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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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숨기고 정직한 표정을 지으면

새샘 2019. 11. 11. 15:48

<20대 초반의 밀턴>

(출처―https://dwellingintheword.wordpress.com/2010/11/18/404-1-john-4/)



근대 초기 유럽 사회에서 해외여행은 매우 위험했다.

마르틴 루터에 의한 16세기 초의 종교개혁 이후 17세기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진영과 프로테스탄트 진영 사이에는 극렬한 종교적 대립이 있었다.


20세기 후반 냉전 시대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방불케 하는 대립과 긴장이었다.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은 국내 지방도시 여행을 제외하면 장거리 여행이란 불가능했고,

대개가 자기가 태어난 고장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영어권 최고의 시인이자 청교도 신앙인이었던 영국의 존 밀턴 John Milton(1608~1674)은

30세가 되던 1638년 5월부터 1년 3개월 동안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12살 이후로 자정이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든 적이 없었을 정도로 학업에 정진했던 밀턴은

학문의 완성을 위해 유럽 문명의 중심지를 돌아보는 기를 얻었다.


영국은 당시만 해도 유럽의 변두리 국가에 불과했다.

밀턴이 유럽 여행에서 가장 가보고 싶어 했던 곳프랑스와 이탈리였는데, 특히 이탈리아 여행을 가장 바랐다.

고대 로마 문명의 핵심부였고 14세기 이후 르네상스 문화의 발상지이기도 했던 이탈리아

밀턴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중세 최고의 시인 단테, 최초의 휴머니스트 페트라르카를 배출한 위대한 문화 국가였고,

천문학자 갈릴레이로 상징되는 선진 과학의 나라였다.


그러나 밀턴이 여행에 나설 무렵 유럽은 정정政情은 심히 불안했다.

독일에서는 가톨릭 국가들과 프로테스탄트 국가들 사이에 30년전쟁(1618~1648)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20세기 중반 분단된 한반도에서 공산 진영과 서방 진영 사이의 이데올로기 갈등이 한국전쟁으로 폭발했듯이,

분열된 독일 땅에서 유럽의 가톨릭 진영과 프로테스탄트 진영이 30년 동안이나 전쟁을 벌였다.


유럽의 종교 대립은 19세기까지 심각한 수준이었다.

가톨릭 집안과 프로테스탄트 집안 사이에 혼인마저도 금할 정도였다.


청교도이자 프로테스탄트 중의 프로테스탄트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반가톨릭적 성향을 지니고 있던 밀턴에게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이를테면 '적성국가'였다.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던 밀턴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베네치아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헨리 워튼을 방문해 자문을 구했다.

밀턴이 조언을 구하자 그는 이렇게 당부했다.


"생각을 숨기고 정직한 표정을 지으면 전 세계 어디라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네."


밀턴은 가톨릭 국가를 여행하면서 자신만의 원칙을 세웠다.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경우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자신이 먼저 시작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자신의 종교에 대해 상대방이 질문을 해올 경우에는 결과가 어떻든 당당하게 자기 입장을 밝히겠다.

이것이 그의 확고한 방침이었다.


그는 여행 기간 내내 자신의 원칙을 지켰다.

생각을 숨기라는 헨리 워튼의 조언을 충실히 따르되,

상대방이 먼저 질문을 해올 경우 떳떳하게 자기 신앙을 드러내겠다는 태도다.


종교적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만났을 때 민감한 문제로 상대를 먼저 자극하지 않으려는 '배려',

그럼에도 자신의 종교적 입장에 대해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겠다는 다부진 '결의'를 읽을 수 있다.


2009년 3월 4일, 예멘에서 한국인 관광객 4명이 자살폭탄 테러에 희생되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어 18일에는 현지를 방문한 정부 대응팀과 유가족을 겨냥한 2차 테러까지 발생했다.

한국인이 언제든 국제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한국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공격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발표했다.


중동 전문가들은 이슬람 지역을 방문한 일부 한국인 개신교도들이 현지인들과 대화할 때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에 대해 아는 바를 얘기하곤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잘못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이슬람권에서는 신분이나 종교를 드러내놓고 과시하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일부 개신교도들의 배려 없는 태도가 자칫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러 해 대학생들과 함께 일본 답사 여행을 갔다가 오사카 성을 들른 적이 있었다.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데 10여 명의 한국인 남녀가 옆으로 길게 늘어서서

성 밖에서 입구 쪽을 바라보며큰 소리로 찬송가를 합창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힐끗거렸다.

합창이 끝난 뒤 그들 중 하나는 자랑스럽다는 듯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개종시켰다"고 외치기까지 했다.

교회 아닌 공공장소에서 소리 내어 합창하는 그들의 독선에서 이웃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관광지에서의 예절도 상식도 찾을 수 없었다.


믿음을 배타적 광신과 동일시하고, 이웃에 대한 배려를 하찮게 여기는

'무개념 개신교'로는 세계 어디를 가도 환영받기 힘들다.


개신교인들이 프로테스탄트 중의 프로테스탄트이자 위대한 청교도 시인이었던

밀턴의 '절제와 품격'을 본 받을 수는 없는 걸까?


※이 글은 박상익 지음, <나의 서양사 편력 1>(푸른역사, 2014)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19. 11. 1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