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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7/22 안동 도산서원1: 주차장에서 도산서원 정문까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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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7/22 안동 도산서원1: 주차장에서 도산서원 정문까지

새샘 2020. 9. 4. 14:03

<도산서원과 부근 시설물 배치도>

 

<도산서원 내 건물 배치도>

 

<인터넷에서 찾은 도산서원 전경(출처-http://www.jungb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18997)>

 

안동安東 도산서원 陶山書院은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선생이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조선의 사설 교육기관으로서,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토계리) 낙동강 우안에 자라집고 있다.

 

도산서원은 선조 때인 1574년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상덕사尙德祠란 사당을 짓고 전교당典敎堂 동재와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으며, 1575년 선조에게 이름을 받아 사액賜額서원[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받은 서원]이 되면서 영남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산서원은 크게 퇴계 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과 선생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인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명종 때인 1561년 선생이 후진 양성을 위해 직접 설계한 건물로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인 농운정사도 함께 지었다.

그리고 도산서원은 선생 사후인 1576년 완공되었다.

 

1969년 사적 제170호로 지정되면서 보수와 증축 사업이 진행되어 1977년 도선서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산서원의 국가지정문화재로는 강세황이 그린 도산서원도, 그리고 건물로는 상덕사 및 삼문, 전교당 등의 보물이 있다.

그리고 2019년 도산서원 등 전국의 조선 서원 아홉 곳이 '한국의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주차장의 안내판과 매표소 사잇길이 도산서원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안내판 왼쪽에는 세계유산 표지석, 오른쪽에는 하마비가 각각 서 있다.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표지석

 

이곳을 지날 때는 말을 탄 모든 사람은 내려서 걸아 들어가야 한다는 '하마비下馬碑'

 

매표소에서 도산서원 정문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인 350m 정도의 잘 정돈된 흙길로서, 오른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경관이 좋다.

 

흙길 오른쪽 강변에 늘어선 소나무들

 

추로지향비鄒魯之鄕碑는 옛부터 예안과 안동을 공자와 맹자가 살던 중국 노魯와 추鄒 두 나라에 비한 것으로 성인聖人이 살던 고향이란 뜻으로 세운 비다.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본 낙동강은 잔잔하여 거의 흐르지 않는다. 이는 안동댐 상류의 안동호 수역이기 때문.

 

시원하게 죽 뻗은 강변의 소나무

 

도산서원 앞의 넓은 마당 끝 강변에 서 있는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

퇴계 선생이 서원 앞 낙동강변 두 곳의 절벽에 조성한 자연체험장 중 하류(서쪽)에 있는 곳이며, 여기서 상류(동쪽) 80m 지점에 천연대天然臺가 있다. 

운영대란 이름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에 나오는 시구 '빛과 구름 그림자 함께 돌고 돈다(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徊)'에서, 그리고 천연대는 시경에 나오는 '솔개는 하늘 높이 날아오름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연비려천 어약우연鳶飛戾天 魚躍于淵)'에서 각각 따온 것이다.

 

운영대에서 바라본 강 건너 시사단試士壇.

시사단 위에 있는 비각은 조선시대 지방별과가 치러진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1792년 정조가 관원을 도산서원에 보내 임금이 지은 제문으로 퇴계의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 다음날 이곳 솔숲에서 어제御題[임금이 낸 시험문제]로 과거를 보았는데, 응시자는 무려 7천 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비각의 비문은 당시 영의정이었던 채제공 선생이 지었다.

안동댐 수몰로 당시 솔숲은 없어져 버렸고 그 자리에 10m 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솔숲과 비각을 조성하고 과거 보았던 곳에 비를 세워 표시해 두었다.

 

운영대 옆 동쪽 천연대 가는 길목에 서 있는 높이 자란 상수리나무.

사진 오른쪽 맨 밑으로 천연대 가는 길과 계단이 보인다.

 

상수리나무 몸통 줄기에 다닥다닥 붙어 자라고 있는 겨우살이

 

도산서원 앞 마당 동쪽 끝머리에 천연대 가는 길 근처에 있는 왕버들은 누워서 옆으로 길게 가지를 뻗어 둥근 왕버들로 변모했다. 

 

뒤에서 본 옆으로 누워 뻗은 왕버들 몸통 줄기

 

운영대 앞쪽 마당에 서서 바라본 도산서원 전경.

 

도산서원으로 들어가기 전 서원 앞 넓은 마당을 왼쪽(서쪽)부터 돌아보면서 나무와 시설물을 구경한다.

한가운데 삐딱하게 굽어 오른쪽에 지지대를 걸쳐놓은 나무는 향나무이고, 그 왼쪽 담장 앞에 여러 개의 지지대가 서 있는 나무는 소나무다. 소나무와 향나무 사이로 담장 앞에 배롱나무 분홍꽃이 피었다.

사진 왼쪽 끝 돌담 앞의 비는 1970년에 세운 도산서원중수기념비.

 

도산서원중수기념비

 

위 사진에서 보이는 소나무 왼쪽으로 안쪽에 서 있는 금송.

1970년 도산서원 중수 준공식 때 박정희 대통령이 마당 한가운데 금송 한 그루를 기념식수하였는데, 2년 뒤 나무가 죽자 금송을 또 심었다.  새로 심은 금송이 너무 크게 자라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아 2018년 마당 구석으로 옮겨심은 것이라 한다.

주변환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아마도 금송이 일본 나무란 국민들의 비판 때문일 것이다. 

 

향나무 왼쪽에서 바라본 도산서원 전경

 

정문 왼쪽 담장 앞 정원으로 다가선다.

왼쪽부터 영춘화, 배롱나무, 매실나무, 산수유의 순서로 나무를 심어 놓았다.  

 

왼쪽 담장 끝의 영춘화

 

영춘화 오른쪽의 배롱나무

 

배롱나무 오른쪽의 매실나무

 

매실나무 오른쪽의 산수유

 

향나무 오른쪽 마당 풍광.

앞쪽에는 향나무 오른쪽에 둥근 수형의 회양목과, 그 바로 옆에 가지를 넓게 옆으로 뻗친 매실나무가 있고, 두 사이 뒤쪽에는 몸통 줄기 2개가 마주보고 서 있는 느티나무, 그 오른쪽에 표지판이 서 있는 구조물은 우물인 열정, 열정 오른쪽의 큰 나무는 왕버들이다. 

 

도산서원 정문 오르는 계단, 느티나무, 열정, 왕버들

 

열정 왼쪽에 서로 얼굴을 맞대고 서 있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

 

정문 앞에 서 있는 우람한 이 왕버들이 도산서원에서 가장 크고 나이가 먹은 나무로 보인다.

 

도산서원 정문 계단 오른쪽 옆에 있는 도산서원의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인 열정洌井.

열정이란 이름은 역경의 정괘井卦 '우물이 맑고 차서 샘물을 마신다(정렬한천식井洌寒泉食)'에서 따온 것이다.

마을이 떠나도 옮겨가지도 않고 퍼내어도 줄지 않는 이 우물물을 마시는 것처럼 무궁한 지식의 샘물을 두레박으로 하나하나 퍼내어 마시면서 무단한 노력으로 심신을 수양해야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도산서원으로 들어가는 정문 계단 양쪽에는 각각 모과나무(왼쪽)와 매실나무(오른쪽)가 서 있다.

 

정문 계단에 서서 찍은 가족 인증샷!

2020. 9. 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