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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조선 불화 이자실 "관음삼십이응신도"

새샘 2020. 12. 14. 19:50

이자실, 관음삼십이응신도, 1550년 비단에 채색, 235×135㎝, 일본 지온인(지은원知恩院)(사진 출처-https://t1.daumcdn.net/cfile/blog/135D3A424F290C7910)

 

조선시대 불화는 고려 불화에 비교해서 예술 작품으로서는 뒤떨어지는데, 이는 조선이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왕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조선시대에도 예외적으로 훌륭한 불화를 남긴 시기들이 있었는데, 왕가에서 불교를 숭상하였던 세조대와 중종비였던 문정왕후가 대왕대비로서 섭정을 하던 명종대다.

지금 일본에서 전하는 조선시대 초의 불화 그림은 주로 명종대에 그려진 것들이다.

 

그 중 대표적인 불화가 바로 이자실李自實이 그린 <관음삽십이응신도觀音三十二應身圖>다.

이 그림은 중생을 구원하려는 관음보살이 형편에 따라서 몸을 여러 모양으로 바꾸어 중생을 구제한다는 테마로서 '32응신도'라고 했지만 실제 그림에는 '22응신'만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보통 불화와는 달라서 가운데 있는 관음보살 주변의 산수가 마치 그림의 주격을 이루는 것 같은 역할을 한다.

그 사이에 여러 가지 화신化身하는 모습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림 모양에 주목적이 있기 때문에 혹시나 이런 류의 중국본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림 전체가 거대한 산수화의 장면 장면들이 그려져 있어서 아주 볼 만하다.

 

더구나 현재로서 조선 초기의 산수화는 남아 있는 것도 적고, 전하는 것이 있어도 모두 중국풍인데 대해서 이 32응신도에 나와 있는 산수 모양은 그렇지가 않다.

주로 농담濃淡[색깔이나 명암의 짙음과 옅음]을 중심으로 한 아주 독특한 산수로서 이것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명종 5년 1550년에 그려진 <관음삼십이응신도>는 인종비였던 공의恭懿 왕대비가 발원해서 그린 것으로 영암 월출산月出山 도갑사道岬寺에 내렸다는 사실이 화제에 쓰여 있다.

그리고 이자실李自實이라는 낙관이 있어서 이 그림의 작가가 이자실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의 양공良工[재주와 기술이 뛰어난 공인工人]을 골랐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자실이란 인물은 그림으로 이름이 있었던 사람인 모양이다.

 

그런데 이 화가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 초에 지은 ≪의과방목醫科榜目≫에 실린 족보에 견후증堅後曾이란 사람이 나오는데, 그 처가가 전주全州 이흥효李興孝로, 그리고 그 조부祖父[할아버지]가 자실自實, 일본一本 배련陪連이라 되어 있고, 도 다른 한 편에는 증曾조부가 소불小佛이라고 되어 있다.

≪의과방목醫科榜目≫이란 책은 우리나라 규장각에도 있고, 다른 초행본들도 있는데 거기에는 이런 내용의 대이 전혀 없다는 게 이상하다.

 

하버드대학교 소장 ≪의과방목醫科榜目≫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 화원화가畵員畵家 집안이었던 이상좌李上佐-이숭효李崇孝/이흥효李興孝-이정李禎에 이자실이 추가되는 것이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화원화가였던 이정(1578~1607)은 아버지인 이숭효(?~?)가 일찍 죽어 삼촌인 이흥효(1537~1593)의 양자가 되었고, 이정의 할아버지는 이상좌(?~?)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이정의 할아버지가 이자실이 되는 셈으로, 이상좌가 곧 이자실인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자실의 <관음32응신도>가 현재 전해지는 이상좌의 그림과는 아주 다르며, 이상좌에 대한 기록도 많지 않고 자세하지 않기 때문에 이상좌의 아들이 이자실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상좌-이자실-이숭효/이흥효-이정의 조선시대 화원화가 가계가 되는 것이다.

 

※이 글은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에 실린 글을 발췌한 것이다.

 

2020. 12. 1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