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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강상야박(江上夜泊)

새샘 2007. 2. 22. 11:57

  江上夜泊이란 봄비 내린 호젓한 강가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뜻으로 겸재 정선과 더불어 조선 영조 때 유명한 선비화가인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이 그린 ‘강상야박도’에서 따온 말이다. 이 그림은 봄밤에 내리는 비를 반가워하는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구절을 형상화한 것이다.

 

  난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안개구름 덮인 강변의 나룻배에 몸을 싣고 주당(酒黨) 친구와 더불어 술과 경치와 친구를 예찬하면서 봄밤을 지새고 싶은 즉 강상야박의 마음이 불현듯 솟아오르곤 한다. 이 장면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비, 친구, 봄, 술, 밤샘- 이루어진 평소 나의 바램이다. 좋은 시절을 알리는 봄비가 봄바람 타고 밤에 몰래 스며들어 내 겉몸과 친구, 그리고 만물을 촉촉이 젖게 하면 난 술로서 내 속몸을 축축히 적신다.

 

   하지만 이런 강상야박을 위하여 격에 어울리는 멋진 풍광 속으로 찾아 들어가는 게 능사는 아니다. 보다 중요한 건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보다는 마음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이 훨씬 길고 깊은 감명을 준다. 매연으로 가득 찬 도시의 아스팔트 위 차안에서도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곳으로 여겨질 것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눈으로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고 느끼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에서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을 하면 마음의 눈이 떠진다. 우리 모두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자. 그러면 마음의 눈은 떠지고 그 떠진 마음 속으로 주변의 경치가 안으로 밀려옴을 느낀다. 이렇게 마음으로 느끼는 곳이라면 이 세상 어디라도 강상야박은 가능하므로 멀리 떠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원에서의 원중야박(園中夜泊), 학교 동산에서의 산중야박(山中夜泊), 나무 옆에서의 수변야박(樹邊夜泊), 친구와의 동행야박(同行夜泊), 비와 함께 하는 우중야박(雨中夜泊), 별을 보는 성하야박(星下夜泊) 등 이렇게 마음이 가는 모든 곳에서 가능하다.

 

  눈에 보이는 것 즉 외모, 학력, 재력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경향이 더해가고 있는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가끔 아니 자주 강상야박을 통하여 마음을 여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연인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 친구를 사귀고 싶은 사람들에게 난 강상야박을 권한다. 로맨티스트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건 특효약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강상야박을 하는 곳이 특별히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마음으로 원하는 데가 바로 강상야박의 최적소라는 사실이다. 아! 강상야박이 날 부른다.

 

2007. 2. 22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