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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20 익산2 - 왕궁리 오층석탑, 왕궁리유적 전시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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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20 익산2 - 왕궁리 오층석탑, 왕궁리유적 전시관

새샘 2019. 5. 25. 22:02

익산 왕궁리유적 전경(출처 - 네이버 지도)

 

익산 왕궁리王宮里 유적은 익산리 왕궁면의 백제 유적으로서 왕궁리성이라고도 부른다.

이 왕궁리 유적은 마한의 도읍지설, 백제 무왕이 천도설 또는 별도설, 안승의 보덕국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이 전해지는 유적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백제 왕실이 수도 사비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백제왕궁터란 설이 유력하다.

 

이곳 익산을 비롯하여 부여와 공주의 유적지 등 총 3개 지역 8곳의 유적백제역사유적지구란 이름으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왕궁리 유적은 적어도 백제 후기(7세기 중엽)부터 통일신라 초기(7세기 후엽)까지의 기간 동안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 가마와 탑을 에워싼 구릉지를 중심으로 평지성으로 생각되는 성곽유물을 찾았기 때문이다.

 

1989년부터 20년 넘게 계속되어 온 발굴조사를 통해 그 전모가 확인되고 있는데, 백제 무왕대에 왕궁으로 건립되었다가 후대에는 왕궁의 주요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사찰이 건립되었다. 왕궁에서 사찰로 변화된 계기와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익산쌍릉이 백제왕궁의 서쪽에 조성되어 있어 의자왕이 부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원찰로 만든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발굴된 주요 시설로는 궁궐을 보호하기 위한 궁장宮墻, 건물을 둘러싸는 석축, 정전 건물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지, 기와를 쌓아두는 와적기단 건물지, 왕궁 주변의 정원, 생활 필수품을 만드는 공방과 생활관련시설, 그리고 사찰관련시설 등이다.

 

왕궁리 유적을 대표하는 아이콘은 뭐니뭐니해도 국보 제289호 오층석탑이다. 그리고 절터 배치를 알려주는 유물과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직사각형 성은 백제 후기의 것이다.

 

왕궁리 오층석탑 옆 금당터 - 금당金堂이란 절의 중심 건물 즉 법당으로서 노란색 또는 금으로 만든 부처를 모신 불전을 말한다.

 

왕궁리 오층석탑 전경 - 왕궁리 오층석탑은 단층 기단의 8.5미터의 석탑이다. 목탑 양식의 미륵사지 석탑을 본떠서 만든 백제계 석탑으로서 해체 복원 과정에서 유물이 많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발굴 유물로는 금강경판, 금동제 사리함, 사리병 등이며, 발견된 석탑 기초로 보아 원래 목탑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동시에 통일신라시대 명문 기와도 출토되었기 때문에 축조 시기를 놓고 백제, 통일신라, 고려초라는 견해들이 있다.

 

왕궁리 유적전시관은 왕궁리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 300여점을 전시하여 문화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8년 개관하였다. 대표 전시유물은 백제왕궁을 상징하는 금제품, 유리제품, 인장기와, 토기류, 도가니 등이 다.

 

전시관 입구 표지석과 출입문

 

왕궁리 유전전시관 건물 파노라마

 

왕궁리 유적전시관 앞 정원에 전시되어 있는 출토 돌(석石제품) 안내판과 초석들

 

전통한복 입고 기념촬영하는 왕이 앉는 자리인 어좌御座 체험

 

왕궁리 유적 전경 사진과 축소 모형

 

왕궁리 유적 출토유물 안내판

 

굴뚝 즉 연통 장식

 

기와

 

금 장신구

 

유리 장신구

 

백제 수막새 안내문과 수막새

 

큰 항아리

 

부뚜막에 걸 수 있도록 만든 전달린 토기(유악顎토기)백제 사비시대를 상징하는 대표 유물

 

왕궁터 제석사 폐기장에서 출토된 다양한 소조상 조각들(소조상편塑造像片)

 

도가니

 

왕궁리 유적의 정원

 

토기

 

 

2019. 5. 25 산타와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