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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샘 2020. 11. 27. 11:53

<앙리 라보리의 저서 도피예찬(사진 출처-https://www.babelio.com/livres/Laborit-loge-de-la-fuite/1745)>

프랑스의 외과의사·신경생물학자·작가·철학자였던 앙리 라보리 Henri Laborit(1914~1995)는

≪도피 예찬 Éloge de la fuite'≫(1976)이란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이 어떤 시련에 마주쳤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뿐이다.

첫째는 시련에 맞서 싸우는 것이요,

둘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도피하는 것이다.

 

먼저, 시련에 맞서 싸우는 것으로 말하자면, 이는 가장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태도이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의 몸은 정신 신체 의학적 손상을 입지 않는다.

그가 받은 공격은 반격으로 바뀐다.

하지만 이런 태도에는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

반복적인 공격의 악순환에 빠져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공격적인 사람은 결국 자기를 때려눕힐 더 강한 사람을 만나게 마련이다.

 

두 번째로 말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란 원한을 꾹꾹 눌러 참고

마치 공격을 받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잘 받아들여지고 가장 널리 퍼져 있는 태도이다.

학자들은 이것을 <행동 억제>라고 부른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적의 얼굴을 때리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구경거리가 되거나 상대의 반격을 받거나 공격의 악순환에 빠져들 위험성을 의식해서 

자기의 분노를 삼켜 버린다.

그럼으로써 적에게 안기지 못한 주먹을 자기 자신에게 안기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궤양, 건선, 신경통, 류머티즘 같은 정신 신체 의학적 질병이 많이 나타난다.

 

세 번째 길은 도피하는 것인데, 이 도피에는 다음과 같이 여러 종류가 있다.

화학적 도피: 술, 담배, 마약, 강장제, 안정제, 수면제,

이런 것들은 외부로부터 받은 공격의 고통을 지워 버리거나 완화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것들을 이용해서 모든 걸 잊어버리거나 미친 사람처럼 넋두리를 하거나 잠을 자고 나면, 시련이 지나간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도피는 현실 감각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늘 이런 식으로 도피하는 사람은 갈수록 현실 세계를 견딜 수 없게 된다.

 

지리적 도피: 끊임없이 옮겨다니는 것.

어떤 사람들은 직장, 친구, 연인, 생활 장소 등을 자주 바꿈으로써 자기 문제들을 이동시킨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문제가 놓인 환경이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한결 산뜻한 기분을 느끼면서 활력을 얻게 된다.

 

예술적 도피: 자기의 분노와 고통을 영화나 음악, 소설, 그림, 조각 같은 예술 작품으로 변화시키는 것.

어떤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는 감히 주장하지 못하는 것을 상상 세계의 자기 주인공으로 하여금 대신 말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카타르시스 catharsis[정신의 안정]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영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자기들을 모욕한 자들에게 복수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 역시 그런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출처: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임호경 옮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열린책들, 2011)

 

2020. 11. 27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