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그림 대결4 본문

글과 그림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그림 대결4

새샘 2007. 12. 3. 20:08

두 화가는 정조의 명에 따라 백성의 삶을 그린 두 번 째 그림 두루마기를 펼친다.

 

홍도의 그림은 다섯명의 대장장이들이 저마다의 일에 바쁜 대장간 풍경이었다.

 

“이곳이 무엇하는 곳이냐?”

“견평방에서 육조거리 쪽으로 통하는 길가에 있는 대장간입니다. 쇠를 달구어 농기구와 일용품과 무기를 만듭니다.”

화면 저체는 불기운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다섯 명의 남자들은 뜨거운 불기운 속에서 저마다의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숙련된 두 대장장이가 모루 위의 쇳덩이를 번갈아 망치로 내려 쳤다. 한 사내의 망치가 쇳덩이를 치고 있었고, 다른 쪽 사내의 망치는 등 뒤에 있어 정교한 시간차를 두고 망치질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왼쪽에 쭈그리고 앉은 노인이 집게로 잡은 쇳덩이를 모루 위에 대고 있었다. 그 손길에서 오래 숙련된 대장장이의 솜씨가 엿보인다. 앞쪽에는 도제인 듯한 댕기머리 소년이 갓 만들어낸 듯한 낫을 숫돌에 갈아 날을 세우고 있었다. 화덕 뒤쪽에는 또 한 명의 도제소년이 바쁘게 풀무질을 하고 있다.

“다섯 사내가 있는데 정면을 보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다들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구나.”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는 다른 곳이지만, 그들에게는 그곳이 정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구나. 그들의 눈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흠뻑 빠져 있음을 알겠다. 망치질하는 자들은 모루 위에, 낫을 가는 자는 숫돌 위에, 풀무질을 하는 아이는 화덕의 불꽃에 눈길을 주고 있느니....”

“그림을 그린다고 한가롭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을 겨를이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들을 보고서야 비로소 노동이 이토록 아름다움을 알겠다. 천한 자들이나 하는 천한 일이라 하지만, 이 힘에 넘치는 모습과 자신의 일에 몰두한 모습을 보아라. 그토록 고달픈 농사일이나 대장간일을 이토록 힘에 넘치고 아름답게 표현함은 곧 화원이 재능이 아니겠는가?”

정조는 대장간 그림을 주워 눈앞에 다시 펼쳐 들며 말을 잇는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그리고, 천한 것을 천하게 그리는 것은 화원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홍도는 천한 것을 아름답게, 고달픈 것을 즐겁게 그려냈다.”

정조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말한다.

“이 그림을 보니 나 또한 윗도리를 벗고 당장이라고 망치질을 하고 싶구나.”

 

정조는 홍도의 그림을 내려놓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단원의 그림에는 늘 일하는 사내들이 등장하는데, 혜원의 그림에는 언제나 무언가 비밀을 감춘 듯한 여인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궁금하단 말이야.”

정조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윤복이 펼칠 두루마기를 바라보았다. 윤복은 고개를 숙인 채 두루마기를 펼쳤다. 주상의 얼굴에 놀라움의 빛이 스쳤다.

 

그림 속에서 뿜어져나오는 강렬한 붉은색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림은 어느 마을에서 벌어진 굿판을 그린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붉은 배경을 깔아 대장간의 열기와 뜨거운 불기운을 표현했던 홍도와는 달리, 윤복의 붉은색은 마치 타오르는 듯했다. 붉은색뿐만이 아니었다.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에서 펼쳐진 굿판의 분위기는 무당의 붉은 철릭과 구경꾼의 노란 저고리, 파란 장옷, 그리고 장구의 붉은 몸통 등에 칠해진 강렬한 색감을 드러냈다. 화면 왼쪽에는 싱싱한 나뭇잎이 화면에 시원스런 변화를 주고 있다.

그림 가운데에 쌀이 담긴 소반 앞에서 한 여인이 두 손을 간절히 비비고 있다. 무당 뒤의 굿청에는 보자기를 덮은 소반과 붉은 보자기로 싼 광주리가 보인다. 화면 중앙에는 춤추는 무녀 한 명이 홍철릭 차림으로 춤을 추고 있고, 옆에서 큰 갓을 쓴 박수무당 두 명이 각각 피리를 불고 장구를 치고 있다.

“이 그림은 화원이 직접 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상상하여 그린 것인가?”

정조의 목소리가 약간의 노기를 띠었다. 윤복은 고개를 들어 정조의 눈을 바라보았다.

“화원은 본 것으로 그릴 뿐입니다. 보지 않은 것을 그리는 것은 문인들이지요.”

“그러면 아직도 도성 안에서 이런 굿거리가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냐?”

윤복은 말하지 않았다. 이미 그림이 말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알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경국대전 형전 금저에 ‘도성 안에 무격으로 거주하는 자는 논죄한다’고 함은 곧 무당이 도성 안에 살 수 없다는 말이 아니냐! 그런데 어찌 허황된 귀신놀음으로 백성을 미혹시키는 무당들이 활개치는가! 도성 안에 무당으로 이름가진 자를 모두 쫓아내어 오부 안에는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할 것이다.”

정조의 음성이 방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2007. 12. 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