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철인哲人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본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 로마 카피톨리니 Capitoline 박물관, 기독교도들은 우상 숭배라는 이유로
대부분의 로마 기마상을 파괴했다. 하지만 이 기마상은 최초의 기독교도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의 조각상으로
오인하고 내버려두었다. 덕분에 이 기마상은 고대 세계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조각 작품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이 조각상은 2세기부터 로마 시내에 세워져 있었으나 1980년 공해를 피해 실내로 옮겨졌다.
출처―https://en.wikipedia.org/wiki/Equestrian_Statue_of_Marcus_Aurelius>
2001년 아카데미 5개 부문 수장작인 영화 <글래디에이터 Gladiator> 마지막 부분에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lerius(121~180)의 망나니 아들 코모두스 Commodus와
반란에 실패한 막시무스 Maximus(러셀 크로 Russel Crowe 분)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반란에 실패한 막시무스가 황제 코모두스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
대화 직후 두 사람은 로마 군중 앞에서 검투경기를 벌인다.
출처―https://www.her.ie/entertainment/her-classic-movie-of-the-week-gladiator-139582>
쇠사슬에 묶인 막시무스는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코모두스에게 말한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죽음이 우리에게 미소 짓고 다가오면 미소로 답하라'고 말했지."
그러자 코모두스는 "그 친구도 죽을 때 웃었는지 궁금하군"이라며 '그 친구'와 막시무스를 비웃는다.
그러자 막시무스는 '그 친구'가 바로 코모두스의 아버지라고 알려준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막시무스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죽음을 맞는다.
막시무스야말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을 온몸으로 실천한 '진정한 아들'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물론 영화 속 막시무스는 가공의 인물이고 그와 코모두스가 나눈 대화도 지어낸 이야기다.
하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음이 우리에게 미소 짓고 다가오면 미소로 답하라'는
취지의 말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180년 3월 17일 사망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자 Stoics였다.
그는 죽음을 기뻐하라고 말한다.
죽음을 자연의 한 과정으로 기다리는 것이 이성을 가진 인간에게 맞는 태도라는 것이다.
"지나온 날을 헤아리지 말며, 그 짧음을 한탄하지 말라.
너를 여기 데려온 것은 자연이다.
그러니 가라. 배우가 연출가의 명에 따라 무대를 떠나듯이.
아직 연극의 5막을 다 끝내지 못했다고 말하는가?
그러나 인생에서는 3막으로 끝이 날 수가 있다.
그것은 작가의 소관이지 네가 관여할 일은 아니다."
인생의 종말이 언제 오건 평정을 잃지 말고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하라는 당부다.
스토아 철학 Stoicism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Alexander the Great이 거대 제국을 건설하면서
도시국가(폴리스 polis)라는 자족적 활동공간을 빼앗기게 된 개인들이
새로운 사회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에서 발전시킨 여러 대응 방안 가운데 하나였다.
거대 제국과 상대적으로 왜소해진 개인의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더 중요시하거나 세계를 덜 중요시하는 방법이 있었다.
첫 번째 방법을 택한 것이 스토아학파 Stoicism이고,
두 번째 방법을 택한 것이 에피쿠로스학파 Epicureanism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철저한 유물론 신봉자들로,
세계는 원자들의 우연한 결합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었다.
거기에는 계획도 섭리도 없다.
신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들 역시 원자들의 우연한 결합으로 인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따라서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력으로 행복, 즉 쾌락을 추구해야 하지만,
자신의 부동심不動心 ataraxia을 훼손할 정도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
에피쿠로스학파는 개인의 자유를 철저히 주장한 까닭에,
사회 지배계층 및 다른 학파―이를테면 스토아학파―에 의해 매도당하기도 했다.
후세 사람들이 에피쿠로스학파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갖게 된 것은 이들 탓이 크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우주가 무정부적이라면 스토아학파의 우주는 질서정연하다.
스토아학파에게 우주 또는 자연은 이성에 의해 지배되며,
이성은 신이나 운명 또는 섭리와 같은 것이다.
이떤 일이건 그것은 신적인 이성, 사물의 본성에 맞게 일어난다.
이런 진리를 알고 있는 현인賢人이 추구해야 할 일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기꺼이 받아들이고 꿋꿋하게 참고 견디는 것이다.
'자연에 맞게' 오늘의 현실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그 밖의 외적인 가치들은 중요하지 않다.
현인은 그것들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아도 행복한 반면,
왕은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현인이 아닌 한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은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사회 개혁이 아닌 개인의 자아 완성으로,
또 개인의 자아 완성은 도덕적 수양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현실 그 자체보다는 현실에 대한 의견이 결정하는 것으로 본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는 다 같이 행복을 추구한다.
하지만 에피쿠로스학파가 '쾌락'에서 행복을 기대한 것과 달리
스토아학파는 '지혜'를 통해 행복을 추구한다.
그들은 모두 감정을 억제하고 용기 있게 죽음을 맞이한 소크라테스의 지혜를 귀감으로 삼는다.
에피쿠로스가 개인의 철저한 자유를 주장한 것과 달리,
스토아 철학은 개인주의적 성향을 띠면서도 공동체에 의한 봉사와 의무를 권장한다.
이런 경향 때문에 로마인들은 스토아 철학에 공감하게 되었다.
서기전 300년에서 서기 200년까지 500년가량 서양 철학사에서 큰 영향을 끼친 스토아 철학은,
소크라테스가 몸소 실천한 철인哲人의 삶에 크게 감동한
키프로스 섬 출신 제논 Zenon(Zeno of Citium)(서기전 334?~서기전 262?)에 의해 창시되었다.
그는 서기전 311년경 아테네로 건너가 자신의 철학을 강의했다.
그러나 학교 부지를 구입할 재원이 없어 '아고라 agora'라고 부르는
중앙 광장에 있는 '채색 주랑 Stoa Poikile'에서 강의를 했고,
이 때문에 그의 제자 집단은 스토아학파로 불렸다.
스토아학파의 목표는 '자연과 일치된 삶'으로,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어떤 일에도 빼앗기지 않는 행복을 얻는 힘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이 사상은 죽음을 태어남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죽음을 두렵게 생각하는 그 생각 때문에 죽음이 두려운 것이지,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스토아 철학은 제논과 클레안테스 Kleanthes에 이어
이론적 토대를 완성한 크리시포스 Chrysippos가 주도한 전기 스토아 철학,
로마의 지식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스토아 철학의 완벽주의적 요구를 완화한
파나이티오스 Panaitios·포세이도니오스 Poseidonios·헤카톤 Hekaton이 이끌던 중기 스토아 철학,
그리고 로마적 절충주의를 표방한 세네카 Seneca·에픽테토스 Epiktetos·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주도한 후기 수토아 철학으로 나뉜다.
노예를 '살아 있는 도구'로 간주하던 고대 세계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노예 출신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55?~135)를 평생토록 스승으로 흠모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에픽테토스에게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형제라는 만민평등사상을 배웠다.
스토아 철학이 로마법, 특히 만민법의 기초가 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로마법은 그 후 유럽 각국에 영향을 미쳤고,
20세기에 들어 우리 법체계에도 그 영향이 지속되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지혜'와 '만민평등의 휴머니즘'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있다.
※이 글은 박상익 지음, <나의 서양사 편력 1>(푸른역사, 2014)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19. 10. 18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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