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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재 김득신 "야묘도추도(파적도)"

새샘 2009. 5. 8. 20:05

"어이할꼬! 도둑고양이 잡으려다 우리 영감 먼저 잡겠소"

 

<야묘도추도野猫盜雛圖> '들고양이(야묘)가 병아리(추) 훔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그린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1754~1822) 김홍도, 신윤복과 함께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불린다.

 

이게 왠 소동이냐! 한가로운 시골집의 고요와 평화를 깨는 일대사건이 벌어졌다.

검정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노란 병아리를 그만 잽싸게 채서 달아난 것이다.

깜짝 놀란 어미닭이 눈에 시뻘겋게 독이 올라 날개를 파닥거리며 죽을 각오로 고양이에게 덤벼들고, 나머지 병아리들은 혼비백산해서 사방으로 흩어진다.

 

"꼭꼬댁 꼭꼬꼬꼬", 화급한 암탉 비명소리에 자리 짜던 영감이 벌떡 일어나 긴 담뱃대를 내뻗어 후려치려고 하지만 역부족인지 굳은 몸이 말을 들을리 없다.

그대로 고꾸라지면서 탕건에, 자리틀에, 재료까지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이 소란스런 와중에 영감 몸이라도 성하면 천만다행이겠는데 아이쿠 이번에 정작 놀란 건 마나님이다.

그래서 이 그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주인공은 그림 제목에 등장한 들고양이도 병아리도 아닌, 들고양이를 쫓는 영감도 아닌, 바로 영감이 툇마루에서 넘어지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란 마나님인 것이다.

허겁지겁 방 안에서 뛰쳐나오느라 맨발 바람으로 쿵쾅거리며 엎어질 듯 영감을 붙들어 보려 하지만, 일은 벌써 다 글렀다.

공중에 붕 떠 있는 영감을 어찌할거나! 마나님의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 않는가!

 

"어이할꼬! 도둑고양이 잡으려다 우리 영감 먼저 잡겠쏘!!!"

 

도둑고양이는 여유만만하게 달아나며 용용 죽겠지 하는 양, 긴 꼬리를 얄밉게 휘두르며 영감을 돌아다본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화면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다급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림을 감상하는 이는 작품 이전의 상황부터 이후의 결과까지 마치 영화를 보듯이 모두 일목요연하게 떠올릴 수 있다.

이런 요소가 바로 이 <야모도추도>가 잘 그린 풍속화라는 걸 말해준다.

 

다시 말해 <야묘도추도>의 매력은 난리법석인 흥미로운 일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해서 장장 이백년 후 현대인에게까지 그 실감을 전해 준데 있다.

주제가 요란하다 보니 그림의 구성요소들도 어디라 초점이 없이 화폭 전체에 널브러져 있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구도가 치밀하기 그지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흐르는 시선이다.

뜰이 살구나무 가지도 이 방향으로 뻗어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시선은 바로 마나님은 영감을 보고, 영감 앞에는 암탉이 있고, 암탉은 다시 들고양이를 쫓고, 고양이는 영감을 놀리듯 뒤돌아본다.

어지는 탕건조차 이 중심선 위에 놓여 있다.

 

화면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의 대각선 방향으로 2개의 사각형 구도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오른쪽 위는 집 자체가 큰 사각형이고, 왼쪽 아래는 들고양이, 병아리 한 마리, 병아리 세 마리, 탕건이 작은 사각형을 이루며, 이 작은 사각형 중심에 암탉을 그려 넣음으로써 어미닭의 안쓰러운 모정이 절로 나타나도록 부각시켰다.

 

김득신은 맺힌 데 없이 쓱쓱 그어댄 붓질로 생동감을 살렸고, 특히 잔가지를 바깥에서 안쪽으로 툭툭 쳐 넣어 봄날의 움트는 생명력을 시사한 솜씨가 단원 김홍도와 어금버금하다.

 

※이 글은 고 오주석선생(1956~2005)의 유고를 모은 책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2009, 월간미술)에 실린 글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2009. 5. 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