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화재 변상벽 "모계영자도" 본문
"따사롭고 살가운 어머니 사랑"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 비단에 수묵담채, 94.4×44.3㎝, 국립중앙박물관>
양지바른 뜨락 큼직한 괴석 곁에 찔례꽃 향기로운 날, 나비며 벌들 꽃 찾아 분주한데, 어미 토종암탉이 병아리 떼를 돌본다. 자애로운 눈빛이 또로록 구르는가 했더니 부리에 작은 벌 한 마리를 꼭 물었다. 원래는 다섯 마리였지만 그중 한 마리가 꿀을 탐하다 그만 잡혔다. 나는 벌들은 '애앵'하고 날개가 빠르게 움직이니까 흐린 먹으로 전체 윤곽만 그렸지만, 병아리 모이가 된 벌은 날개 결, 아주 가는 선까지 분명히 보이도록 그렸다. 햇병아리들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모여든다. 어미 암탉은 병아리보다 몸집이 열배나 더 크지만 저 눈동자만은 병아리들과 엇비슷하다. 사람도 엄마나 아기나 눈망울 크기는 별 차이가 없듯이 정말 그 정다움이 화폭에서 묻어 나온다.
<모계영자도 세부>
그런데 걱정스러운 건 동그마니 모인 여섯 햇병아리 중 어느 놈 입에 모이를 넣어줘야 하는가? 그런데 이건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왜냐면 암탉이란 놈은 모성애가 아주 대단해서 부리로 일일이 바숴서 병아리 먹기 좋게 흩어주기 때문이다. 윗 세부그림을 한번 자세히 보라. 과연 병아리들은 제각기 기대에 찬 눈빛을 초롱거리면서도, 부리들은 하나같이 꼭 다물고서 얌전하게 모이 나누이길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림의 핵심은 위 세부그림에서 확연히 볼 수 있듯이 암탉과 병아리들의 정다운 눈망울이 모여 원을 그린 곳에 있다. 어미닭 부리 주위에 원을 그리면서 둘러싸고 있는 여섯마리의 병아리 외에도 여덟마리가 더 있다. 그래서 제목이 <암탉이 병아리 새끼들을 거느리는 그림> 즉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가 되었다.
그런데 수탉은 보이지 않는다. 반들반들한 암탉의 깃털과 보송보송한 병아리 솜털의 질감에서 느끼듯이 다정스럽고 부드러운 느낌의 이 그림에, 꽁지깃이 길게 뻗쳐올라 기세가 장한 토종 수탉 꼬리를 함께 그렸다면 암탉과 병아리를 압도하여 다정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그냥 죽어버리리! 화가는 영리하게 대신 괴석을 그려 넣었다. 불쑥 솟은 괴석은 유난스레 거칠고 강렬한 흑백 대비로 장닭의 기상을 지녔다. 하지만 그 기이한 형태는 첫눈에는 시선을 잡아당기지만, 자세히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괴석은 뒤로 슬그머니 물러나버려 어미닭의 따사로운 모정만 더욱 빛나게 한다.
고故 외우畏友 오주석(1956~2005) 선생은 이 그림의 주제를 '살뜰한 모정母情'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도타운 모정이 살갑게 드러난 닭과 병아리 그림으로서 이렇듯 정다운 암탉 그림은 세상에 달리 없다고 단언하였다.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1730~1775?)은 영조 때의 화원으로서 특히 닭과 고양이를 잘 그려 변계卞鷄, 변고양, 변괴양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그의 고양이와 닭 그림은 세밀하고 사실적이며 따뜻하고 아름다워서 볼 때마다 동물화의 매력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이는 동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면밀한 관찰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동물에 대한 사랑은 곧 사람과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이 글은 고 오주석 선생이 지은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2009, 월간미술)과 <그림 속에 노닐다>(2008, 솔)에 실린 글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2009. 7. 1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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