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오주석의 단원 김홍도 "무동" 해설 본문

글과 그림

오주석의 단원 김홍도 "무동" 해설

새샘 2019. 5. 4. 22:16

김홍도, 무동, 종이에 수묵담채, 27.0x22.7㎝, 보물 제527호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위 그림은 <삼현육각三鉉六角> 또는 <무동舞童>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북, 장구, 피리 둘, 대금(젓대라고도 함), 해금을 합해서 삼현육각이라고 하는데, 옛날 사또가 부임 행차를 하거나 큰 대갓집에서 잔치를 벌일 때 바로 이 삼현육각 풍류를 베풀었다.

한데 여기서 이상하게도 갓을 쓴 사람, 털벙거지 쓴 사람이 섞여 있다.

 

사실 이런 정경이란 숙종 임금 때만 하더라도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정조 연간이 되면 일반 서민들 중에 경제적으로 큰 부를 축적하면서 사회적으로 힘이 세져서, 점차 법도에 어긋나는 양반 행색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졌다.

심지어 양반을 사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아무리 나라에서 금했어도 완전히 금지시킬 수 없었다고 하는 기록이 여럿 전하는 것을 보면, 그건 이런 신분 해체 현상이 일반화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거꾸로 이때는 주변머리 없는 양반은 거의 평민이나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광대 패에도 들어가니까 이런 몰락 양반 광대를 비나비 광대라고 한다. 

그들이 여기에 섞여 있는 것이다.

사실 음악이란 게 저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무동의 구조

 

그럼 다시 <무동>의 구도를 보자(바로 위 그림).

<씨름>과 똑같은 원형 구도인데, 서양 사람들처럼 그림을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보면 이렇게 제일 중요한 인물인 춤추는 소년이 보이지 않게 된다.

즉 쏙 빠져 버리고 만다.

그러나 위 그림의 화살표 방향인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이렇게 바라보면 역시 주인공이 딱, 하니 눈에 걸려들게 되는 것이다.

 

무동의 원심적 구조

 

'쿵딱딱 쿵딱꿍'

이 그림은 눈길을 주자마자 '떠엉 덕쿵 떠꿍'하는 우리 옛 가락 소리가 들리게끔 잘 그려졌다.

전통 음악과 춤이 주제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식민지시대를 지내고 다시 서양 문명에 휘둘리게 된 뒤에 문화적으로 우리 것을 너무나 많이 잃어버리다 보니까, 이제는 국악을 듣고 즐긴 경험이 적어서 지금 그림 속 우리 소리를 귀로 들을 수 있는 분은 아주 적을 것이다.

 

하지만 화가는 저 흥겨운 풍악이 한창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점을 아주 기가 막히게 잘 표현했다.

하나하나 설명하기 전에 우선 전체를 보자.

일체 배경이 없는 그림이니까 원근감의 깊이를 주려고 농담의 차이를 더 크게 강조해서 분명하게 그렸다.

 

그리고 씨름이라는 것은 열심히 가운데를 들여다보는 구경거리지만, 음악은 연주자의 신명을 밖으로 풀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똑같은 원형 구도를 썼지만 이번엔 거꾸로 이렇게 바깥쪽으로 펼쳐지게끔 원심적으로 그렸다.

북채, 옷소매, 해금, 대금, 피리 등이 모두 밖을 향하고 있다.(바로 위 그림)

 

또 갓은 크고 벙거지는 작으니까 조형적으로도 '쿵딱딱 쿵딱쿵'하는 일종의 음악적 운율감이 느껴지게끔 했다.

구도에 은근히 신경을 많이 쓴 것이다.

 

무동의 북재비 세부

 

그럼 이제 얼마나 재미있게 놀고 있는지, 북 치는 사람인 북재비부터 살펴보자.(바로 위 그림)

이 사람은 북이 큰 장단을 맞추는 사람답게 듬직하게 생겼다.

아주 듬직하게 생긴 사내가 큰 장단을 맞추면서 맞은편 젓대며 해금 쪽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의 장구재비는 지금 잔뜩 흥이 달아올랐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원래 장구란 땅바닥에 놓고 쳐야 되는데 제 가락에 제가 취해 가지고 아예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

이게 사실 연주하기에는 불편한 자세이지만, 흥이 바짝 달아오른 것처럼 보이도록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어깨선에 가늘고 굵은 변화를 주면서 이따금씩 각이 지게 그렸기 때문에 들썩거린다는 느낌이 든다.

 

고개를 숙인 탓에 눈이 갓양태에 가려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분명 지그시 감은 듯하다.

우리 장구 가락은 들쑥날쑥 참 멋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타악기인데도 장구 '가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요즘 사물놀이 가운데 어떤 건 너무 속도만 빠른 데다 같은 장단을 지나치게 오래 반복적으로 쳐서 꼭 서양의 헤비메탈 음악 비슷한데, 원래 우리 풍류는 그 안에 바람이 들락날락할 수 있도록 변화무쌍하게 연주했던 음악이다.

한데 저 장구를 한번 잘 보면 이상하게도 폭이 아주 두껍다.

폭이 이처럼 두꺼운 장구는 없다.

이런 두꺼운 폭을 가진 장구 표현이야말로 화가가 우리 음악의 속내를 너무 잘 아는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대개 장구 오른편 채편은 얇은 가죽을 씌우는데 대나무 채로 쳐 탱탱거리는 소리가 나고, 왼편 북편엔 굵은 가죽을 입혀 맨손으로 두드리기 때문에 '두웅 두웅둥'하는 기막힌 저음이 난다.

대개 음악을 깊이 아는 사람들은, 이를테면 서양 보컬 같은 것을 듣더라도 낮은 베이스 기타 음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다.

그게 은근하고 멋진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화가는 장국 북편에서 나는 저음이 이토록 매력적이다 하는 점을 특별히 강조한 것이다.

 

무동의 피리재비 세부

 

삼현육각 팀이 연주를 하러 왔을 때 <무동> 그림 사진을 연주자에게 직접 들고 가서 보여 주고 작품의 첫인상을 물은 적이 있다.

국악을 많이 들으려고 늘 애쓰곤 있지만 전문가는 뭔가 남다른 느낌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척 보자마자 "아, 지금 악사들이 흥이 한창 달아올라서 참 잘 놀고 있군요."라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 걸 어떻게 압니까?하고 물었더니 저 피리재비를 보라고 하는 것이다.(바로 위 그림)

 

피리가 둘인데, 이 악기는 소리가 당차고 꿋꿋하면서 또 능청맞기도 하다.

악기가 조그마해서 이게 입에 닿은 서舌부분이(영어로 리드 reed) 너무 좁다.

입술을 꼭 물어야 하기 때문에 저절로 두 볼이 만두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래서 양반들은 잘 안분다.

듣기에는 좋지만 불 때 볼 모양새가 우스워지니까 체면이 깎이는 것이다.

한데 이걸 한참 불다 보면 입술이 굉장히 아프다.

 

이제, 이 왼쪽 사람을 보자.

옆으로 삐딱하게 빼어 물었다.

이런 모양새가 나오려면 벌써 30~40분 넘게 한참 피리를 불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오른쪽 사람은 착실한데 왼쪽 사람이 좀 요령이 부린다고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 하루는 청중 가운데 국악하시는 분이 쉬는 시간에 슬그머니 다가와 다름과 같이 얘기해 준 적이 있다.

피리 굵기를 보면, 왼편은 굵고 오른편은 가늘다.

굵은 건 향피리, 가는 건 세피리라고 한다.

군대식 말로 왼편은 사수, 오른편은 부사수다.

옛적엔 목피리, 곁피리라고 했다.

향피리는 소리가 우람해서 사수가 맡아 불고, 음량이 작은 세피리는 실력이 덜한 부사수가 분다.

그런데 향피리는 연주하기는 힘들고 세피리는 오래 불어도 그다지 입술이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왼쪽 향피리재비가 요령을 핀다고 한 말은 그를 그만 억울하게 모합을 잡은 꼴이 된 셈이다. 

 

무동의 젓대재비 세부

 

다음은 젓대재비다.(바로 위 그림) 

그런데 이 젓대라는 악기 대금大笒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는 특별한 악기다.

가로피리야 종류가 많지만, 젓대처럼 숨구멍 옆에 갈대청 구멍이 따로 있어서 휙휙하면서 거친 듯 박력 있게 떠는 소리가 나는 피리는 우리나라에만 있다.

 

 이건 지공指空 구멍이 넓기 때문에 손가락이 길어야 연주하기 좋으니까 키 큰 사람이 불기 유리하다.

 그래서인지 인물이 늘씬해 보인다.

그리고 젓대 소리는 하늘거리는 느낌이 그만인데, 눈매도 곱고 뺨에 볼우물도 참 예쁘게 졌다.

양반들이 특히 이 젓대를 좋아했다.

그런데 부는 모양이 좀 이상하다.

악기를 왼편으로 들고 불고 있는 것이다.

 

플루트 같은 악기는 대개 오른쪽으로 들고 분다.

그래서 이건 약간의 해석을 더해서, 아! 역시 음악의 신명을 풀어내기 좋게 도를 원심적으로 펼치려니까 자세를 반대로 그렸구나.

즉 일부러 좌우를 뒤집어 놓았다고 국악 하시는 분께 말했더니 또 '그게 아닙니다.'라고 한다.

위의 피리재비를 보면 향피리(목피리)는 오른손이, 세피리(곁피리)는 왼손이 올라가 있다는 것이다.

왼손잡이는 저 편한 대로 손 모양의 바꿔서 연주하는게 관악기고 한다.

서양 사람들은 왼손잡이가 많아서 기타 칠 때 거꾸로 잡고 치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은 경우다.

그림 구도에 맞춰 일부로 조작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그림 한 점을 있는 대로 찬찬히 본다는 일, 생각 밖으로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또 한번 느꼈다.

 

무동의 해금재비 세부

 

이 작품에도 또 틀린 그림이 있다.

한번 찾아보자.(바로 위 그림)

 

깽깽이, 즉 해금奚琴 주자 즉 해금재비의 왼손이 잘못 그려져 있다.

해금이란 악기는 두 줄을 안으로 잡고서 세게 당기거나 아래쪽을 누르면 소리가 높아지는 악기다.

그래서 흔히 해금 소리는 '주물러낸다'로 한다.

 

그런데 손등이 보이게 거꾸로 잡고 있다.

아니, 이 화가 이거 왜 이러는 걸까?

그림마다 하나씩 엉터리 같은 실수(?)가 보인다.

역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씨름>에게 말했듯이 한 가지 해석은 틀린 그림을 일부러 넣었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진짜 실수일 거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앞서 본 씨름 구경꾼도 오른편 아래 외진 구석에서 뒷모습을 보였다.

이 화가는 뒷모습만 구석에 나오면 좌우를 바꾸든지 앞뒤를 바꾸었다.

 

실수라면, 이건 이를테면 우뇌가 발달한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라고 생각된다.

우리 뇌 가운데 좌뇌는 수학적·논리적·이성적 뇌고, 우뇌는 언어나 예술들을 다루는 감성적인 뇌다.

크게 민족 전체를 비교해 보아도 그 성향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일본 사람들은 좌뇌가 발달해서 수학을 잘하고 대체로 규칙을 잘 따르는 성향이 있지만 예술적 독창성은 좀 부족하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뇌가 특히 발달해서 그릇 하나를 만들어도, 그림 한 장을 그려도, 또 소리를 하더라고 뭔가 저만의 특색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일이 많다.

사회적으로 아주 높은 사람을 대할 때도 '너만 잘났냐, 나도 잘났다'하는 개개인의 자부심이 강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우리 전통 예술에 뭔가 불뚝거리는 듯한 힘찬 기운이 넘처나는 건 바로 한국인의 우뇌가 우세하기 때문이라고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뇌가 우세한 사람, 즉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사람들은 조형적으로 전후좌우를 뒤바꾸는 실수를 많이 한다고 한다. 

도올 김용옥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고무신의 왼짝 오른짝을 제대로 찾아 신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런 실수는 우뇌 발달 과잉인 사람들이 가끔 한다고 하다.

그건 이를테면 우리 눈의 망막에 거꾸로 잡힌 영상을 좌뇌의 해석으로 바로잡지 않은 채 순간적으로 그대로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뭐 상당히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본인이 보기엔 역시 이 틀린 그림들이 실수라기보다는 아무래도 재미있으라고 일부러 만들어 넣은 것 같다.

우선 좌뇌건 우뇌건 간에, 대화가 김홍도가 어렇게 쉬운 실수를 했으리라고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을 고백하자면, 원래는 본인도 우뇌의 우세로 인한 화가의 실수를 본 적 있다.

그러나 아까 얘기했듯이 이 풍속화첩은 서민들이 사서 보았던 염가 상이다.

수요자인 서민 위주로 그린 그림인 것이다.

그래서 값싼 장지 바탕에 어려운 한자 글씨는 하나도 없고, 하다못해 씨름도 상민 차림이 양반 행색을 이긴 그림인 것이다.

 

무동의 무동 세부

 

이제 마지막으로 주인공, 춤추는 아이 무동을 보자.(바로 위 그림)

놀랍지 않은가? 이제까지 봤던 어떤 선線과도 다르다.

그림을 잘 본다는 것은 바로 이런 선의 미묘한 움직임을 보고 음미할 줄 아는 것이다.

 

이게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서, 김홍도의 도시라는 안산에 가보면 아파트 벽 같은 곳에 이 장면을 그려 놓은 곳이 많지만, 원작과는 아주 다르다.

 

선을 한번 찬찬히 살펴보자.

다른 악사들은 전부 사인펜처럼 굵기가 일정한 선으로 그렸지만, 유독 이 소년만 다르다.

쳐든 왼팔에선 꺾이는 부분마다 힘이 우뚝우뚝 서면서 굵어지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휙하고 뿌리친 긴 천 조각에서는 바람소리가 쌩!하고 날듯 대단한 속도감이 느껴진다.

 

오른팔 소매 맨 끝 쪽을 보자.

붓질을 하더라도 꾹 눌러 거지고 내리꽂았다가 반동으로 위로 퉁겨 올라오고, 다시 내리꽂았다가 또 퉁겨 오르고 해서 여간 멋들어진 게 아니다.

옷깃 근처 주름선도 붓을 거꾸로 찔러 넣어 끝을 뾰족하게 못대가리같이 마무리 지은 다음에 단번에 쪽 잡아 뺏다.

 

몸에 걸친 띠는 어떤가?

가볍게 떠서 하늘거리는 느낌이 든다.

여기저기 서로 다른 선들의 변화가 기막히지 않은가!

이렇게 변화무쌍한 선묘線描를 놓고, 지금은 돌아가신 이동주 박사 같은 분은 "야 참, 그 선 기막히다" 그러면서 "이건 화가의 팔뚝 밑에 세월이 한 20년은 족히 들었구나"하는 말을 남겼다.

율동감 넘치는 충동작을 묘사한 까닭에 필선까지 덩달아 펄펄 날고 있는 것이다.

 

이런 좋은 선들을 익히 눈여겨보면, 그저 형태만 베껴 그린, 고만고만한 그림은 저절로 눈에 차질 않게 된다.

저렇게 우물쭈물하는 선으로 모양만 대충 베껴 가지고서야 어떻게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 느낌이 자연스레 드는 그 순간 여러분들의 그림 보는 안목은 그만큼 높아져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정강이 아래쪽을 보면 발끝으로 몸무게 전체를 받치고 깡충 섰다.

이 부분은 특히 힘이 들어 있어야 하니까, 물기를 쏙 잡아 뺀 아주 탄력 넘치는 선으로 단번에 싹 잡이챘다.

이거 정말 기막힌 경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선, 현대 화가들은 절대 쓰질 못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붓만 휘두른 화가 중에서도, 타고난 천재가 아니면 구사할 수 없는 붓질이기 때문이다.

 

옷주름이 아무렇게나 꺾인 까닭.

 

그리고 소년에게만 색도 여러 가지를 썼는데, 이 아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연녹색 옷을 입히고 보색 대비가 되게 빨강을 깜찍하게 조금씩만 쓰고 거기에 부분부분 노랑이며, 옅은 파랑색 등 색깔을 썩 잘 어울리게 썼다.

 

아이 눈매가 아주 귀엽고 총명해 보인다.

긴 소매의 두 팔은 왼쪽으로 뿌렸는데 눈길은 반대인 오른쪽으로 떨어뜨리면서 온몸이 깡충 뛰었다.

이것은 우리 민속악에서 처음에는 느릿느릿 시작하다가 점점 흥이 달아오르면 한 배tempo가 빨라져서, 급기야 펄쩍펄쩍 뛰게 된 정황을 말해 주고 있다.

 

아이 얼굴의 저 환한 표정만 보더라도 연주한 지 30~40분은 족히 지났구나 하는 걸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전부터 이 소년의 쳐들은 왼팔에서, 꺾여 굵게 보이는 부분이 팔꿈치 자리로서는 너무 밭아 보인다는 의문을 가졌었다.

러다 하루는 전통 무용 공연을 직접 보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단번에 의문이 풀렸다.

우리 옷은 소매가 아주 넓어 옷 주름이 꼭 팔꿈치에서 꺾이는 게 아니라 제 편리한 곳에서 아무렇게나 꺾이는 것을 알아챘던 것이다.

 

 

'김홍도인金弘道印'이라는 왼쪽 아래 도장은 가짜 도장이다.

옛날 그림을 감정해 보면 때때로 작품은 진짜인데 도장이 가짜인 경우도 있다.

왜 그러냐 하면 여러 장으로 된 화첩인 경우 대개 그 마지막 폭에만 도장을 찍고 낙관을 하는데, 골동 상인들은 이런 그림을 통째로 파는 대신 낱개로 쪼개 팔면 돈이 더 많이 벌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경우 도장이 없는 면은 누구 작품이라는 증거가 안 보이니까, 가짜 도장을 만들어 각 폭마다 마구 찍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환등기로 보니까 잘 모르겠지만, 진짜 그림을 자세히 보면 종이가 약간 낡고 어두워지고 또 표면이 일어나서 꺼칠해진 위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니까 그린 당시에 화가가 찍은 게 아니라 나중에 누군가 장난친 거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보통은 가짜 그림에 진짜 도장을 찍어서 속이는 일히 흔한데, 이건 정반대의 경우다.

단원의 풍속화첩에는 처음부터 일체 글씨건 도장이건 낙관이 없었다.

이 또한 대량 생산한 상품이었다는 증거의 하나이다.

 

※이 글은 오주석 지음,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2017, 푸른역사)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2019. 5. 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