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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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오주석의 단원 김홍도 "포의풍류도" 해설

새샘 2020. 2. 15. 16:48

따스했던 인간성

<김홍도, 포의풍류도, 종이에 수묵담채, 27.9×37㎝, 개인>


"섣달 눈이 처음 내리니 사랑스러워 손에 쥐고 싶습니다.

밝은 창가 고요한 책상에 앉아 향을 피우고 책을 보십니까?

딸아이 노는 양을 보십니까?

창가의 소나무에 채 녹지 않은 눈이 가지에 쌓였는데 그대를 생각하다가 그저 좋아서 웃습니다."

단원이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김홍도는 사람 자체가 따뜻한 품성의 소유자였다.

그의 그림에 특히 넉넉한 여백이 많이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심심해 적어 둔 글귀를 보자.


"옛 먹을 가볍게 가니 책상 가득 향내 나고

벼루 골에 물 부으니 얼굴이 비치도다."


"산새가 날마다 오나 기약 있어서가 아니오

들꽃은 심지 않았어도 절로 향을 내도다."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에 적힌 적힌 화제畵題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지창토벽 紙窓土璧      종이창에 흙벽 바르고 

                                                종신포의終身布衣       이 몸 다할 때까지 벼슬없이

                                                소영기중嘯其中       시가나 읊조리련다'


내용이 자전적이어서, 정조대왕의 사후 단원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고 생각되는 작품이다.

반듯한 얼굴, 총명한 눈빛, 당비파를 연주하는 앞자리에 생황이 놓여 있어 

음악을 극히 애호했다던 일상이 엿보인다.


서책과 두루마리, 완상용 자기와 청동기, 술 든 호리병과 시詩 쓸 파초잎 등이

화가의 인물 됨됨이를 말해준다.

구석의 칼은 선비의 정기正氣를 상징하는 것이다.


사방관을 썼으나 드러난 맨발이 초탈한 심사를 엿보게 하니,

단번에 쓱쓱 그어 댄 소탈한 필선과 꼭 닮았다.

하지만 이 모든 선들은 고도로 훈련된 서예적인 필선이다!


현대 화가들이 넘보지 못하는 단원 예술의 극한이 여기에 있다.

그림은 인격의 표출이다.


※이 글은 오주석 지음,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2017, 푸른역사)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20. 2. 1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