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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겸재 정선 "장안연월"

새샘 2019. 1. 30. 21:07

서울의 안개 낀 달밤=장안연월長安烟月

정선, 장안연월, 비단에 채색, 경교명승첩, 28.2 ×41㎝, 간송미술관(사진 출처-출처자료)

 

 

겸재 정선은 자신이 살던 한양의 명승을 많이 그렸는데 한양 풍수에서 북현무와 우백호에 해당하는 북악산과 인왕산이 중심 소재였다.

겸재가 살던 집이 그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겸재는 평생 자기 집 뒷산인 북악산과 인왕산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겸재는 산 명승을 부감해 그리기도 하고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한양 성안을 그리기도 했다.

그럴 때 그림 정면에는 한양 풍수에서 남주작에 해당하는 남산이 떡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겸재는 남산을 많이 그렸다.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맑은 날, 구름 낀 날, 봄날, 보름달 뜬 날 등 겸재가 늘상 봐온 수많은 남산의 모습을 남아 있는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둥근 달이 남산 위에 뜨고 한양성에는 밤안개가 짙개 드리웠다.

이 장면은 북악산 남쪽 기슭에서 본 모습이다.

어김없이 한 달 만에 다시 보름이 찾아왔고, 봄날 따뜻한 기운에 안개가 자욱해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돌아오는 보름에 북악산에 올라 달구경하자고 친구와 약속한 겸재는 달빛에 이끌려 북악산에 오르면 화흥이 동했을 테고 붓을 휘둘렀을 것이다.

 

도성 내 가옥들은 안개에 파묻혀 보이지 않지만 멀리 남산과 관악산의 능선은 어슴푸레 잡히고 키 큰 나무숲도 거뭇거뭇 드러났다.

하늘과 안개는 여백으로 비워두어 먹보다 종이 바탕이 더 많은데 과감한 여백 덕분에 안개 낀 달밤 한양 풍광이 박진감 넘치게 다가온다.

이로써 비우면서 완성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

 

하지만 안개 낀 달밤이라도 이렇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겸재는 생략하고 단순화해 안개 낀 달밤이 주는 인상만 그린 것이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모네가 템스 강의 안개 낀 풍경을 그린 방식과 비슷하다.

진경산수는 실재와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부분은 빼고 필요한 부분은 강조하는 생략과 확대를 적절하게 섞는 화풍이다.

겸재는 이런 방법을 극대화해 '서울의 안개 낀 달밤 즉 장안연월長安烟月'을 가장 덜 그렸어도 가장 사실감 넘치는 그림으로 완성했다.

 

겸재 덕분에 보름달 뜬 날 이 그림을 가지고 북악산에 오른다면 250년 전 겸재가 보던 남산 위에 뜬 달을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때 귓가에는 어렸을 때 즐겨 부르던 동요가 메아리친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정선鄭敾(1676~1759)은 영조 때의 화원으로 활약하면서 조선시대 화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 난곡蘭谷. 정선은 84세의 천수를 누리면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창안하고 발전시켜 추상화까지 이룬 조선 회화 사상 제일의 대가이다. 산수뿐만 아니라 인물, 꽃, 풀, 벌레 그림에 두루 정통했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경물에서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해 가장 그림답고 아름답게 표현한 데 큰 가치가 있다. 정선은 자신의 호처럼 평생 겸소하게 화도畵道에 정진해 평생 쓴 몽당붓이 무덤을 이뤘다고 하니 조선의 화성畵聖, 묵성墨聖이라 불러 마땅할 것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을 따랐던 일군의 화가를 정선파라고 부른다.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등이 정선의 대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글은 탁현구 지음 '그림소담-간송미술관의 아름다운 그림'(디자인하우스, 2014)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19. 1. 30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