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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오주석의 단원 김홍도 "주상관매도" 해설

새샘 2019. 5. 10. 18:35

김홍도, 주상관매도, 종이에 수묵담채, 164 ×76㎝, 개인

예술 작품엔 위대한 작품이 있고, 또 사랑스러운 작품도 있다.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은 정색을 하고 똑바로 서서 박물관 같은 곳에서 바라보기에 걸맞은 것이라면,

사랑스러운 작품은 이를테면 나만의 서재에다 걸어 놓고 늘상 바라보면 마음이 편할 것 같은,

그런 그림을 말한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배 위에서 매화를 바라보는 그림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

전형적인 사랑스러운 그림이다.

 

그림이 텅 비었다!

겨우 화면의 5분의 1 정도밖에 그리지 않았다.

남자 어른 키만 한 큰 그림인데

어떻게 화가는 요만큼만 그리고 그림을 완성하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역시 서양식으로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그림을 보면 X자만 그려진다.

하지만 이렇게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비껴 보면 자연스럽게 주인공이 잡힌다.

 

단원 김홍도는 화가일 뿐만 아니라 글씨도 잘 썼고, 게다가 얼굴빛이 희고 살이 두툼하게 잘 생긴 백석白晳 미남에다 키가 훤칠하게 컸는데 성격까지 아주 좋았던 사람이라고 전하는 기록이 여럿 남아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홍도는 또 당대에 유명한, 소문난 음악가였다는 것이다.

 

김홍도가 지은 시조가 두 수 남아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이 시조다.

 

"봄물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우희 물이로다.

이 중에 늙은 눈에 보이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어떤가? 시조의 경계가 이 그림하고 아주 똑 같지 않은가?

언덕 중앙 부분만 초점이 잡혀서 분명하고

주변으로 갈수록 어슴푸레하게 보이고 뿌예지면서 여백 속으로 형상이 사라진다.

 

이 꽃나무 언덕의 모습을 만약 동자가 보았다면, 아주 깨끗하게 보였을 것이다.

노인이 늙은 눈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여기만 겨우 분명히 보이는 것이다.

이거 정말 기가 막힌 작품이 아닌가!

 

사람 마음속에 깃들여 있는 영상을 끄집어내는, 보는 그 사람과 함께 그렸다.

20세기 서양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꿈조차 못 꾸던 경지이다.

사물과 함께 그것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까지 함께 바라본다는 것은 거의 명상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늙은 단원의 심력心力을 알 수가 있다.

 

화가는 원래 두보의 시 한 수를 감상하고서,

그 남은 흥취로 한편으로는 시조를 짓고 또 한편으로는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되는데,

여기 화제 쓴 글씨를 좀 보자.

약간 기울여 써서 그 연장선을 따라 눈길을 옮기다 보면 아래쪽 주인공 노인의 주황빛 옷과 만나는데,

이것이 글씨 위아래 찍은 주홍빛 도장 빛깔과 기막히게 어울린다.

무채색 바탕에 벽돌빛의 어울림이 얼마나 고상한 것인지, 아마 여성분들은 잘 알 것이다.

수묵화의 먹빛과 주홍빛 붉은 도장 색이 한데 어울려 고상한 느낌을 주고 있다.

 

김홍도, 주상관매도, 꽃나무 세부

런데 언덕 위 꽃나무 세부를 보면 이렇게 거칠게 그려졌다.(바로 위 그림)

거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나뭇가지가 아래는 좁고 끝이 오히려 넓다.

이거 엉터리 그림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화가의 의도는 노인의 눈에 겨우 이 부분만 초점이 잡혀 진하게 보인다는 것을 말하는데 있다.

 

그리고 참 기막힌 점은 언덕 가장자리로 가면서 묵선의 농담이 흐려지는 동시에

물기도 함께 빠져서 완전한 여백 속으로 사라져 간다는 점이다.

그림 주인공인 노인도 삶의 가장자리에 서서 죽음이 가까운 분인데,

그분이 바라본 풍경의 표현조차 그런 내력에서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원래 두보의 한시는 그가 죽던 해인 59세에,

만날 수 없는 먼 고향의 식구들을 그리면서 넋을 놓고 하염없이 언덕 위의 봄꽃은 바라보는 장면이다.

그래서 그림을 아스라하니 유有와 무無 사이를 이렇게 맴도는 느낌이 들게 그린 것이다.

 

김홍도, 주상관매도, 화제 글씨 세부

김홍도는 글씨를 굉장히 잘 쓰는데, 글씨를 보니 약간 기운이 없다.(바로 위 그림)

이건 늙었기 때문이며, 그것도 많이 늙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년화사무중간老年花似霧中看'이라는 글씨, 즉 '늙은 나이에 보는 꽃은 안개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말인데, 글씨만 보아도 단원이 환갑이 다 되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홍도, 주상관매도, 배를 타고 있는 노인과 동자 세부

바로 위 그림의 주인공을 보자.

데생이 아주 간단하고 머리 같은건 아예 중간 붓으로 한번 툭 찍어 타원형 살색 점 하나로 표현하고 말았다.

그 앞의 동자는 또 눈만 콕 찍고 그만이다.

 

김홍도가 사람을 이렇게 그린 것은 다음과 같은 옛날 화론에 따른 것이다.

 

"먼 산에는 나무가 없고, 먼 강에는 물결치지 않고,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겐 눈이 없다"

 

즉 멀리 있는 것을 그릴 때 자세하게 그리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라는 거다.

'여기 노인이 계시다, 그 앞에 동자가 있고, 중간엔 조촐한 술상이 놓여 있다',

이렇게 슬쩍 운만 띄우는 것이 점잖고 격이 높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다음 부분이다.

여기 배를 그렸는데, 그 배를 내려다보이게 하지 않고 마치 물속에서 올려다 본 것처럼 그렸다는 점이다.

이게 아주 기막힌 점이 아닐 수 없다.

노인이 하염없이 꽃나무 언덕을 바라보고 있다.

화가 역시 그 노인의 마음에 완전히 공감하고 있다는 감정이입의 상태를 보여 주기 위해서

물 아래에서 위로 치며 본 듯하게 그렸다.

 

정말 멋진 그림이다!

 

※이 글은 오주석 지음,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2017, 푸른역사)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2019. 5. 10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