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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가 수요자에 따라 달리 그린 '타작' 비교 본문

글과 그림

단원 김홍도가 수요자에 따라 달리 그린 '타작' 비교

새샘 2019. 4. 1. 14:54

단원 김홍도의 대표 화집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에 실린 <무동><씨름>을 비롯한 25장의 그림은 양반이 아닌 일반 이 이해하기 쉽고 값싸게 구입하여 감상할 수 있도록 빠르게 척척 그려 낸 저가의 대량 생산 작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런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단원이 그린 <단원풍속도첩>에 있는 <타작>이란 그림과 <행려풍속도병行旅風俗圖屛>에 있는 <타작>이란 제목이 같은 두 개의 그림을 비교해 보자.

 

아래 그림은 단원풍속도첩 중 <타작>, 종이에 수묵담채, 27.0×22.7㎝,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527호.

 

아래 그림은 행려풍속도병 중 <타작>, 1778년, 비단에 수묵담채, 90.9×42.7㎝, 국립중앙박물관.

 

위 두 그림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림의 크기와 재질의 차이다. 즉 단원풍속도첩의 그림은 공책만한 크기로 작고(27.0×22.7㎝) 값싼 장지壯紙에 그린 반면, 행려풍속도병의 그림은 크기가 훨씬 큰 병풍(90.9×42.7㎝)이며 비단에 그렸다. 즉 크기와 재질로 보아 단원풍속도첩의 그림들이 훨씬 값이 싸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두 번째는 단원이 그림에 들인 세세함, 노력, 시간의 차이가 난다. 즉 아래 단원풍속도첩 <타작> 그림은 대부분 한두 번의 붓질로 개칠한 흔적 없이 단번에 참 빨리도 척척 그려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아래 행려풍속도병의 <타작> 그림은 필선 자체가 아주 고급스러울 뿐만 아니라 아주 세세한 붓질을 더한 것이 느껴진다. 즉 수요자가 평민이냐 양반이냐에 따라 표현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세 번째는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에서 큰 차이가 난다. 단원풍속도첩 그림 속 타작을 하고 있는 아랫사람인 일꾼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술 한 잔 걸친 마름은 벌써 옆에 놓인 술 한 잔을 걸쳤는지 자세며 얼굴 표정이 아주 망가져 품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약간 미소띤 표정으로 느긋하게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보이긴 한다. 단원풍속도첩의 <타작>은 전체적으로 밝고 환한 분위기의 서민 위주의 그림임을 알 수 있다.

 

반면 행려풍속도병 <타작>속 농사꾼들의 표정은 영 찌뿌둥하니 별로 흥이 없이 보이며,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이를 감독하는 마름의 모습은 근엄한 표정으로 정좌하고 있어 훨씬 권위적임을 알 수 있다. 즉 양반 사대부들을 위한 그림인 <타작>은 예술성과 함께 그들의 권위를 강조하는 다소 무겁고 어두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서민을 위한 그림에는 흥미를 느끼게끔 가끔 틀리게 그린 부분이 있는 반면 양반사대부를 위한 그림에는 틀린 부분이 전혀 없다.  즉 아래 <단원풍속도첩>의 <타작> 그림에는 한가운데 서서 타작하고 있는 일꾼의 오른손을 왼손처럼 틀리게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재미로 한번 틀린 그림을 찾아보라는..

 

이렇게 단원은 같은 그림이라 하더라도 그림을 사서 보는 수요자들이 서민이냐 양반사대부이냐에 따라서 수요자들이 흥미를 느끼게끔 다른 그림을 그려 주었던 것이다.

 

※이 글은 오주석 지음,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2017, 푸른역사)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2019. 4. 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