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노화의 종말 10 - 건강 장수 칠계명 중 6계명: 몸을 차갑게 하라 본문
20대 초에 보스턴으로 오기 전까지 나는 줄곧 호주에서 살았다.
미국으로 옮겨 왔다고 해서 문화적으로 별 이질감은 없었다.
일주일 사이에 나는 어느 상점에서 베지마이트 Vegemite[야채 즙과 소금과 효모로 만든 호주의 국민 잼 jam]를 파는지 알아냈다.
아이 때 늘 접하면서 상당한 수준으로 후성유전적 적응이 이루어져야만 어른이 되어서 음미할 수 있다고 할 만한 검은색의 효모 발효 잼이다.
그 밖에 호주에서 즐겨 먹던 간식거리를 구하는 방법도 알아냈다.
하지만 가장 고역스러운 것은 추위였다.
어릴 때 나는 추위가 어떤 것인지 안다고 생각했다.
운영한 지 한 세기가 넘은 시드니의 공식 기상관측소가 있는 옵저버토리 힐 Observatory Hill의 기온이 섭씨 0도에 가까워질 때(현대 역사에서 그 이하로 떨어진 적은 없었다)가 바로 추울 때였다.
보스턴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정말로 얼어붙는 세계였다.
나는 외투, 스웨터, 긴 속옷을 사 입고 주로 실내에서 버텼다.
박사후 연구원 post-doctors들이 으례 그렇듯이 나도 밤을 새면서 연구할 때가 많았다.
나는 진정으로 연구에 몰두했지만 사실 밤에 집에 가기 위해 추운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얼마간은 작용했다.
요즘 같아서는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싶다.
용감하게 나가 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다.
매서운 추위 속을 걸어 보라고, 1월 중순의 차가운 찰스강에 발을 담가 보라고.
몸을 편안하지 않은 온도에 노출시키는 것이 장수 유전자를 켜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온열중성대 溫熱中性帶 thermoneutral zone[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몸이 따로 일할 필요가 없는 좁은 온도 범위]에서 벗어나면 온갖 일들이 일어난다.
먼저 호흡 패턴이 바뀐다.
또 몸에서 가장 큰 기관인 피부로 향하고 통하는 혈액 흐름이 달라진다.
심장 박동은 빨라지거나 느려진다.
이런 반응들은 단순히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모두 유전적으로 수십억 년 전 지구상에 최초로 출현한 원시세포인 마그나 수페르스테스 Magna superstes의 생존 투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항상성 恒常性 homeostasis, 즉 생물이 안정된 평형 상태를 추구하는 경향은 보편적인 생물학 원리 중 하나다.
사실상 생존 회로를 인도하는 힘이다.
따라서 어디에서든 그것을 볼 수 있다.
추울 때 특히 그렇다.
과학자들이 음식 섭취량 감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점점 주의를 기울이면서 열량 제한이 심부 체온 core body temperature[신체 내부기관의 온도]을 낮추는 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이 곧 분명해졌다.
처음에는 이 효과가 활력 지속에 기여하는지, 아니면 그저 이 특정한 스트레스에 노출됨으로써 인체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들의 부산물인지가 불분명했다.
그러다다 2006년 스크립스 연구소 Scripps Research Institute의 과학자들이 유전공학적으로 체온이 정상보다 섭씨 0.5도 낮은 생쥐를 만들었다.
생쥐의 생물학적 체온계를 교묘하게 속임으로써 해낸 것이다.
연구진은 생쥐의 피부, 땀샘, 혈관을 조절하는 기관인 시상하부에 생쥐의 UCP2 유전자 사본을 집어넣었다.
UCP2는 시상하부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의 회로를 방해함으로써 에너지 생산을 저해했다.
그 결과 생쥐는 체온이 약 0.5도 낮아졌다.
이 생쥐 중 암컷은 수명이 20퍼센트 더 늘었는데, 사람으로 치면 건강하게 약 7년 더 사는 셈이었다.
한편 수컷은 수명이 12퍼센트 늘었다.
이 유전자—사람에게도 상동 유전자가 있다—는 생쥐의 몸이 실제보다 더 따뜻하다고 생각하도록 시상하부를 속이는 복잡한 기구의 일부였다.
또 장수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 계속 나온 것이기도 했다.
5년 전 베스 이스라엘 디커니스 메디컬센터 Beth Israel Deaconess Medical Center와 하버드의대 Harvard Medical School 공동 연구진은 UCP2 유전자를 무력화시킨 생쥐가 더 빨리 늙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2005년 코네티켓대학교 보건센터 University of Connecticut Health Center의 스티븐 헬펀드 Stephen Helfand 연구진은 한 상동 유전자의 상향 조절 upregulation[세포가 외부 자극에 반응해 유전자 발현이 늘어나 mRNA 양이 증가되는 것]을 통해 초파리 암컷의 수명은 28퍼센트, 수컷의 수명은 11퍼센트 늘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2017년 캐나다 퀘벡 Quebec에 있는 라발대학교 Laval Unviersity 연구진 덕분에 UCP2 유전자와 노화의 연결 고리가 마침내 완성되었다.
그들은 UCP2가 생쥐를 "차갑게" 만들 뿐 아니라, 거꾸로 더 차가워진 체온이 이 유전자의 작동 양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또한 보여 주었다.
바로 갈색지방조직 brown adipose tissue을 활성화시키는 UCP2의 능력을 통해서였다.
"갈색지방 brown fat"이라고도 하는 이 미토콘드리아가 풍부한 조직은 최근까지는 유아에게만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이 조직이 성인에게도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양이 줄어들긴 한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갈색지방은 백색지방 white fat과 섞이며 몸 전체에 더 불균일하게 퍼져 있다.
사람마다 남아 있는 부위가 다른데 배에 있는 사람도 있고 등 위쪽에 있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사람에게서 이 조직을 연구하기가 좀 어렵다.
대개는 PET(positron emission tomography 양전자방출단층촬영) 영상을 찍어서—방사성 포도당을 주사해야 한다— 어디 있는지 찾는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설치류를 연구해 갈색지방과 장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꽤 많이 밝혀냈다.
예를 들어 유전공학적으로 만든 유달리 장수하는 에임스 왜소 생쥐 Ames dwarf mice[성장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아서 작게 자라는 생쥐로 노화 연구에 흔히 쓰인다]의 몸에서는 갈색지방이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또 갈색지방이 풍부한 이 생쥐를 하루에 3시간씩 추위에 떨게 하자 UCP 단백질의 지원을 받는 미토콘드리아의 서투인 물질인 SIRT3가 훨씬 더 많아지고 당뇨병, 비만, 알츠하이머병의 발병률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갈색지방에 든 미토콘드리아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은 바로 춥게 지내는 것이다.
춥게 지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주 간단하여 추운 도시에서 겨울철에 티셔츠 차림으로 활기차게 걷는 것이다.
특히 추운 곳에서 운동을 하면 갈색지방조직이 급격히 늘어나는 듯하다.
잘 때 창문을 열어 두거나 얇은 이불만 덮고 자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건강 산업계가 이런 연구 결과들을 놓칠 리 없다.
그래서 지금 추위를 이용하려는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저온요법 cryotherapy[섭씨 영하 110도까지 냉각된 방에 몇 분 동안 들어가 있는 것]은 이런 유형의 스트레스를 몸에 가하는 방법으로서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요법이 어떻게 왜 작동하는지, 아니 실제로 작동하는지 여부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그렇다.
그렇긴 해도 나는 언론계의 거물이자 코미디언인 조 로건 Joe Rogan이 저온요법 스파에 가자고 청했을 때 응했다.
화성의 기온과 비슷한 온도에서 나는 속옷 차림으로 3분 동안 서 있었는데, 그 결과 내 갈색지방이 활성을 띠고 그에 따른 엄청난 건강 혜택을 보았을지 모른다.
아무튼 최소한 그 방을 나서자 활기가 돋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인생에서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듯이 당신이 젊다면 생활습관을 바꾸는 쪽이 최선일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갈색지방은 만들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추위에 노출하는 쪽을 택한다면 적당히 노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단식과 마찬가지로 벼랑 끝에 가까이 다가가지만 그 너머로는 가지 않는 이들이 가장 큰 혜택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저체온증은 건강에 좋지 않으며, 동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소름, 딱딱거리는 이, 떨리는 팔은 위험한 상태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충분히 자주 겪을 때 우리 장수 유전자는 건강한 지방을 추가로 주문하는 데 필요한 스트레스를 얻는다.
그럼 이번에는 반대로 체온을 올리면 어떻게 될까?
좀 불분명하긴 하지만 효모의 경우 꽤 유망한 변화를 보여 준다.
효모 세포의 온도를 섭씨 30도에서 이 단세포 미생물이 견딜 수 있는 한계온도의 바로 밑인 섭씨 37도로 올리면 PNC1 유전자가 켜지고 NAD 생산량이 늘어나 Sir2 단백질이 훨씬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얻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온도 스트레스를 받은 효모 세포의 수명이 30퍼센트 더 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 기전이 열량 제한을 했을 때 작동하는 것과 동일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열이 인체에 과연 좋을까?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는 아니다.
우리는 정온동물이므로 우리 효소는 큰 온도 변화를 견디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심부 체온을 그냥 올린다고 해서 더 오래 살 것이라고 기대할수는 없다.
그러나 피부와 폐를 적어도 일시적으로 고온에 노출시키면 많은 혜택이 있다.
고대 로마 전통을 계승해 유럽 북부와 동부의 많은 사람들은 휴식과 건강을 위해 규칙적으로 '사우나 목욕'을 하곤 한다.
핀란드인이 가장 열심이어서, 1년 내내 일주일에 한 번은 사우나를 한다고 답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2018년 헬싱키에서 이루어진 연구를 보면 "사우나를 하는 사람이 하지 않는 사람보다 신체 기능, 활력, 사회 활동,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상당히 더 낫다"라고 한다.
비록 연구진은 이 효과가 어느 정도는 병들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은 사우나를 하러 가지 않는 사실 때문에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고 제대로 지적했지만 말이다.
더 설득력 있는 증거는 핀란드 동부에서 2300명이 넘는 중년 남성들을 25년 넘게 조사한 연구다.
사우나를 자주 하는 이들—일주일에 7번까지—은 일주일에 한 번 뜨끈한 목욕을 하는 사람들보다 심장병, 치명적인 급성심근경색, 그리고 전반적인 사먕률이 절반에 불과했다.
사우나 연구들 가운데 왜 열기에 일시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우리에게 그렇게 좋은지를 깊이 파헤친 사례는 전혀 없다.
효모를 안내자로 삼는다면 우리 몸에서 NAD를 재활용하는 유전자인 NAMPT가 관여하는 것일 수 있다.
NAMPT는 단식과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역경을 통해서도 활성화된다.
그 결과 NAD가 더 많아지고 서투인이 더 열심히 일함으로써 우리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열기에 NAMPT가 켜지는 것을 검사한 적은 없지만 실제로 활성화된다면 뭔가 일을 할 것이다.
아무튼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항상 온열중성대에서만 지내는 것이 몸에 좋을 리 없다는 것이다.
우리 유전자는 안락하기 그지없는 삶에 맞게 전화한 것이 아니다.
이따금씩 호르메시스 hormesis[어떤 자극에 몸이나 세포가 반응하여 활성을 띠는 현상]를 유도하는 약한 스트레스는 건강 장수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압도적인 유전적 손상은 생물학적 역경에 대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 문제를 마지막 7계명에서 다룰 것이다.
※출처
1. 데이비드 A. 싱클레어, 매슈 D. 러플랜트 지음, '노화의 종말', 부키, 2020.
2. 구글 관련 자료
2021. 6. 21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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