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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샘(淸泉)
우리 고대사 도표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본문
지금까지 우리가 배웠고 현재 국사 교과서에 실려 있는 위와 같은 종래의 통설에 따른 우리 고대사 도표를 그대로 따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첫째,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이 우리 역사의 주류가 되어우리 민족은 중국 제후국인 기자조선이 고조선을 멸한 서기전 1,100년 무렵부터 중국인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였고, 한사군이 설치된 서기전 108년부터는 중국 영토가 되었으며, 이후 고구려가 낙랑군을 축출한 서기 313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1,400년 동안이나 중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둘째, 중국 동북공정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만주에 있었던 숙신, 부여, 고구려, 읍루, 발해 등은 우리 역사에 들어올 수 없으며, 가야와 백제 역시 우리 역사의 주류가 아니다.
셋째, 우리 역사의 시작은 신라에서부터 시작하며, 그 체계는 신라→통일신라→고려→조선이 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통합하기 전까지 한반도의 주민들이 하나의 국가에 속한 적이 없었으며, 만주는 우리 역사 그 어느 때에도 한반도와 동일한 국가에 속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위의 종래 통설에 따른 우리 고대사 도표에서 앞서 말한 세 가지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일본과 우리 고대사 전공 역사학자들이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의 위치와 성격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다.
종래 통설에서는 기자조선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위만조선이 한반도 북부 대동강유역의 평양 지역에 도읍지를 가진 고조선을 멸망시켰으며, 그 후 서한의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명시키고 그 자리에 한사군을 설치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하지만 중국 고대사 전공의 윤내현 교수는 고조선 관련 중국과 국내 사서들을 연구한 끝에 이런 종래 통설이 역사적 사실事實 Fact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논문과 단행본을 통하여 샅샅이 밝혀 내었다.
윤 교수의 대표 논문에는 기자신고(1983),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1984), 고조선의 서변 경계고(1984), 위만조선의 재인식(1985) 등이 있고, 대표 단행본으로는 한국 고대사 신론(1986; 개정판 2017), 고조선 연구(1994, 개정판 2015), 한국 열국사 연구(1998; 개정판 2016), 사료로 보는 우리 고대사(2007; 개정판 2017), 고조선 우리 역사의 탄생(2016) 등이 있다.
윤 교수의 연구 결과 밝혀진 종래의 통설을 부정하는 고조선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다음 사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새샘 블로그의 2017. 02. 01 글 '기자조선의 고조선의거수국이었다!!'와 2018. 11. 15 글 '한사군의 낙랑군은 한반도 평양이 아닌 중국 요하 서쪽의 난하 동부 연안에 있었다'에 실려 있다.)
첫째,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은 서로 계승관계로서 모두 같은 곳에 위치하였다. 기자조선은 중국 상나라 왕실의 후예인 기자가 자신의 상나라가 주나라에게 멸망 후 서기전 1,100년 무렵 조선으로 망명하자 고조선이 받아들여 고조선 영토내 서쪽 변경에 살게 해 주었고, 이를 주의 무왕이 기자를 조선후(고조선의 제후)에 봉하면서 생긴 고조선의 거수국이었다.
둘째, 기자조선이 있었던 고조선 서쪽 변경, 기자조선을 멸망시킨 위만조선, 그리고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만든 서한의 한사군 지역은 모두 당시 고조선과 서한의 서쪽 경계였던 오늘날 난하(당시의 요하) 동부 유역이었다.
셋째, 서기전 195년 위만이 위만조선을 건국하면서 정권을 빼앗았던 조선의 준왕은 고조선의 왕이 아닌 기자의 40여 대 후손으로 기자조선의 왕이었기 때문에 위만조선의 영역은 기자조선의 영역을 그대로 계승하였고,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워진 서한의 한사군 역시 어느 정도의 영토 변화가 있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고조선의 서쪽 변경이었다.
위 세 가지 역사적 사실 중 특히 세 번째인 기자의 후손인 준왕이 고조선 단군왕검 후손으로 둔갑하여 우리 역사에 등장함으로써 우리 역사 체계에는 커다란 잘못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반도와 만주의 토착 세력이 건국한 고조선이 어느 사이의 중국 망명객들의 정권으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고조선은 서한의 영토에 편입되어 그 행정구역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서술되는 잘못된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렇다면 위의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우리 고대사 도표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까?
첫째,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은 모두 고조선 변방의 오늘날 요서 지역에 위치했으므로, 이들이 우리 역사의 주류일 수 없으며 변방의 사건으로 취급해야 한다.
둘째, 고조선에서 시작하여 부여·고구려·동옥저·읍루·동예·최씨낙랑국·한(삼한) 등의 열국列國시대로 이어지는 것으로 체계화되어야 한다.
셋째, 이들 열국은 원래 고조선의 거수국이었다가 서기전 1세기 무렵 고조선 붕괴로 독립국이 되었으며, 고구려가 고조선 북방 지역을 통합하였고 고조선 남방 지역의 한은 백제, 신라, 가야로 분열됨으로써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가 아닌 고구려·백제·신라·가야의 사국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체계화되어야 한다.
위 세 가지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고조선부터 열국(여러나라)까지 작성한 본 우리 고대사 도표가 바로 위 도표이다.
이렇게 체계화된 우리 고대사 도표를 서기전 8,000년 이전의 무리사회에서부터 7세기까지의 사국시대까지의 사회 형태 및 국가 발전단계를 연도별로 나타낸 우리 고대사 도표는 위와 같다.
※이 글은 윤내현 지음, '고조선, 우리 역사의 탄생(만권당, 2016)'과 '한국 고대사 신론(만권당, 2017)'에 실린 글을 발췌한 것이다.
2019. 7. 21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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