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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시황제

새샘 2021. 5. 25. 14:29

<사진 출처-출처자료1>

처음엔 혼돈이 있었다.
서기전 3세기의 중국에는 연燕, 조趙, 제齊, 위魏, 진秦, 한韓, 초楚 일곱 나라가 할거하여 끊일 새 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에 따라 제철 기술이 발달하고, 농업 공동체의 해체가 일어났으며, 사람들은 철기를 이용하기에 효과적인 더 큰 단위로 재조직되었다.

말하자면 농촌 인구의 대이동이 일어났던 셈이다.

 

도시 인구의 증가는 유한 지식 계급의 번성으로 이어져,

이른바 제자백가諸子百家 Hundred Schools of Thought[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서기전 770-221)에 나타난 여러 사상가와 그 학파] 가운데 법가法家의 출현은 그때까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던 새로운 제도인 절대 군주제를 낳게 했다.

법가 사상가들은 완벽한 절대 왕정의 국가를 건설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나중에 시황제始皇帝가 될 진나라 왕 정政에게 그의 모든 권력을 시험하게 했다.

 

그들은 왕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백성들을 분할하고 상호 감시 체계를 만들었다.

밀고 행위는 의무가 되었다.

범법 행위를 고발하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의 범법 행위였다.

 

밀고의 순환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다섯 가구가 하나의 조를 형성하고 각 조에는 정기적인 보고 책임을 맡은 공식 감시자가 있다.

그 공식 감시자는 다시 비공식 감시자에게서 은밀하게 사찰을 받는다.

다섯 조가 모이면 하나의 부락이 된다.

각 단위에서 밀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밝혀지면 그 책임은 구성원 전체에게 돌아간다.

그럼으로써 물고 물리는 감시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법가들은 유례 없이 극도로 분화된 행정 제도를 만들었다.

진나라 시황제는 법가의 가르침을 지나칠 정도로 잘 받아들여, 자기 백성들에 대해 늘 사찰과 역逆사찰을 강요했다.

나중에는 자기 신하들도 믿을 수 없어서, 순진한 소년들로 이루어진 경찰을 만들어 관리들을 감시하고 재앙의 두 원천인 반동 분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을 고발하게 했다.

관리들은 앞서가도 뒤처져도 안 되었고, 오로지 현상 유지를 위해서만 일해야 했다.

 

법가들은 다투어서 기발한 생각들을 내놓았다.

그들은 <반사적인 법>을 만들고 싶어했다.

반사적인 법이란, 구두나 문서로 표현된 법이 아니라, 그것을 어기는 게 불가능할 만큼 백성들의 유전자에 각인시킨 법이다.

 

그런 법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공포를 통해서다.

법가는 중국적 형벌의 개념을 창안했다.

모든 백성들이 법률을 즉각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어기는 것은 상상도 못 하게 만드는 그런 형벌이었다.

고문은 하나의 과학이 되고, 형리는 선망의 직업이 되었으며, 고문을 가르치는 학교까지 생기는 판국이었다.

몇몇 죄인을 공개 처형하는 것만으로 새로운 법을 주지시키기에 충분했을 터인데도, 백성들이 한시라도 법을 잊지 않게 하려고 형을 집행하기 전에 죄인들을 끌고 돌아다니는 조리돌리기를 생각해 냈다.

 

가혹한 형벌 제도를 만든 데 이어 법가들은 <생각하는 것을 금하는> 정책을 만들어 냈다.

그에 따라, 서기전 213년 진나라 시황제(재위 서기전 220-서기전 210)는 책들을 반체제적 위험물로 규정하는 법령을 반포하기에 이르렀다.

책을 읽는 것은 국가 안전을 침해하는 행위가 되고, 똑똑한 것은 국가의 적 제1호가 된 셈이었다.

누구도 똑똑해선 안 되었다.

생각하는 자는 누구나 황제에게 역심을 품게 마련이라는 것이 법가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들을 일에 취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생각하는 것을 막는 방법이었다.

누구에게도 쉴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휴식은 반성을 낳고 반성은 반란으로, 반란은 형벌로 이어진다.

문제의 소지를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여섯 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킨 뒤, 과대 망상에 사로잡힌 황제는 스스로를 세계의 지배자라 칭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중국인들은 세계가 동쪽으로 중국해, 서쪽으로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끝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히말라야 산맥 너머에는 야만인들과 야수들만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빠른 시일 안에 중국 통일을 완수하였지만, 그것으로는 황제의 욕망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자기 군대가 정복자가 되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음을 깨닫고, 황제는 어마어마한 사업에 착수했다.

만리장성의 축조가 그것이었다.

그 공사장은 처음엔 지식인들의 노역장에 불과했지만, 곧 백성들을 통제하는 좋은 빌미가 되었다.

그 장성을 건설하면서 수백만의 백성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종말이 가까워질 무렵, 황제는 자기 주위의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

후궁들과 법가 신하들을 모두 죽인 뒤에, 황제는 철기 기술자인 자기 스승에게 명하여 철제 꼭두각시들을 만들게 했다.

자기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신하들은 오로지 그 꼭두각시들뿐이었다.

그 인형들은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기술의 산물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인간을 기계로 대체하려 했던 역사상 최초의 시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으로도 시황제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세계의 주인이 된 것으로도 모자라 그는 불사不死 영생永生을 꿈꾸었다.

그리하여, 그는 양기가 쇠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정의 순간에 가는 실로 올가미로 정액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음으로써 기력이 빠져나가지 않게 했으며, 자기의 모든 음식에 산화수은을 넣게 했다.

당시 산화수은은 불로장생의 명약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결과는 황제를 산화수은 중독으로 죽게 했을 뿐이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구축해 놓은 공포 정치가 어찌나 막강했던지,

그의 신하들은 그가 죽어서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할 때까지 그를 경배하였고 수라도 올렸다.

 

※출처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임호경 옮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열린책들, 2011)

2. 구글 관련 자료

 

2021. 5. 2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