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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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오주석의 단원 김홍도 "황묘농접도" 해설

새샘 2019. 7. 12. 13:37

생신 맞으신 주인께서는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장수하시길....

김홍도,  황묘농접도 , 종이에 채색, 30.1×46.1㎝, 간송미술관

 

이것은 작은 화첩 가운데 한 폭으로, 가운데 접힌 흔적이 있는 있어 '화첩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생일 선물이다. 새끼고양이가 눈을 호박씨처럼 홉뜨고 제비나비를 치켜 보고 있다. 나비 가운데 부분이 조금 상하긴 했지만, 아무튼 짙은 검정빛으로 그린 나비가 이렇듯 폴짝 가볍게 공중에 떠 있게 그린 솜씨, 정말 기가 막힌다.

 

그림 감상, 하나도 어려울 게 없다. 나비는 가볍게 활짝 날게 그리고, 새는 포로롱하고 하고 날아갈 듯 그리면 바로 그게 좋은 그림인 것이다. 그런데 나비는 나비 접蝶 자가 80 노인耋 자하고 중국말로 '띠에'하는 발음이 같다. 그래서 80 노인이 된다. 그러니까 새끼고양이가 나비를 바라보는 것은 "70 노인이 80 노인 되도록...." 그런 뜻이다. 나비가 날아들고 있는 빨간 꽃은 패랭이꽃으로 카네이션의 우리 토종 꽃이다. 패랭이꽃은 홑꽃으로 시골에서 흔히 보는 것인데, 분가루를 뿌린 것처럼 고운 모양새가 꼭 시골 아가씨 같다고 해서 옛날부터 '청춘'이란 꽃말을 가졌다. 옆에 있는 돌멩이는 수십 만 년 된 것이리라. 당연히 장수, 오래 사는 것의 상징이기 때문에 이끼 낀 모습으로 그렸다. 맨 아래 있는 꽃은 제비꽃이다. 꽃대가 꼭 물음표(?)처럼 휘었다. 패랭이꽃은 초여름에 피고 제비꽃은 이른 봄에 핀다. 꽃피는 시기가 다른데 왜 같이 그렸을까? 꽃대가 이렇게 굽어서 이걸 옛 사람들이 여의초如意草라고 불렀다. 바로 여의주如意珠할 때의 여의如意와 같다. 등이 가려울 때 쓰는 효자손도 끝이 이렇게 굽었다. 그리고 가려운 데를 내 마음대로 긁을 수 있는 물건이니까 그 이름이 '여의'였다. 그러니까 제비꽃의 꽃말은 '뜻대로 된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그림을 읽어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된다. "이 그림을 받으시는, 오늘 생신을 맞으신 주인께서는 70 노인이 80 노인이 되시도록 오래오래 장수하시는데, 그것도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청춘인 양 곱게 늙으시기를, 그리고 그 밖에도 가사家事 내외 모든 일이 다 뜻대로 되시길 바랍니다." 휴, 읽기에도 숨이 차게 이렇게 수많은 뜻을 잔뜩 한 화폭에 담아서 그린 것이다. 그래서 이런 그림은 아주 곱게 색스럽게 그렸다. 조선 그림 치고는 유난스레 화사하게, 그리고 잡풀 하나하나까지 온갖 정성을 담아 그렸다.

 

원래 우리 생신 잔치에는 이런 그림이 필요했다. 손님이 화첩을 준비해서 앞쪽에 생신 선물로 이런 화사한 그림을 미리 주문해 그려 가지고 가면, 당일 잔치 자리에서는 김홍도의 <무동>에 나오는 삼현육각 풍유를 베풀어 음악을 즐기면서 술도 한잔씩 먹고, 따라서 흥이 나면 축시도 쓰고 또 멋들어진 산문도 쓰고 하면서 모두들 그 집주인 잘되라고 덕담을 한다. 주인어른은 장수를 하시고 자녀들도 모두 크게 되라고 멋들어진 행서도 쓰고, 기발한 초서도 쓰고,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생일 문였다. 그 결과로 화첩은 참석자들이 합작으로 만든 한 권의 기념 앨범이 되었다.

 

요새는 생일 케이크 하나 달랑 갖다 놓고 짧은 서양 노래 한 곡 부르고 나면 싱겁게 끝나게 되어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문화 현실이다. 1950년대만 해도 이렇게 만들어진 생신 화첩이 더러 있었다. 그러니까 1960년대로 넘어가면서 우리 전래의 생일 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은 오주석 지음,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2017, 푸른역사)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김홍도金弘道(1745~1806): 자는 사능士能, 호는 여러 개 있지만 단원檀園이 대표적인 호이다. 조선 영조와 정조 때의 도화서 화원 화가. 현동자 안견, 겸재 정선, 오원 장승업과 함께 조선의 4대 화가로 불린다. 스승 강세황의 추천으로 어려서부터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시, 글씨, 그림에다 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어 시서화악詩書畵樂절四絶로 불린다. 자신이 남긴 단원풍속화첩(보물 제527호) 때문에 우리들에겐 풍속화가 잘 알려져 있지만, 산수화, 도석인물화(신선도), 영모화(화조화, 동물화) 등 거의 모든 회화 영역에서 작품을 남겼다.

 

2019. 7. 12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