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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단원 김홍도 "마상청앵도" 해설 본문

글과 그림

오주석의 단원 김홍도 "마상청앵도" 해설

새샘 2019. 6. 1. 16:46

김홍도, 마상청앵도, 종이에 수묵, 117.0x52.2㎝, 간송미술관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말 위에서 꾀꼬리 울음소리를 듣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이렇게 여백이 망망하니 넓다는 것은 화가가 나이가 많이 들어 원숙해 졌다는 뜻이다.

음악가나 화가 같은 예술가는 늙으면 늙을수록 그 경지가 깊고 높아지게 마련이다.

 

버드나무며 꾀꼬리는 아주 단순하고 일체 군더더기가 없다.

짐꾼 없이 총각 말구종만을 내세워 가뿐하게 채찍 하나만 들렸다.

버드나무는 또 쭈욱 화면 가장자리로 밀어내서 잔가지 하나만 늘어뜨렸다.

꾀꼬리도 '여기 있소' 하고 운만 떼었다.

 

 

마상청앵도의 구조

 

위 <마상청앵도의 구조>에서 보듯이 하나, 둘, 셋, 비스듬한 사선들이 그림의 핵으로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러니까 버드나무 잔가지도 덩달아 비스듬히 그렸는데, 여백 너머 그림 위쪽의 화제畵題를 보자.

화제 글씨가  이따금씩 켜지고 진해졌는데, 그것이 옆의 행으로 서로 이어지면서 비스듬한 선을 긋고 있다.

 

정말 경이롭다!

 

그림 구도의 핵심인 평행 사선의 흐름을 화제 글씨가 멀리서 메아리치듯 울리게끔 썼다.

이 작품을 20년 넘게 보아왔지만 화제 글씨가 이렇게 쓰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겨우 1년 전이다.

한 해 전에, 이 단순한 그림을 어째서 걸작이라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고

찬찬히 들여다 봤더니, 아니 글쎄, 멀리서 화제가 이렇게 메아리를 치고 있는 게 아닌가!

 

 

마상청앵도의 제시 세부

 

위 <마상청앵도의 제시題詩 글씨> 솜씨 자체는 어떤가 한번 보자.

언뜻 보면 잘 쓴 글씨 같지 않다. 그렇지만 공부를 많이 한 글씨이다.

이 글씨가 왜 좀 거칠어 보이느냐 하면, 술을 마시고 썼기 때문이다.

제가 《단원 김홍도》 책을 내면서 2년 동안 오로지 단원만 공부했다.

그래서 단원의 글씨를 보면 대충 나이가 몇 살 무렵인지, 또 어떤 상태에서 썼는지 등을 짐작할 수 있는데, .

이 글씨는 약간 술을 먹고 쓴 글씨이다.

 

한시부터 읽어보자.

가인화저황천설 佳人花底簧千舌 아름다운 여인이 꽃밭 아래서 천 가지 목소리로 생황을 부나

운사준전감일쌍 韻士樽前柑一雙 시 짓는 점잖은 선비가 술상 앞에 귤 한 쌍을 올려놓았나

역란금사양류애 歷亂金梭楊柳崖 어지럽다 금빛 북이 수양버들 가지 늘어진 강기슭에 오르락내리락하니

야연화우직춘강 惹烟和雨織春江 뽀얗게 보슬비가 내려 봄 강에 비단을 짜는 것이냐

 

첫째 연은 아름다운 꾀꼬리의 노랫소리이고,

둘째 연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꾀꼬리의 어여쁜 모양새이며,

셋째 연은 꾀꼬리가 오르내리는 움직임이  비단 깁을 잣는 북(베틀에서 비단 짜는 도구) 같은 모양새이고,

넷째 연은 그림 속에 보이는 저 텅 빈 여백은 지금 봄비가 내리고 있어 흐려져 없어진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 제시의 셋째 연에서 '亂 어지럽다'라는 표현에서 누룩 냄새가 슬슬 풍기고 있다.

마지막 넷째 연이 이 그림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가장 좋은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시와 그림이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제시는 단원 자신이 지은 시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구성도 절묘하다.

그림을 볼 때 우리 눈은 화면의중간에 닿는다.

그런데 바로 그 아래서 선비가 고개를 쳐들고 있으니까 그림을 감상하려다 보면

그만 보는 이의 눈과 선비의 시선이 딱 하고 서로 마주치게 된다.

그린 건 간단해도 작품 구상에 대한 생각이 아주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상청앵도의 인물 세부

 

이번엔 위 인물 세부에서 그려진 선비를 보자.

기품 있게 고개를 쳐들고 꾀꼬리 소리에 넋이 빠져 바라보고 있다. 봄비에 속옷 젖는 줄 모르고 말이다!

옷을 그린 윤곽선을 보면 가늘고 메마른 칼칼한 붓질로 이따금씩 각을 주며 그려서,

그 집 안주인이 얼마나 다림질을 곱게 해 내 보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이 선비가 너무 정이 많은 양반이라서 봄비에 속옷 젖는 줄 모른다.

 

그리고 버드나무 잎새만 보이고 실가지는 없다.

그 많은 잔가지가 다 어디로 갔을까?

누가 이걸 제대로 그린다고 버드나무 실가지 선을 선비의 코앞에다 쭉쭉 그려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림 맛이 뚝 떨어져 버릴 것이다!

선비의 봄꿈이 완저히 깨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버들잎 긴 것을 누가 모를까?

하지만 화가는 이파리를 마치 꽃비가 내리듯 툭툭 쳐내고 말았다.

이런 경지를 옛 분들은 뭐라고 했느냐 하면 

'필단의연必斷意連'이라 즉 '붓은 끊어져도 뜻은 이어진다"고 얘기했다.

 

또 말 그림엔 아예 윤곽선이 없다.

윤곽선을 따로 그리면 그만큼 그림은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워진다.

몰골沒骨, 즉 윤곽선 없이 단번에 그리는 화법으로 척척 그려냈다.

그러니까 선비가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마상청앵도의 꾀꼬리 세부

 

그리고 위 꾀꼬리 세부를 보자.

이게 도대체 꾀꼬리인가? 아니면 병아리인가? 정말 엉터리다.

나무 둥치를 그린 선을 보아도 술 꽤나 마시고 그린 그림!

 

이 작품은 분명히 술 꽤나 마시고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게 때문에 그림의 요점이 잘 드러나 보인다.

아주 직정적直情的이며 시적詩的인 그림.

 

세세하게 그리진 않았지만 S 자로 능청거리는 저 버들가지 굽은 선의 형태에서

봄날의 무르익은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의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 선비와 동자를 보자.

우리 조상들은 인물을 그릴 적에 항상 우리 자신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점잖고 공부 많이 한 학자들은 상체가 길고 다리를 짧게 그렸지만,

거꾸로 말구종 같은 아랫사람은 머리는 작고 다리는 길게 그렸다.

 

요즘 청소년들은 롱다리, 숏다리 하며 안쓰러운 얘기를 하고,

자신의 짧은 다리를 유독 창피해 하곤 하지만, 예전에 하인을 그릴 때에나 다리를 길게 그렸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일하기 좋으라고......

그리고 상체가 길어야 장자長者의 풍風이 있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모든 가치의 중심이 우리 자신에게 있었다.

지금은 남의 나라 문화에 떠밀려 다니기 때문에, 요즘 TV를 보면 온통 서양식 얼굴들이 판을 친다.

옛 분들이 요즘 서양식 미녀를 보았다면 예쁘다고 했을까요?

춘향이는 하나도 없고 향단이 뿐이라고 했을 것이다.

 

우스갯소리 좀 하면,

전통 관상법에서 서양 사람처럼 쑥 들어간 눈은 음험한 상이라 한다.

뾰족한 코는 팔자가 드센 상이고..

그리고 줄리아 로버츠처험 귀밑까지 닿는 큰 입을 보면

그만 깜짝 놀라서 '저 애, 곳간을 다 들어먹겠다'고 했을 것이다.

예전엔 쌍꺼풀도 도화살挑花煞, 즉 화냥기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사실 미모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마의상서麻衣相書》라는 관상 책에

'얼굴 좋은 것은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은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었다.

정조 때 영의정 채제공 같은 분은 사팔뜨기였는데도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았다.

 

 

※이 글은 오주석 지음,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2017, 푸른역사)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김홍도金弘道(1745~1806): 자는 사능士能, 호는 여러 개 있지만 단원檀園이 대표적인 호.

조선 영조와 정조 때의 도화서 화원 화가. 현동자 안견, 겸재 정선, 오원 장승업과 함께 조선의 4대 화가.

스승인 강세황의 추천으로 어려서부터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시, 글씨, 그림에다 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어 시서화악詩書畵樂절四絶로 불린다.

자신이 남긴 단원풍속화첩(보물 제527호) 때문에 우리들에겐 풍속화가 잘 알려져 있지만,

산수화, 도석인물화(신선도), 영모화(화조화, 동물화) 등 거의 모든 회화 영역에서 작품을 남겼다.

 

2019. 6. 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