

이것은 이 그림이 조선초기의 유행화풍인 중국 북송대의 이곽파의 화풍이 아니라 조선 중기에 유행했던 절파화풍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인재가 그린 그림이라면 몇백년을 앞서간 선각자적인 화가가 아닐 수 없다.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학식 높은 선비가 물을 바라보는 그림이다.

선비가 절벽 아래의 펑퍼짐한 큰 바위 아래서 포갠 양팔위로 턱을 괜 채 엎드린 아주 편안한 자세를 하고서 바위 앞으로 잔잔하게 흐르는 맑은 물을 관조하고 있다.

절벽 위에서 자라 내린 길다란 칡넝쿨은 바위 앞까지 닿아 있다.

고사관수도는 절벽, 바위, 칡넝쿨, 물을 그린 산수화가 분명하지만 이 그림을 본 사람은 어느 누구나 이 그림의 주인공이 산수가 아니라 화폭 가운데에 엎드린 선비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물을 관조하는 선비의 얼굴 표정이다.

인재가 항상 얘기했던 것과 같이 이 그림은 홀로 세상만물을 관찰하고 자연과 하나가 됨으로써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해 주는 도구임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는 그림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선비의 눈과 표정에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읽어 낼 수 있을 때까지 그림을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선비의 표정에서 조정육이란 미술평론가가 읽어낸 것은, 성삼문이 죽어가면서도 인재의 무관함을 세조에게 말해 주었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인재 자신은 속세에 찌든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한가로운 자연 속에 파묻히고 싶은 소망이었다.

이정명이란 소설가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한글창제의 과정의 어려움을 소설화하면서 이 선비의 표정에서와 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것을 찾아내는 것으로 비유한 바 있다.

 

난 이 그림에서 선비가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찾았다는 만족감을 속으로 즐기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 바로 자연과 함께 하는 일을 드디어 이루었다는 만족감을 드러내지 않고 혼자서 즐기는 높은 선비의 달관한 모습이 부럽기만하다.

  

2007. 10. 1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