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 퇴출, 나치의 독일 장악 신호탄 본문
1930년 12월 5일 금요일 오후 7시 5분, 베를린 중심가 한 영화관에서 레마크르 Erich Maria Remarque(1898~1970)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서부전선 이상없다>가 개봉되었다.
영화가 상영되던 중, 2층 발코니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신호를 보냈다.
이와 동시에 150명가량의 갈색 셔츠 젊은이들이 영화관 곳곳에서 몸을 일으켰다.
"유대인 꺼져라!"라는 고함과 휘파람 소리가 난무했다.
매캐한 연막탄 연기가 가득했다.
1층 좌석 아래로는 그들이 풀어놓은 생쥐들이 기어다녔다.
영사기가 멈췄다.
신호를 보낸 남자는 나치의 선전 책임자 요제프 괴벨스 Paul Joseph Goebbels(1897~1945) 였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교사의 애국적 선동으로 자원입대한 10대 소년의 눈으로 1차 세계대전(1914~1918)의 실상을 고발한 소설이다.
1929년 1월 29일 발간된 후 5개월 만에 판매 부수가 100만 권을 돌파했고 한 해 총 150만 부가 팔렸다.
독일 문학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국외에서도 인기가 높아 26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1930년에는 식민지 조선에서도 한글로 번역·소개되었다.
이 소설은 통렬한 반전 메시지 덕분에 작가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김나지움(독일의 인문계 중고등학교) 교사의 애국적 선동에 떼밀려 자원입대한 10대 소년의 눈을 통해 1차 세계대전의 실상을 고발한 이 소설은 독일인들에게는 낯설고도 불쾌한 것이었다.
전후의 혼란과 경제 불황 속에 신음하던 독일인 사이에는 하나의 '전설'이 퍼져 있었다.
1918년의 독일은 외국 군대에 의해 패배를 당한 것이 아니라, 독일 내부의 배신자인 평화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무너졌다는 것이다.
1918년 11월 11일, 1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패배로 끝났다.
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조국의 갑작스러운 패배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독일 땅이 연합군에게 점령당한 것도 아니었다.
보수 신문들은 날마다 독일군의 승리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전쟁 패배와 황제 폐위를 독일 국민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전쟁의 현실은 언론 보도와 매우 달랐다.
속전속결로 끝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전쟁이 예상과 달리 참호전의 양상을 띠면서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상상하지 못했던 규모의 희생자가 속출하면서 일부 독일 국민 사이에 전쟁에 대한 회의가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전국 단위의 반전 평화 시위가 조직화할 움직임도 보였다.
더 큰 문제는 후방이 아니라 전방에 있었다.
단기 군사교육을 받고 실전에 배치된 독일 병사들이 무더기 전사하면서 전투의욕과 사기가 크게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군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1914년 11월 벨기에 이프로 강 북쪽 랑에마르크에 배치된 독일군 제4연대 보충부대는 대부분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고등학생과 대학생 지원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기도 충분치 않았다.
독일의 학도지원병들은 열정적으로 전투에 임했지만 부족한 훈련으로 인한 전투 능력 부족을 애국심만으로는 상쇄할 수 없었고, 밀집 대형으로 돌격할 때마다 연합군의 기관총과 대포 앞에 도살에 가까운 학살을 당하고 말았다.
랑에마르크 전투에서 약 2천여 명의 독일군 병사들이 전사했다.
무모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독일 최고사령부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선전 술책을 강구했다.
학도지원병의 죽음을 승전 소식으로 조작해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한 것이다.
그러자 독일의 보수 언론들은 이 보고서의 진위를 확인해보지도 않고 일제히 1면 톱기사로 다루었다.
랑에마르크의 병사들은 순식간에 전쟁 영웅으로 탈바꿈했고, 조국을 위한 그들의 숭고한 희생은 전쟁 신화 조작의 주된 제재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랑에마르크 신화 Langemarck-Mythos'다.
역사를 신화로 바꿔치기해서라도 독일군의 승리를 확보하려 한 독일 군부와 보수 언론의 불온한 합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이렇듯 조작된 언론 보도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독일의 승리를 자신하던 독일 국민들에게 패전 소식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독일에 강요된 베스사유조약은 엄청난 전쟁배상금과 대폭적인 군비 축소를 의무화했다.
이 조약에 따라 독일은 1차 세계대전 발발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썼다.
전쟁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세르비아 양측의 정면 대결에 의해 발발한 것임에도 그 모든 책임을 독일이 져야 한다는 연합국의 일방적인 결정을 독일 국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성립된 공화국(바이마르 공화국) 정부가 굴욕적인 평화 조약을 받아들이자 국민들 사이에는 민족주의와 반공화국 감정이 봇물 터지듯 솟구쳤다.
전쟁 패배의 책임을 공화국 혁명정부에 떠넘기려 기회를 엿보던 독일 군부와 우익세력은 이러한 긴박한 상황을 절묘하게 이용했다.
독일 패전이 독일 후방의 반전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도모한 반독일적 음모 때문이라는 또 하나의 '정치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전쟁 영웅인 독일군 총사령관 힌덴부르크 Hindenburg(1847~1934)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행한 연설에서, 독일 군부가 전쟁 발발에 책임이 없으며 독일 군대는 등 뒤에서 단도에 찔렸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했다.
이른바 '단도 전설'이다.
서양문학사를 새로 쓰게 만든 레마르크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의 관심이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29년 7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제작사 유니버설 인터내셔널 픽쳐스 UIP가 소설 <서부전선 이상없다>의 영화화 판권을 구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독일 군부는 이 소설이 독일군의 위상을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영화화를 극력 반대했다.
공교롭게도 유니버설 영화사 사장 카를 래믈레 Carl Laemmle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반유대주의 선전의 호재가 되었다.
영악한 괴벨스는 레마르크가 1차 세계대전엥 참전한 적도 없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이 영화를 조국을 배신하려는 유대인의 거대한 음모로 매도하려는 나치의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
영화관 사건이 있은 다음날 대부분의 언론이 나치를 비난했지만 괴벨스는 철저히 무시했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유대인의 거짓말'이자 '독일 군대를 비방하는 끔찍한 영화'로 규정되었다.
결국 12월 11일 베를린 고등영화 검열국은 '독일의 대외 위신을 해친다'는 이유로 영화의 상영 허가를 취소했다.
이 날은 독일 민주주의의 붕괴가 시작된 날이었다.
나치의 정권 장악으로 향하는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되는 이 사건은, 당시 정치세력들이 영화가 갖는 선전매체로서의 잠재력을 얼마나 잘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오늘날은 선전의 시대, 광고의 시대다.
온갖 종류의 상업적 프로파간다들이 파상적으로 밀려온다.
그것이 노리는 목적은 같다.
그들이 떠벌리는 말을 사람들이 믿어주기를, 나부껴주기를 하나같이 노리고 있다.
그들이 겨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시민을 소아화小兒化하는 데 있다.
2012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특정 후보 지지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가 정치공작에 가담하기도 했다.
정파적 이익에 눈 먼 권력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광분한다.
조작된 이미지와 선전이 넘쳐나는 오늘, 시민 개개인의 이성과 분별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국민이 권력의 오만을 낳기 때문이다.
※이 글은 박상익 지음, <나의 서양사 편력 2>(푸른역사, 2014)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20. 7. 26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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