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20. 4/19 목포 정광정혜원, 목원동 벽화마을, 노적봉, 유달산 공원, 목포역 본문
목포 여행로: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목원동 노적봉길 벽화마을-노적봉-유달산공원-광양숯불갈비-목포역
흑산도와 홍도 여행을 마치고 오전 11시 10분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 내렸다.
서울가는 기차 시각이 오후라서 가까이에 있는 유달산공원에 올랐다 공원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산타와 계획을 세웠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을 나와 정면(북쪽)을 바라보니 유달산 노적봉이 보인다.
택시를 타고 목원동 노적봉길에 있는 광양숯불갈비 입구에서 내렸다.
아직 점심 전이라 손님이 뜸할 것 같아 음식점에 짐을 맡겨놓고 바로 위에 있는 노적봉과 유달산공원을 구경하고 내려올려고 한다.
음식점 앞 노적봉길 건너편에 정광정혜원淨光定慧院이란 도심속의 절이 있다.
이 사찰은 1917년 일본인 도현화상道現和尙이 흥선사란 이름으로 창건하였고, 광복 후 지금 이름인 정광정혜원으로 바꾸면서 대한불교 조계종 사찰이 되었다.
전반적으로 건립 당시의 일본식 목조 사찰을 대부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2017년 '목포 정광정혜원'이란 이름으로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696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일주문 뒤에 금당金堂인 정혜선원이 있고, 왼쪽엔 부속 현대식 건물이 있다.
정광정혜원 일주문과 문 왼쪽의 법정스님 상
정광정혜원 일주문
'법정과 정광정혜원의 인연'이란 제목의 조각상.
조각상에 붙어 있는 설명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소유無所有'로 유명한 법정法頂스님(1932~2010, 본명 박재철)은 해남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성장하여 목포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 상대 전신인 목포초급상과대학에 진학하였다.
이곳 정광정혜원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일본 사찰이지만 광복 후 한국불교 정화운동의 거점이 되었던 곳이며, 법정이 청년시절 자신의 삶에 대해 고뇌하고, 불교에 귀의하는 계기가 되었던 장소이다.
법정은 1956년 통영 미래사에 출가한 후 2010년 입적할 때까지 무소유의 삶은 실천하였고, 종교인이자 수필가로서 명성이 높았다.
왼쪽 상이 청년 법정의 모습이며, 오른쪽 상은 무소유의 삶을 사는 법정의 모습이다.
정광정혜원의 금당인 정혜선원定慧禪院
정광정혜원 부속건물
정광정혜원을 지나면 노적봉길은 길 양쪽 벽에 멋진 컬러 벽화로 가득 채워진 벽화거리 아닌 벽화마을로 변신한다.
이 거리가 바로 목원동 벽화마을.
이 구간의 벽화는 '세계의 예술가'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얼굴 옆에는 이름, 출생년, 사망년이 표시되어 있다.
물론 우리나라 예술가도 있다.
노적봉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 노적봉이, 오른쪽에 유달산공원이 있다.
노적봉 입구와 노적봉 관광안내소
유달산공원 입구의 안내판들
노적봉露積峰은 해발 60m의 바위 봉우리로서, 1597~1598년 임진왜란 때 목포에 머물렀던 이순신 장군이 적은 군세로 많은 왜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이 봉우리를 짚마름으로 덮어 군량미를 쌓아 놓은 노적봉처럼 꾸며 마치 우리의 군사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속임으로써 왜군이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한다. 그때부터 이 봉우리가 노적봉이 불렸다고 한다.
새샘의 노적봉 인증샷
계단을 따라 유달산 공원을 오른다.
유달산儒達山은 목포시 유달동, 목원동, 죽교동에 걸쳐 있는 해발 228m 산으로서, 그리 높지는 않지만 노령산맥의 맨 끝 봉우리이자 다도해로 이어지는 서남단 땅 끝 산이다.
유달산은 서남해안의 지역의 군사 요충지로서 해남 화원의 일성산 봉수, 무안 왕산의 군산 봉수를 연결하는 천혜의 요새로서 일찍이 영산강의 목을 지키는 역할을 해 왔다.
목포 8경 중 목포1경 '유산기암儒山奇岩(유달산의 기묘한 바위)'에 오를 정도로 목포의 자랑이자 상징이며, 목포의 영산으로 원래 영혼이 거쳐 가는 산이란 의미의 '영달산靈達山'이라 불렸다.
그러다가 해가 떠오를 때 햇살을 받은 봉우리가 유기鍮器[놋그릇] 색으로 변한다 하여 유鍮달산이 되었다.
그런데 조선말 한 친일파 관리가 유달산에서 시회를 열자 이에 자극 받은 지방 선비유학자들이 유달정儒達亭 건립을 논의하면서 지금의 유儒달산이 되었다고 한다.
계단 중간 왼쪽에 '유달산儒達山'이라 새겨진 대형 화강암 표지석이 서 있고, 계단 위 오른쪽에는 큰 바위덩어리가, 그리고 계단 위 꼭대기에 하늘 아래로 유선각 정자가 보인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계단을 다 오르면 오른쪽에 '유달산정기儒達山精氣'라 새겨진 큰 화강암 표지석이 누워 있다.
2번째 계단 앞에서 올려다 보면 첫번 째 계단에서 보았던 바위덩어리와 함께 그 뒤로 꼭대기에 있던 유선각 정자 아래쪽 계단 가까이에 있는 정자가 하나 더 보인다.
2번째 계단을 올라 함께 바로 앞에서 본 바위덩어리는 그 이름이 복바위(쥐바위, 탕건바위)다.
이런 이름은 각각 바위가 복을 비는 사람(쥐, 탕건宕巾[갓 아래 받쳐 쓰던 주변보다 가운데가 불룩한 모자])처럼 보이기 때문.
복바위 오른쪽 공간에는 이순신 장군상이 있다.
이순신 장군상 앞에 조성된 영산홍 화단의 동백나무는 빠알간 동백꽃을 피웠다.
다음 계단을 오르는 도중 왼쪽에 서 있는 큰 자연석에는 '모충慕忠'이란 글자가 새겨져있는데, 이순신 장군상과 함께 나라에 충성하는 장군의 마음을 기리자는 뜻일게다.
계단 옆에도 동백나무 군락이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빨간 동백꽃 외에도 귀하다는 분홍 동백꽃도 많이 피었다.
계단 옆 바위 위에 서 있는 정자 대학루待鶴樓는 학을 기다리는 누각이란 뜻이다.
계단을 올라서서 바로 앞에서 본 대학루와 왼쪽의 오포대
오포대午砲臺는 일제강점기에 정오[당시 우리나라 시각으로는 오전 11시]를 알리는 신호로서 쏘는 포를 말하는 오포가 설치된 장소를 말한다.
당시 목포사람들은 정오에 쏘는 포 소리를 듣고는 '오포분다'고 하였다고 한다.
대학루와 오포대는 목포를 아주 잘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조망점이다.
오포대 옆에서 바라본 목포 풍광.
정남쪽의 영산강 하구. 왼쪽이 강이고 오른쪽이 바다이므로 강물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
아래 사진 앞쪽의 목포는 영산강 우안이며, 사진 뒤쪽에 있는 강 건너 영산강 좌안은 영암군이다.
사진 맨 왼쪽이 보이는 건물이 우리가 출발했던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이고, 사진 오른쪽 강 하구 가운데 섬이 등대섬, 오른쪽 큰 섬은 고화도이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과 삼학도 사이 안쪽으로 깊게 들어오도록 조성된 목포항.
강 건너 보이는 가장 높은 산은 영암 대아산이다.
노적봉 뒤로 보이는 목포 동쪽
목포 북동쪽
목포 북쪽
오포대에서 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본다.
길 오른쪽 바로 옆 바위에 앞면은 '유달산儒達山', 뒷면은 '해발이이팔미(228m)海拔二二八米'라 새겨진 작은 표지석이 서 있다.
대학루 옆 휴게소 앞 힉암사 갈림길에는 유달산둘레길 안내도가 있다.
계단 위 휴게소 앞 유달산이야기 안내판
유달산이야기 안내판을 지나 계속 앞에 보이는 계단을 오르면 일동바위로, 오른쪽 길은 주차장으로 가는 둘레길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제 유달산공원을 내려갈 시간.
유달산공원 입구 계단을 내려가면 정면에 노적봉이 우뚝 서 있다.
2020. 8. 19 새샘, 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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