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오주석의 단원 김홍도 "씨름" 해설 본문

글과 그림

오주석의 단원 김홍도 "씨름" 해설

새샘 2019. 3. 15. 08:38

김홍도, 씨름, 종이에 수묵담채, 27.0x22.7cm, 보물 527호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위 그림은 단원 김홍도가 200여 년 전에 그린 그림이다. 

공책만한 작은 크기다.

우리 그림은 서양 그림과 달리 대개 세로가 길다.

그리고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그림을 보아야 한다.

 

 

씨름의 여백 구조

 

여백 역시 위 그림에 표시한 것처럼 그렇게 비스듬하게 생겼다.

 

 

씨름의 오른쪽 위 구경꾼

 

이 그림은 개칠한 흔적 없이 단번에 척척 그렸다.

등장하는 사람이 모두 스물 두 명인데, 우선 위 <오른쪽 위 구경꾼> 그림에 보이는 오른쪽 앞 중년 사나이를 보면 입을 헤 벌리고 재밌게 씨름 구경을 하고 있다.

재밌으니까 윗몸이 앞으로 쏠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두 손이 땅에 닿은 것이다.

그 옆에 있는 총각 아니 상투 튼 걸 보니 총각이 아니고 수염도 안 난 모양새를 보니 요즘 같으면 고등학교 1학년이나 2학년 밖에 안 되어 보이지만 장가를 들었다.

그런데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아니, 씨름판에 오자마자 팔베개를 하고 눕는 사람이 있나?

아, 이거 씨름판이 한창 진행돼서 이제 거의 막바지에 가까운가 보다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재미는 있지만 몸이 고단해 팔베개를 하고 누운 것이다. 바로 시간의 경과를 보여 준다.

그 앞에 놓여 있는 모자는 털벙거지로서 양반이 쓰는 갓이 아니다.

돼지털을 얽어 만든 모자인데 저걸 썼던 사람이라면 신분이 마부 정도 되겠군 하고 짐작이 간다.

 

그림의 맨 오른쪽 앞 사람인 중년 사내는 진하게 그리고, 그 옆 젊은이는 조금 흐리게 그렸는데, 서양식이라면 젊은이 옆의 맨 왼쪽 사람이 가장 흐려져야 한다.

그런데 이 사람 옷이 오히려 진해졌고 그 뒤쪽에 옹송그린 꼬맹이들이 제일 진하게 보인다.

그러니까 서양 사람들은 무조건 앞이 진하고 뒤가 흐리게 그리지만, 우리 옛 그림에서는 뒷사람이 너무 흐려서 잘 안 보이게 되면 안 좋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더 진하게 그렸다.

그렇게 그리니까 뒷사람까지 속속들이 잘 보일 뿐만 아니라, 이 작은 단위 화면에 통일감이 생기게 되었다.

 

특히 뒤쪽 작은 어린이들을 흐리게 그렸다면 그 귀여운 모습이 눈에 훤히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요즘 같으면 어린애들이 앞자리에서 왔다 갔다 하거나 어른들에게 야단이나 맞을 터인데, 옛적에는 꼬맹이들까지 어른 뒤에 얌전하게 자리한 것이, 참 예의범절이 반듯했구나 하는 그 시절 풍속까지 엿볼 수 있다.

 

 

씨름의 구심적 구조

 

다음으로 이 그림의 구도를 한번 보자.

구경꾼들이 모두 빙 둘러앉아 씨름하는 것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위에 표시한 것처럼 구심적인 원형 구도이다.

한눈에 보는 이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아주 쉬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씨름의 왼쪽 위 구경꾼

 

위 그림은 왼쪽 위 구경꾼을 확대한 것이다.

아주 가는 붓으로 그린 그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참 빨리도 척척 그려 냈다. 앞에서 뒤로 갈수록 농도를 흐리게 조정해 가면서 단번에 그렸다.

더 꼼꼼히 본다면 겹쳐진 갓을 먼저 그리고, 그 위쪽에 맞닿은 인물의 엉덩이를 나중에 두 번의 붓질로 그린 것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화가는 그림을 완전히 외우다시피 해서 아래에서 위로 익숙하게 그렸다.

구경꾼의 눈을 보자. 가는 붓을 가지고 그저 살짝 눌러 준 것뿐인데 사람들마다 눈의 표정이 서로 다르고 개성까지 엿보인다.

오른쪽 두 번째 맨상투잡이 인물의 눈은 콕 찔러 툭 쳐냈는데, 굉장히 재미있어하는 느낌이 든다.

그 왼쪽 옆 소년은 눈빛이 너무나 맑고 초롱초롱하다.

바로 옆 노인은 기운이 없는 듯한 눈빛에 인자한 느낌이 든다.

 

앞쪽의 갓쟁이는 좀 뚱뚱하게 생겼는데 눈빛이 좀 미욱스럽게 보인다.

그런데 슬그머니 다리를 내뻗고 있다. 다리가 저려서 펴고 있는 것이다.

역시 씨름판이 꽤 오래되었다는 시간을 알려 주는 요소이다.

본인이 애초부터 똑바로 앉았다면 저렇게 다리가 저려 슬그머니 내뻗을 일도 없을 것이다.

뒤쪽 노인을 비교해보면, 의관도 반듯하고 허리를 곧게 펴고 똑바로 앉은 것이 젊어서부터 자세가 단정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젊은 사람은 갓도 삐딱한 것이 평소 사람이 좀 시원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니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부채로 제 얼굴을 가리고 있는 품이 성격도 약간 소심한 듯하고, 아무래도 젊은이가 영 시원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그 왼쪽의 두 사람을 같이 보자,

서로 꼭 닮은 것이 어쩐지 쌍둥이 같이 보인다.

뭐가 어떻게 닮았나 꼼꼼히 살펴보니, 우선 턱이 아주 다부지게 생겼고 눈은 또 부리부리하고 두 사람 시선의 방향이 같은 것까지 분명하게 느껴진다.

두 사람 다 등줄기가 곧고 똑바른데 앞사람은 무릎을 세워 두 손을 깍지 낀 모습이 약간 긴장한 듯도 싶다.

이 두사람은 무얼 하는 사람일까? 바로 후보 선수들이다.

지금 화폭 한복판에서 씨름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씨름 경기는 유도처럼 한 판 이기면 진 사람은 떨려 나가고 이긴 사람이 그 다음 사람과 막 바로 붙게 된다.

그러니까 다음 판에 나갈 두 선수가 열심히 경기를 관찰하면서 다음 판에 이길 저 녀석을 어떻게 요리할까, 지금 이기고 있는 상대의 강점은 뭐고 또 약점은 뭐냐, 이렇게 판세를 예의 분석하고 있는 중이란 걸 알 수 있다.

그것을 확실히 알려 주는 것이 발 쪽의 신발 즉 발막신이라는 가죽 신발을 벗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발을 벗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갓도 함께 벗어서 나란히 포개 놓았다.

씨름판에 나갈 만반의 준비가 다 된 것이다.

 

 

씨름의 씨름꾼

 

자, 이제 씨름꾼들을 보자.

눈부터 바라보니 역시 당사자들의 눈이라 제일 골똘하고 심각해 보인다.

특히 왼편 사람은 눈이 아주 똥그래 가지고 양미간 사이에는 깊은 주름까지 잡혀 있는데, 그 쩔쩔매는 눈빛이 너무나 처절하지 않은가?

참 기가 막힌다! 이런 표현은 지금의 펜 같은 도구 가지고는 잘 되지가 않는다.

붓이라는 게 상당히 부드러운 도구지만 그 부드러움 덕에 오히려 표현력은 훨씬 더 커진다.

 

앞사람을 보자.

어금니는 앙 다물고 광대뼈는 툭 튀어나와 가지고 이번에는 반드시 넘겨 버리고 말겠다는 각오가 대단해 보인다.

뒷사람이 틀림없이 졌다.

지금 건 씨름 기술은 들배지기다.

들배지기라는 것은 기운 좋은 장사가 상대를 번쩍 들어가지고 그대로 냅다 메다꽂는 기술이다.

앞사람이 이긴 것이

두 발을 땅에 굳건하게 디디고 서서 상대를 들어 올리려고 용쓰는 양하며 한 일一 자로 꽉 다문 입술에서 젖 먹던 힘까지 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앞사람은 두 다리가 모두 굳건한데 비해 지는 쪽은 한 발이 들리고 다른 한쪽마저 들리려는 순간이다.

그 오른손이 바나나 같이 길게 그려졌다.

화가 실력이 부족해 그렇게 그렸을까?

아니다, 이 손마저 빠져나가고 있다는 정황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뒷 사람이 지긴 분명히 졌는데 왼쪽으로 자빠질까 아니면 오른쪽으로 자빠질까?

왼쪽 씨름꾼의 모습으로 보면 왼쪽으로 자빠질 것 같은데 실은 오른쪽으로 자빠질 것이다.

이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아래 <오른쪽 아래 구경꾼>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구경꾼들이 턱을 치켜들고 눈은 쭉 찍어진 채 입을 떡 벌리고, '어억' 하는 소리를 내면서 상체가 뒤로 물러나며 또 손으론 뒤 땅을 짚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림 바깥에 있고 이 사람들은 그림 속에서 직접 씨름을 구경하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구경꾼이 우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분명 오른쪽으로 자빠진다.

이건 유도나 씨름에서나 대개 상대가 왼쪽으로 자빠뜨리려고 하면 안 넘어가려고 안간힘을 젖 먹던 힘까지 쓰게 된다.

그 아슬아슬한 순간에 탁 하고 반대편으로 낚아채서 한 판 경기가 끝나게 된다.

화가는 바로 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서 이렇게 기막힌 그림을 그려 내었.

 

 

씨름의 오른쪽 아래 구경꾼

 

구경꾼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느껴진다.

한데 이 두경꾼이 위치한 곳은 화면에서는 구석진 자리다.

화가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구도를 잡았기 때문에 이 자리는 아주 외진 자리다.

그 구석에 있는 인물을 화가는 유난히 진하게 그려 놓고서 '이 사람을 잘 봐라, 여기 힌트가 있다'하고 승패의 실마리를 슬쩍 보여 준 것이다.

 

이들 위쪽에 짚신이 있고 또 가죽으로 만든 고급 신발인 발막신이 있다.

붓선을 처음에 콕 찍었다가 이렇게 쓰윽 빼내 가지고 선의 굵기 변화에 생동감을 주었다.

2센티미터도 안 되는 크기지만 신발 맵시가 잘 표현되었다.

위의 씨름꾼 사진을 보고 신발 주인을 한번 찾아보자.

어떻게 신발 주인을 찾을 수 있을까?

두 씨름꾼의 옷이 주름 잡힌 정도가 비슷한데, 앞사람은 막일하는 사람처럼 소매가 짧고 뒷사람은 손목까지 길게 내려온 모양새가 입성이 훨씬 좋다.

잘 보면 뒷사람은 종아리에 행전(바지 입을 때 정강이에 꿰어 무릎 아래에 매는 물건)까지 깔끔하게 친 품이 역시 차림새가 좀 낫다.

그러니 뒷사람이 아마 가죽신발 주인일 듯하다.

앞 사람은 짚신 주인이고...

그렇다면 아까 보았던 <오른쪽 위 구경꾼> 그림에서 입을 헤 벌리고 좋아했던 중년 사나이와 느긋하게 누워 미소 짓던 말구종 같았던 젊은이는 아마 승자 편이라서 좋아라 했던 것 같고, <왼쪽 위 구경꾼> 그림에서 갓을 벗어 놓은 두 선수가 모두 심각한 눈빛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마 패자 편이었기 때문에 그랬던가 하는 짐작을 해 볼 수 있다.

 

공책만한 작은 그림이지만 화폭 안에 줄거리가 분명한 어떤 드라마가 느껴진다.

좋은 작품에는 이렇게 많은 얘기들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은 요새 씨름과 비교하면 아주 색다른 면이 엿보인다.

요즘은 팬티만 입고 경기를 하는데 그림에서는 옷을 다 입고 버선까지 신은 채 경기를 하고 있다.

역시 동방예의지국답다.

또 다른 게 있다. 샅바가 다르다.

샅바는 허리에 둘러져서 허벅지로 이어져야 하는데 이 씨름꾼들에게는 허리에 두른 샅바가 없다

그림 속의 씨름은 '바씨름"라 부르고 요즘 샅바 두르고 하는 씨름은 '왼씨름' '오른씨름'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전승되고 있진 않지만 예전에는 한양, 그리고 경기도 일원에서만 하던 씨름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런 세부를 통해서 그림 속 씨름의 배경이 어느 지방이었는지도 알게 된다.

 

그럼 계절은 지금 어느 때일까?

사람들이 부채를 들고 나와 있는 모양을 보면 -옛날에는 아무 때나 씨름을 하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힘든 모내기를 끝낸 뒤인 단오절 무렵이 아닐까?

단오절이 되면 너도나도 부채를 들고 나온다.

우리 세시풍속에서 단오절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들에게 부채를 선물한다.

다가오는 더위를 식혀 가면서 맡은 일 열심히 해 달라는 의미로..

그리고 해가 바뀌는 동지에는 아랫사람들이 윗분들께 책력 즉 달력을 만들어 올린다.

내년에도 일정을 운영할 적에 아랫사람들 삶의 편의를 알뜰하게 배려해 달라는 뜻이다.

 

이 그림에 이상하게 틀린 곳이 한 군데 있다.

위 <오른쪽 아래 구경꾼> 그림에서 구경꾼의 왼팔에 오른손이 붙어 있는 것이다.

이거 참 흥미롭지 않은가!

화가 김홍도는 사람의 눈을 그릴 때 잔 붓으로 점으로 한번 콕 찍어 가지고 슬쩍 삐치는 것만으로도 인물의 나이며 성격, 그 인물이 처한 상황까지 속속들이 섬세하게 드러낼 수 있는 실력이 있었던 분이다.

그런 화가가 어떻게 이렇듯 엄청나게 멍청한 실수를 했을까 잘 믿어지지가 않는다.

 

김홍도의 <씨름> 그림은 자신의 최고의 걸작이 아니고, 아마도 당시 일반 서민들이 사서 보라고 손쉽게, 아주 빨리 그려낸 값싼 그림이라 생각된다.

우선 바탕 종이가 고급 화선지가 아닌 일반 장지이다.

그러나 표면에 붓질이 잘 나가라고 방망이로 다듬이질을 많이 해서 매끈하게 만들었다.

또 서민 대중이 보는 그림인 까닭에 화면에 어려운 글씨가 한 자도 없다.

그리고 물론 그림의 소재도 모두 일반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찾았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서민들 중심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를테면 옷차림이 허술한 사람 쪽이 이기는 모습을 그렸다.

 

 

씨름의 엿장수

 

위 그림에 사람 좋아 보이는 엿장수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골똘하게 씨름꾼만 쳐다보는데 -물론 엿판을 곁눈질하는 댕기머리 아이도 있기는 하지만- 엿장수는 뭐가 좋아서 이렇게 먼 산을 쳐다보며 싱글거리고 있는 걸까?

엿판 위의 엽전 세 닢이 뭐 그리 흐뭇할까?

이건 구도상 꼭 그렇게 그려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씨름>은 구경꾼들이 모두 이렇게 둥글게 둘러앉아 가운데를 쳐다보고 있으니까 통일감이 썩 좋은 작품이다. 단번에 그림에 집중이 된다.

그런데 통일감만 있고 변화가 없으면 좋은 그림이 아니다.

그러니까 오른편을 텅 틔워 놓고 거기에 발막신, 짚신 이렇게 서로 다른 신발을 모아 놓고 흩어 놓고 해서 변화를 주었다.

저 신발들을 잘 보면 자연스럽게 안쪽에 머리를 두지 않고 화면 바깥을 향하도록 놓았는데, 이것도 작지만 사실은 중요한 조형 장치로서 그림에 숨통을 트이게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엿장수도 먼 산 바라보고 있듯이 이렇게 시선을 바깥으로 향하게 한 것은 그림에 바람이 드나들도록 한 것이다. 

만약 여기 엿장수 대신에 심판이 있었다면 열심히 씨름꾼들을 바라보고 있었을 테고, 그렇게 되면 인물들이 모두 작품 중앙을 향하고 있어서 구도가 너무 구심적이고 답답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심판을 고의로 빼 버렸다고 생각된다.

 

 

씨름의 구조

 

위 그림에서 표시된 전체 구도를 한 번 더 보자.

만악 구경꾼이 아래쪽에 많고 위에 적었다면 그림이 재미있었을까?

씨름판의 열기가 잘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영 재미없어진다.

그래서 일부러 위가 무겁고 아래가 가볍게 보이도록 가분수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참 슬기로운 화가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렇듯 구경꾼들이 다 내려다보이게 그리려면 화가가 3층 정도의 아파트 높이에서 내려다봐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높은 데서 바라보았다면 이번엔 또 씨름꾼들이 좀 이상하게 그려졌다고 생각된다.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씨름꾼은 원래 난쟁이처럼 짜그라져 보여야 되는데 오히려 림 속 씨름꾼 두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몸집도 더 크게 그려졌을 뿐만 아니라 유난히 늘씬해 보인다.

이것이 무엇인가?

바로 그림 속 구경꾼들이 앉아서 치켜다본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즉 구경꾼의 시선을 그대로 빌려다가 화폭 한가운데다 박아 놓았다.

이게 바로 서양 사람들은 도저히 생각하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만의 기발한 재주인 것이다.

구경꾼의 시선을 이렇게 슬쩍 빌려옴으로써 우리는 직접 씨름 구경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고, 그림의 현장감도 매우 높아졌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꼭 있어야 할 뭔가가 없는데 무엇이 어떻게 빠져 있을까?

여기에 없는 것은 바로 이 상의 반을 차지하는 여자다.

여기에 처녀든 아줌마든 할머니고 간에 누군가 여성 한 분이라도 구경꾼 사이에 앉아 있다면, 그것은 이 작품이 옛날 그림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같은 단옷날 조선 여성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여인네끼리 모여 그네를 타거나 널뛰기를 했지, 여기 남정네들 틈에 껴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한 점의 그림을 통해서 우리는 그 시대의 풍속까지 소상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림에서 또 한 가지 의문은 씨름판에서 상민하고 양반이 함께 씨름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하는 점이다.

조선 정조 연간이 되면 일반 서민들 중에 경제적으로 큰 부를 축적하면서 사회적으로도 힘이 생겨서, 점차 법도에 어긋나는 양반 행색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졌다.

심지어 양반을 사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아무리 나라에서 금했어도 완전히 금지시킬 수 없었다고 하는 기록이 여럿 전하는 것을 보면, 그건 이런 신분 해체 현상이 일반화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거꾸로 이때는 주변머리 없는 양반은 거의 평민이나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씨름을 좋아하는 양반은 씨름판 평민 속에 끼어, 음악을 좋아하는 양반은 광대 패에 들어가 평민과 함께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은 오주석 지음,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2017, 푸른역사)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2019. 3. 1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