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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오원 장승업 "호취도"

새샘 2009. 7. 18. 17:13

"고삐 풀린 자유로운 천성, 예술 속에서 살아나다"

<호취도, 19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 담채, 135×55㎝,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장쾌한 기상을 지닌 독수리 그림 <호취도豪鷲圖>를 보라! 갑자기 화폭에 선득하니 차가운 바람이 인다. 그것은 자연의 바람이 아니다. 기인奇人 장승업이 큰 붓에 진한 먹물을 듬뿍 묻혀 사납게 휘둘러 댄, 고삐 풀린 천성의 자유분방함이 일으킨 회오리바람인 것이다.

 

왼편 위의 화제畵題를 쓴 정학교丁學敎(1832~1914; 조선말기의 문인서화가로서 장승업의 작품에 화제를 많이 썼다)는 장승업의 심사를 잘 알아 굵고 가늘게 퉁길 듯 날아갈 듯 변화무쌍한 필획들을 번드쳐 쌩하는 삼엄한 소리를 내는 듯한 글씨체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내려갔다.

"땅 넓고 산 드높아 장한 의기 더해 주고 지활산고첨의기 地闊山高添意氣

 마른 잎에 가을 풀 소리 정신이 새롭구나 풍고초동장정신 楓枯艸動長精神"

 

붓질은 물기가 흥건하여 윤택하기 그지없다. 그런 호방한 붓질로 장승업정신이 번쩍 들게 때려 넣는가 하면 당겨 뽑고, 꺽어 냈는가 하더니 잔가지를 이리저리 삐쳐 댔다. 나무 이파리는 크고 작은 울림이 자진모리 장단을 타고 달리는 듯하더니, 급기야 독수리며 나무 이끼의 반복되는 점들에 이르자 갑자기 쏟아진 장대비인 양 후두두둑 두들겨 댔다.

 

그것은 형상이기 이전에 움직임이고, 보고 있는 동안 그대로 음악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가? 나무는 나무, 독수리는 독수리, 풀잎은 풀잎이다. 어느 하나 틀에 맞춰 그린 것이 없으니, 과장과 왜곡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넘쳐나는 이 생명력은 무엇인가?

 

<호취도의 독수리 세부>

 

눈매에 살기가 등등한 독수리는 하나는 굽어보고 하나는 치켜보며 화면을 완전히 장악했다. 날카롭게 휜 부리와 갈쿠리처럼 다부진 발톱의 생생한 묘사, 세상 온갖 부귀도 나에겐 거칠 것 없다는 듯한 오만함과 긍지가 가득하다.

 

하기는 그랬을 것이다! 그가 살았던 구한말의 세상, 지겨운 세도정치의 끝물이라 모든 것이 속되고 더럽고 구질구질하지 않았던가? 조선왕조를 실제로 판막음했던 천재화가 오원 장승업은 아마도 진작 그림을 배우지 못했다면 그만 미쳐버리고 말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옅고 담담한 저 색조를 보라. 빈틈없는 구도를 보라. 결코 지나치지 않은 과장을 보라. 그는 예술속에서 자유로웠다!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1843-1897)은 조선말기 도화서 화원으로서, 오백 년 조선 역사를 통하여 그림 솜씨 즉 붓 휘두르는 재주만으로 화가의 우열을 따진다면 1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탕한 성격에 무지막지한 술꾼이라 국왕의 명조차 어기고 수차례 줄행랑을 쳤으며, 그림은 잘 했지만 사실은 제 이름도 쓸 줄 몰랐던 일자무식이었다는 오해, 결국은 늙어 죽지 않고 신선이 되어 가뭇없이 사라졌다는 등, 꼬리에 꼬리를 문 기이한 소문들은 바로 경이로운 필력筆力이 남긴 메아리였다.

 

산수, 인물, 영모, 기명절지, 사군자 등 다양한 화목을 모두 잘 그렸다. 술을 너무 좋아해 취명거사醉瞑居士라는 호를 짓기도 했다. 강렬한 필법과 묵법, 화려하고 장식적인 채색, 스산한 분위기의 인물 표현 등 장승업의 작품은 그의 성격에 걸맞게 호방하고 대담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기교에 치우쳐 정신적인 깊이나 그윽한 문기文氣는 떨어진다는 지적도 받는다. 오원의 화풍은 근대 한국화의 시조라고 일컬어지는 제자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1861~1919)과 소림小林 조석진趙錫晉(1853~1920) 등 20세기 초 전통 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원吾園이라는 호는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호를 따서 '나도 원'이라는 뜻으로 자신이 붙였다고 한다. 현재 조선의 3대 화가를 들라면 현동자 안견, 단원 김홍도, 오원 장승업을 꼽고 있다.

 

이 글은 故 외우 오주석 선생이 지은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2009, 월간미술)에 실린 글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2009. 7. 1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