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20. 7/22 안동 도산서원2: 도산서원 본문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선생이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조선의 사설 교육기관인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은 1575년 사액서원이 되었고, 1576년에 완공되었다.
1969년 사적 제170호로 지정되었고, 2019년에는 도산서원을 비롯한 전국 조선 서원 9곳이 '한국의 서원'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도산서원 정문
정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첫 번째 건물은 유생들의 기숙사인 농운정사隴雲精舍.
농운은 '언덕 위 구름'이고, 정사는 정신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구하며 가르치는 집이다.
제자들이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으로 건물이 공부 '공工' 자 형태로 지었다고 한다.
농운정사 맞은 편 건물인 도산서당陶山書堂은 선생이 4년에 걸쳐 지은 건물로 가운데 방에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방 이름은 완락재玩樂齋('완락'이란 주자의 명당실기에 나오는 말로서 도道와 이理를 완상玩賞(즐겨 구경함)한다는 뜻)이고
마루 이름은 암서헌巖栖軒(암서란 주자의 시에 나오는 말로 바위 구멍에 깃든다는 뜻)이다.
도산서당 앞 마당의 우물 정우당淨友塘에는 연꽃과 수련이 많다.
선생은 진흙탕에 살면서도 몸을 더럽히지 않고, 속은 비고 줄기는 곧아 남을 의지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맑다는 꽃 중의 군자인 연꽃을 심고서, 우물물을 마시면서 깨끗한 벗을 사귀라는 뜻으로 정우당이란 이름을 붙였다.
도산서당에서 나와 서원의 중심이 되는 전교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오른쪽은 매실나무 정원 매화원梅花園이다.
퇴계선생의 매화 사랑은 끔찍하여 도산서원의 수십 그루의 매실나무를 심었으며,
도산서원 일대를 매화 동산으로 꾸밀 생각까지 했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선생의 매화 사랑은 단양군수 시절에 만난 관기 두향杜香과의 사랑 때문이었다.
선생이 단양 군수를 마치고 떠날 때 짐 속엔 두향이 준 매화 화분 한 개와 수석 2개가 들어 있었는데,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그리고 임종 직전에 남긴 선생의 한 마디는 "매화에 물을 주어라"였다.
선생은 매화를 매군梅君 또는 매형梅兄이라 부르면서 완연한 인격체로 예유하였으며,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 수가 넘는다.
도산서원의 매화는 4월에 활짝 핀다.
맨 아래쪽 매화 왼쪽의 작은키 나무는 모란이다.
이 표석 글씨는 선생의 '퇴계선생매화시첩退溪先生梅花詩帖'에서 글자를 뽑아 새긴 것이다.
전교당으로 들어가는 진도문進道門과 문 옆에 있는 건물은 책을 보관하는 서고 광명실光明室
진도문 안쪽에 '전교당'이란 현판이 보인다.
광명실은 책에 끼는 습기를 막기 위해 누각식으로 지었다.
광명光明이란 '책이 서광을 비추어 준다'는 의미이며, 왼쪽은 서광명실, 오른쪽은 동광명실로 불린다.
진도문을 들어서서 찍은 전교당과 주변 건물 파노라마.
가운데 건물이 전교당이며, 양쪽에 직각으로 서 있는 건물은 유생들의 공부방으로 왼쪽은 홍의재, 오른쪽은 박약재.
전교당典敎堂은 서원의 중심 건물로서 선조 때인 1574년 건립된 앞면 4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인 대강당이다.
대청마루를 넓게 만들었고, 대청 왼쪽에 거실인 온돌방 한존재閑存齋를 만들었다.
전교당 건물은 도산서원의 보물 3개 중 하나로서 보물 제210호.
선조가 하사한 '陶山書院' 현판 글씨는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선조 임금 앞에서 쓴 글씨라고 전해진다.
우리가 들렀을 때 마침 전교당 대청에서 한복 차림의 갓을 쓴 선비가 설명을 하고 있어, 가족들이 대청으로 올라가 앉아 열심히 얘기를 들었다.
전교당 왼쪽(서쪽)의 유생들 공부방 홍의재弘毅齋
전교당 오른쪽(동쪽)의 공부방 박약재博約齋
전교당 오른쪽 뒤에 있는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享祀[제사]를 지내는 사당祠堂 상덕사尙德祠 정문인 삼문三門.
상덕사와 삼문은 전교당과 같이 1574년에 처음 지었다.
도산서원의 두 번째 보물이 상덕사와 삼문(보물 제211호)이다.
삼문이 굳게 닫혀있어 상덕사로 들어갈 수 없었다.
전교당 뒤 상덕사 왼쪽 담 앞의 줄기가 검은 대나무 오죽烏竹 숲.
오죽은 검정대, 흑죽이라고도 하며, 왕대 속 대나무로서 줄기가 검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왕대 속의 솜대(분죽粉竹)와 비슷하다.
전교당 왼쪽(서쪽)으로 난 문 2개를 통과하면 상고직사上庫直舍가 나온다.
상고직사로 들어가는 2개의 문.
고직사란 서원 관리인들이 거주하는 살림집이다.
상고직사 아래쪽에 하고직사가 있어 고직사 건물은 2개다.
고직사에서 내려다 본 도산서원 서쪽 건물들.
고직사 담장 위에 지붕 일부만 보이는 건물이 홍의재, 담장 오른쪽 끝 바로 아래쪽이 하고직사, 그 아래가 농운정사다.
오른쪽 나무 뒤 옥진각이 하고직사와 마주 보고 있으며, 옥진각과 하고직사 사잇길 끝의 쪽문 오른쪽 뒤 건물은 역락서재다.
하고직사(왼쪽)와 옥진각(오른쪽)
옥진각玉振閣은1970년에 지은 퇴계선생의 유물전시관으로,
옥진이란 이름은 맹자에 나오는 '집대성금성옥진集大成金聲玉振 '의 줄인말이다.
맹자가 쓴 이 말은 '공자는 고대 성인들의 장점을 집대성하여 모두 지닌 성인'이라 찬미한 것.
따라서 성인 퇴계선생의 유물을 모은 누각이란 뜻으로 보인다.
옥진각에는 도산서원의 연력과 건물에 대한 사진과 설명 외에 선생이 유품인 책상, 베개 등의 실내비품과 매화연, 옥서진 등의 문방구, 청려장, 매화등, 투호, 혼천의 등이 있다.
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도산서원 전경 사진이 있고, 복도 양쪽 벽에는 그림이 걸려 있다.
이 두 개의 그림 중 강세황이 1751년(영조 27년)에 그린 도산서원도가 도산서원의 세 번째 보물 제522호이다.
물론 이 그림은 모조품이고,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도산서원 배치도
퇴계 선생의 유품들
옻칠 나무 책상인 서기書丌, 매화 무늬 청자기 걸상인 매화등梅花凳, 그리고 푸른 명아주대로 만든 지팡이 청려장靑藜凳.
왼쪽부터 등잔을 걸어놓는 등잔걸이 등경燈檠, 글을 쓸 때 종이 양쪽을 눌러놓는 옥서진玉書鎭과 가는 회초리 세지細枝, 벼루를 넣는 검은색 목함인 연갑硯匣, 침 뱉는 그릇 백자타호白磁唾壺, 자색의 돌로 만든 벼루 매화연梅花硯, 율무(의이인薏苡仁) 대로 만든 긴 빗자루 장추長帚
수신십훈修身十訓
교육관
성리학의 발달, 퇴계선생의 사상, 도의철학과 실천
도산서원의 마지막 코스는 가장 아래쪽에 있는 역락서재亦樂書齋이다.
이 건물은 선생의 제자 정사성의 아버지가 지어준 1550년대 공부방으로서, 여기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동몽재童蒙齋라고도 부른다.
현판 글씨는 퇴계선생의 친필이며, 이름은 논어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벗이 멀리서 찾아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에서 따온 것이다.
2020. 9. 11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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