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현재 심사정 "어약영일" 본문

글과 그림

현재 심사정 "어약영일"

새샘 2019. 2. 19. 21:05

어약영일魚躍迎日 - 물고기가 뛰어 해를 맞이하다


                         <심사정, 어약영일, 종이에 담채, 129×57.6, 1767년, 간송미술관>

 

일렁이는 파도가 하늘까지 삼킬 듯 거세다.

돌고 도는 물결 가운데 수염이 멋진 잉어 한 마리가 몸통을 비틀고 비늘을 퍼덕이며 물 위로 솟구치려 한다.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높은 파도에 휩쓸릴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맑은 눈빛은 태양을 향한다.

눈동자에 정기가 담기는 건 만물이 그러하다.

어떤 난관도 저 태양을 향해 솟구쳐 오르려는 의지를 막지 못하리라는 자신감이 눈빛에 담겨 있다.

잉어는 글공부하는 선비를, 태양은 임금을, 파도는 벼슬길에 오르는 어려움을 상징한다.

 

중국 황하 상류의 지류에 위치한 용문龍門이란 땅에 삼단 폭포가 있는데 잉어가 이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용이 되어 승천한다는 전설이 있다.

이때 잉어가 용이 되는 것은 이름 없는 선비가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는 것을 의미해 이를 등용문登龍門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글공부하는 선비들이 이 내용을 담은 그림을 벽에 걸어놓고 과거 급제를 바라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 그림에서는 폭포 대신 바다로 표현했다는 점이 특이한데 화가가 독창성 있는 도상을 창안했다.

 

이 그림은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이 환갑인 1767년에 그린 것이다.

평생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어 그림에 모든 것을 바친 선비 화가의 원숙한 붓질이 종이 위에서 천연스럽게 미끄러졌다.

 

잉어 아래에는 짙은 먹선과 선염으로 박두해 오는 격랑을 표현했고, 잉어 위에는 한 띠의 여백으로 숨을 고른 후 다시 안개가 어슴푸레한 상태에서 옅은 먹선과 선염으로 원경으로 나타냈다.

 

그런 다음 다시 희미한 한 줄의 안개 위로 둥근 해를 띄웠고, 해 아랫부분을 안개로 가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안개가 해 주변을 감싸 태양이 붉은 노을에 파묻히지 않고 돋보이게 한 것은 대가의 솜씨이고, 커다란 인장을 찍어 태양과 균형을 맞춘 것 역시 거장의 능력이다.

 

심사정은 용 그림을 즐겨 그렸는데, 이는 아마도 벼슬길에 나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닐까 싶다.

이 그림의 상단에 적힌 '정해춘중위삼현희작丁亥春仲爲三玄戱作'이란 화제가 '정해년인 1767년 음력 2월(중춘=춘중) 삼현을 위해 장난삼아 그리다'라는 의미이므로 삼현이란 선비의 급제를 축하하며 그려준 것으로 보인다.

 

<심사정, 어약영일 &nbsp;부분>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태양은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누군가이다. 

그 누군가란 선비들에게는 당연히 임금이었다.

 

심사정沈師正(1707~1769). 자는 이숙, 호는 현재玄齋. 묵포도도墨葡萄圖로 유명한 화가 죽창竹窓 심정주沈廷冑(1678~1750)의 아들. 조선의 고유색을 드러냈던 진경 문화는 영조 대에 꽃을 피었기에 심사정은 어릴 적 겸재 정선에게 그림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즈음 조선의 일부 문인들은 진경 문화를 비판하며 명문화의 철저한 계승을 표방하고 나섰다. 회화에서 이런 흐름을 주도한 인물이 심사정과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다. 이들은 중국의 남종화풍南宗畵風을 본격적으로 수용해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이 풍미하던 당시 화단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심사정은 명의 심주沈周, 문징명文徵明 등 오파화吳派畵에서 시작해 북송의 동원董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남종화의 원류를 익혀 남종화의 조선화에 성공했다. 심사정은 산수 이외에도 화훼, 초충, 영모 등에도 능했다. 심사정은 <고씨화보顧氏畵譜>를 즐겨 그렸다. 중국 문화권에서는 회화 학습의 방도로 옛 그림의 임모臨摹를 중요시했다. 이러한 전통은 옛 그림을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본받고자 하는 화가의 뜻을 빌려 창작에 응용하는 방작倣作으로 발전했다. 조선 시대에도 다양한 형태로 임모와 방작이 이루어졌다. 심사정은 조선시대 화가 중 가장 많은 방작을 남긴 화가이다.

 

※이 글은 탁현규 지음 '그림소담-간송미술관의 아름다운 그림'(디자인하우스, 2014)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19. 2. 1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