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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오주석의 단원 김홍도 "송하맹호도" 해설

새샘 2019. 6. 13. 13:40

<세계 최고의 호랑이 그림>

 

김홍도,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 비단에 채색, 90.4×43.8㎝, 삼성미술관 리움(사진 출처-출처자료)

 

이 호랑이 그림은 누가 봐도 정말 엄청나게 잘 그렸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단언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호랑이 그림이 분명하다!

이 작품은 당연히 국보급인데 아직 국보 지정은 되어 있지 않다. 

그것도 그냥 국보급이 아니라 이를테면 초국보급이다.

이 그림은 크기가 1미터도 안 되는 작은 그림이다.

그런데도 보는 이를 압도하는 기세가 화폭에 충만하다.

 

 

송하맹호도의 여백 구조 (사진 출처-출처자료)

 

이런 동물 그림이나 화조화花鳥畵 같은 그림을 볼때는 그려진 형태, 즉 호랑이며 소나무 등을 보기 전에, 우선 여백부터 살펴봐야 한다.

위 여백 구조 그림에서 보듯이 다리 좌우의 여백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하나 둘 셋 하고 점차 커진다.

소나무 잔가지의 여백도 아래서 위쪽으로 또 하나 둘 셋 하고 커진다.

굵고 긴 꼬리로 나누어진 여백 또한 엇비슷한 크기로 하나 둘,

그렇게 해서 모두 여덟 개의 균형 잡힌 여백이 화폭 바깥쪽에 딱 포진을 하고, 육중한

호랑이 몸통 위에는 또 그만큼 크고 시원스럽게 터진 여백이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았.

 

호랑이는 어슬렁거리다가 느닷없이 쓰윽 하고 머리를 내리깔았는데

그 굽어진 허리의 정점이 그림의 정중앙을 꽉 누르고 있다.

화폭이 호랑이로 가득 찬 것이다.

구성이 정말 기가 막힌다. 절로 위엄이 넘친다.

 

이 그림이 세계 최고의 호랑이 그림이라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왜냐? 첫째는 조선 호랑이 자체가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동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벵갈 호랑이 같은 열대 호랑이도 있지만, 

열대 범은 조선 범보다 애초 체구도 작고, 더운 지방에 사는 탓에 귀가 크다. 체열을 방출해야 하니까.

그래서 새끼 범처럼 멍청해 보인다. 터럭도 촘촘하지 않고 성글면서 짧다.

문양이 우리 조선 범만큼 아름다울 턱이 없다!

우리나라 범은 가장 클 뿐만 아니라, 그 문양의 아름다움이 어디에도 비할 데가 없다.

 

둘째, 생태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과거 호랑이가 지천으로 많았던 나라이다.

정조 때도 지금 남태령고개 같은 곳은 밤에 범이 무서워서 넘을 수 없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화여대 앞 아현고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야담 속에서 주인공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도 단연 호랑이였다.

더구나 우리 건국 신화를 보라.

호랑이는 단군 할아버지와 함께 등장하는 친구가 아니라, 바로 단군 어머니인 웅녀와 동창이었다!

 

아름다운 호랑이가 그토록 많았고 또 역사적·문화적 연원까지 깊다 보니,

조선 사람이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랑이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조건은 다 갖추어진 셈이다.

 

 

송하맹호도의 호랑이 전신 세부 (사진 출처-출처자료)

 

위 호랑이 전신 세부 그림을 보면서 어떻게 생겼나 찬찬히 살펴보자.

조선 범의 특징은 조선 사람을 꼭 빼 닮았다는 것인데, 한국 사람은 터럭이 적고 다리는 짧다.

눈이 작은 것도 극한지 환경에 적응한 데서 나온 것이다.

 

조선 범은 귀가 다부지게 작아 당찬 느낌을 주며 꼬리가 아주 굵고 길어서

천지를 휘두를 듯한 기개가 있다. 그리고 발이 소담스럽게 크다.

이렇게 육중하면서도 동시에 민첩하고 유연해 보이는데, 얼굴은 위엄이 도도하다는 느낌이지,

겉으로만 으르렁거리며 무섭게 보이는 여느 호랑이 그림과는 완연히 다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호랑이 그림들 뾰족한 바위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어흥' 하고 입을 벌려 주홍빛 혓바닥과 날카로운 이빨들을 내보이는 그림이 많은데,

그건 일본식 그림이지 우리 식 그림이 아니다.

 

일본 열도에는 호랑이가 없었다. 대신 원숭이가 많이 자생한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호랑이란 그저 굉장히 무서운 짐승이라는 정도의 인식이 옅고 천박했지만,

호랑이와 수만 년을 함께 살아왔던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에 대한 상념이 아주 깊었다.

그래서 표정을 이렇게 의젓하게 그려냈다!

마치 허랑방탕한 못난 자식을 혼쭐내는 엄한 아버지 같은 느낌이다.

아니면 박지원 선생의 <호질虎叱>에 나오는, 썩어빠진 선비에게 호통 치는 위엄 있는 호랑이라고나 할까?

 

우리나라 호랑이는 그냥 없어진 게 아니라

일본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장기간 계획을 세워 멸종시킨 것이다.

한 땅에서 어울려 사는 생명체는 서로가 닮게 마련이다.

그래서 조선총독부에서는 조선 사람의 혼이 조선 호랑이와 닮았다고 생각해서,

아예 그 뿌리를 송두리째 뽑으려 했던 것이다.

 

일본인들은 1914년부터 1917년까지 대대적으로 포수를 동원해서

조선 범을 마지막 한 마리까지 끝내 잡아 죽여 멸종시켰다.

1917년 경주에서 포획된 호랑이가 마지막이었다고 전하는데 정말 비극적인 일이다.

하지만 겨레의 혼을 상징하는 이 아름다운 동물이 아직도 남한에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임순남이라는 야생 호랑이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그나마 몇 마리 안되는 호랑이조차 휴전선 때문에 가로막혀,

제 식구끼리 번식을 할 수밖에 없어서 곧 대가 끊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하루 속히 휴전선 철책을 단 100미터라도 걷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북 이산된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초인적인 사실성으로 은밀한 생태까지 남김없이 표현>

 

송하맹호도의 호랑이 머리 세부(사진 출처-출처자료)

 

그런데 이 호랑이 그림을 어떻게 그렸을까?

위 호랑이 머리 세부 사진을 자세히 보자.

이 사진은 15센티미터도 안 되는 호랑이 머리 부분만을 확대한 것인데,

이렇게 실바늘 같은 선을 수천 번이나 반복해서 그렸다.

 

정말 대단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이건 숫제 집에서 쓰는 반짇고리 속의 제일 가는 바늘보다도 더 가는 획이다.

이런 그림을 그려 낼 수 있는 화가는 지금 우리 세상에 없다.

웬만한 화가는 저 다리 한 짝만 그려 보라고 해도 혀를 내두를 것이다.

이런 묘사력은 그림 그리기 이전에 정신 수양의 문제 같은 것이 전제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이렇듯 섬세한 필획을, 검정,갈색, 연갈색, 그리고 배 쪽의 백설처럼 흰 터럭까지

수천 번 반복해서 그렸지만 전혀 파탄이 없다.

파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묵직한 무게는 무게대로, 문양은 문양대로,

그리고 생명체 특유의 유연한 느낌까지 다 살아 있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일하는 게 대충대충이야"하는 얘기가 있다.

이렇듯 섬세하기 그지없는 그림을 그리고 감상했던 사람들이 대충대충이었을까?

 

※이 글은 오주석 지음,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2017, 푸른역사)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김홍도金弘道(1745~1806): 자는 사능士能, 호는 여러 개 있지만 단원檀園이 대표적인 호.

조선 영조와 정조 때의 도화서 화원 화가. 현동자 안견, 겸재 정선, 오원 장승업과 함께 조선의 4대 화가.

스승인 강세황의 추천으로 어려서부터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시, 글씨, 그림에다 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어 시서화악詩書畵樂절四絶로 불린다.

자신이 남긴 단원풍속화첩(보물 제527호) 때문에 우리들에겐 풍속화가 잘 알려져 있지만,

산수화, 도석인물화(신선도), 영모화(화조화, 동물화) 등 거의 모든 회화 영역에서 작품을 남겼다.

 

2019. 6. 1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