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김중혁 단편소설 "악기들의 도서관" 본문
이 소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중앙일보의 '작가가 뽑은 작가의 책'이란 글에서 문득 눈에 띈 제목이 전부다. 난 악기는 잘 모르지만 클래식은 즐겨 듣는 편이고, 도서관은 비교적 자주 출입하는 편이라서 내가 관심있는 두 단어가 조합된 소설 제목이 나의 눈길을 이끈 것이다.
책 표지를 처음 봤을 땐 장편인 줄 알았었다. 제목이 <악기들의 도서관>이었으니 말이다. 안쪽 차례를 들여다 봤을 때 이 제목을 비롯한 여러 제목이 있어 비로소 단편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단편을 읽을 때는 내가 관심있는 제목의 글부터 먼저 읽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악기들의 도서관>을 먼저 펴서 읽기 시작하였다.
소설을 읽는 도중이나 다 읽고 난 후에 든 느낌은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건 음악, 그것도 악기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넘어 너무도 사랑하고 즐기기 때문이리라!'는 것. 그 발상이 너무나 놀랍다.
수백 종류에 달하는 악기마다의 다양한 음색을 녹음하여 보관하고 그것을 들려주기도 빌려주기도 내려받기도 하는 이른바 <악기소리 주크박스>를 악기점에 만들 생각을 하다니!! 그리고 이 주크박스에는 악기소리를 뛰어넘어 주변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구둣발소리, 기침소리, 가게천장에서 나는 쥐 울음소리, 나무탁자를 두드리면 나는소리, 엘리베이터 문이 여닫히는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물 끓는 소리-도 들어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악기인 가나의 틀북(frame drum)이나 시타르(sitar)라는 악기는 본 적도 없으니 그 소리도 물론 나는 알리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이런 악기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소리가 나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난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을 듣기는 좋아하지만 울려나오는 악기소리를 구별하지는 못한다. 물론 여러 악기들의 합주소리가 아름다운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악기 각각의 소리를 알고서 듣는 즐거움은 더 크지 않을까!
이런 음악소재로 글을 쓴 소설가는 분명 음악에 대한 조예가 지극히 깊음에 틀림없다. 조선시대에는 문장, 글씨, 그림에 일가견이 있는 선비를 일컬어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이라고 불렀으며, 여기에 음악에까지 조예가 깊은 김홍도는 시서화악詩書畵樂 사절四絶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 단편을 쓴 소설가 김중혁은 글씨와 그림은 확인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문장과 음악 실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시악詩樂 이절二絶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또 한가지 배운 것은 사람의 생각 하나로 즉 마음먹기에 따라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평소에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 소설이 나의 이런 평소 생각을 더욱 공고하게 함으로써 하나의 신념으로 만들어 주었다. '아무 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는 생각 하나로 치명적인 교통사고에도 살아 남은 후,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이 생각을 비워내기 위해 술에도 쩔어보는 주인공은 결국 악기소리에 빠져 몰입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즐겁게 살게 된 것이다.
인생을 제대로 사는 방법은 사람마다 무척 다양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좋은 것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을 쓴 작가 김중혁은 30대 후반의 젊은 작가로서 그 글솜씨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건 김유정문학상, 미당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국내의 유명 소설상을 휩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은 2008년 '문학동네'에서 발간되었으며, 이 소설책에는 '악기들의 도서관' 외에 '엇박자 D' 등 모두 8편의 단편이 들어 있다.
2009. 3. 17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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