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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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불염자 김희겸 "산정일장"

새샘 2019. 2. 8. 18:36

<산에 사는 즐거움>

김희겸,&nbsp;산정일장, 종이에 담채, 37.2 &times;29.5㎝, 간송미술관

 

사계절이 뚜렷한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그 어느 계절이 아름답지 않겠는가마는 산수 유람은 여름이 제격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라는 이야기는 계곡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고, 그 물이 모두 흘러 강을 이루니 강 또한 많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삼면이 바다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디로 가서 더위를 피할까?

역시 산이 으뜸이다.

 

옛날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오늘날 휴양림에 캠핑 가듯이 옛사람들도 산에 오르는 것을 커다란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러다  여름 한 철 보내는 별장을 장만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벼슬을 내놓고 산으로 물러나 숨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세월 많은 문장가와 시인이 산에 사는 즐거움을 읊었는데 그 시문 가운데 으뜸은 중국 남송 대 나대경羅大經(1196~14242)이 지은 '산거山居'라는 글이다.

이 글은 문인들 사이에 인기가 많아 그림으로도 많이 표현되었는데 대개 이런 그림들을 '산거'의 첫 구절을 줄여 '산정일장도山靜日長圖'라 불렀다.

 

조선에서는 많은 화가들이 '산거'의 여러 장면을 그렸으며 영조 대 화원이던 불염자不染子 김희겸도 그중 하나다.

'산거'는 이렇게 시작된다.

 

   "산은 고요하니 태고와 같고        (산정사태고山靜似太古)

    해는 기니 짧은 한 해와 같다.    (일장여소년日長如少年)

    내 집은 깊은 산에 있어             (여가심산지중余家深山之中)

    매년 봄과 여름이 만날 때면      (매춘하지교每春夏之交)

    푸른 이끼 섬돌에 차고               (창소영계蒼蘇盈階)

    떨어진 꽃잎 길에 가득하고        (낙화만경落花滿徑)

    문은 두드리는 소리 없고            (문무박탁門無剝啄)

    소나무 그림자 들쑥날쑥하니      (송영삼차松影參差)

    새 소리만 위아래로 오르내린다.(금성상하禽聲上下)

    낮잠이 처음으로 흡족해······      (오수초족午睡初足)······"

 

화가는 글 내용을 그림으로 충실하게 옮긴 후 화제로 첫 두 구절 10자를 7자(山靜似太古日長)와 3자(如少年)로 나누어 두 줄 썼다.

언덕 위엔 장송 세 그루가 푸른빛을 뿜으며 위용을 뽐내고, 언덕 아래 널찍한 마당 한쪽엔 햇빛 가리개를 처마에 덧댄 초옥 한 채가 단아하게 자리했다.

한 칸짜리 넓은 문이 달린 방 안에는 선비 홀로 베게 베고 다리 꼰 채로 낮잠에 빠져 있다.

 

낮은 석축 위에 올린 초옥의 섬돌은 정갈하고 인적 없는 마당엔 단정학丹頂鶴 두 마리가 한가로이 거닌다.

띠 지붕 올린 싸리문은 닫혀 있어 찾아오는 손님이 없음을 말해준다.

문 앞에 무성하게 우거진 버드나무 덕분에 초옥이 세속과 완전히 차단된 듯하며 초옥 둘레와 마당에 심은 나무에는 붉은 꽃이 가득 피어 봄날이 절정을 맞았음을 알 수 있다.

 

집 뒤 산허리에는 구름이 큰 띠를 둘렀으며 그 위로 우뚝 솟은 봉우리들의 자태는 장엄한데, 그 중턱엔 아담한 정자 하나 놓여 있고 저 멀리엔 푸른빛 아련한 먼 산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런 무릉도원에서 낮잠 자는 저 선비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아마 나비가 되어 산수 위를 훨훨 날아다니지 않을까.

그러다 잠에서 깨면 샘물 긷고 솔가지 주워다가 차달여 마시며 옛 글을 읽거나 먹을 갈아 글씨를 쓰거나 할 것이다.

그러다 이번에 동자를 데리고 집 울타리를 벗어나 지팡이 짚고 시원한 폭포를 찾아 계곡을 오를 것이다.

 

 

맨 위 그림인  산정일장 부분

 

작은 그림 한 장으로 옛사람들이 바랐던 휴식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꽃잎이 그렇게 떨어지듯, 소나무가 그렇게 푸르듯, 새가 그렇게 지저귀듯 스스로 그러한 상태에서 마음가는 대로 행하는 것. 졸리면 자고 목마르면 마시고 걷고 싶으면 걷는 것.

 

김희겸金喜謙(1710~1763 이후)은 겸재 정선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으며 정선의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났다는 평을 들었던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이다. 자는 중익仲益, 호는 불염자不染子, 불염재不染齋. 여항 문인 집안 출신의 중인으로서 시인이기도 하다. 원래 이름인 희성喜誠을 버리고 겸재 정선을 존숭하여 희겸으로 개명했다. 벼슬은 사천 현감을 지냈으며 품계는 종2품 가선대부에 이르렀다. 산수, 초충, 인물 등에 두루 능했으며, 숙종어진을 모사했다. '대쾌도大快圖'란 풍속화로 유명한 화원 화가 김후신金厚臣이 그의 아들이며, 손자들도 대를 이어 화원 화가로 활동했다.

 

※이 글은 탁현구 지음 '그림소담-간송미술관의 아름다운 그림'(디자인하우스, 2014)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19. 2. 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