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남리 김두량 "월야산수도" "삽살개" 본문

글과 그림

남리 김두량 "월야산수도" "삽살개"

새샘 2021. 11. 11. 10:18

영조 임금에게서 '남리南里'란 호를 하사받은 김두량金斗樑(1693~1763)의 자字는 도경道卿이며, 외할아버지가 도화서圖畵署 화원이었고, 자신은 도화서별제別提[종육품 관청인 도화서의 2인자에 해당하는 관리]를 지냈다.

그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에게서 그림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수, 인물, 풍속화에 능했고, 무속에서 악귀나 잡귀를 막아주는 신들의 용맹스러운 장군인 신장神將 그림에도 뛰어났다.

화풍은 전통적인 북종화법을 토대로 남종화풍과 서양 화법의 명암법과 원근법도 함께 수용함으로써, 후대의 김홍도와 김득신이 개척한 풍속화의 터전을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서양 화법을 보여주는 작품은 주로 동물화였기 때문에 그가 남긴 개 그림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두량, 월야산수도, 1744년, 종이에 담채, 81.9x49.2㎝,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1)

 

1744년(영조 20년)에 그린 월야산수도月夜山水圖는 늦가을 달밤 급류가 흐르는 비탈진 계곡의 스산한 경치를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유현幽玄한[이치나 아취雅趣가 알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그윽하며 미묘한] 표현력과 정교한 묘사력을 갖춘 걸작으로서 김두량의 대표 산수화로 손꼽힌다.

 

화면 왼쪽 위에 '갑자중추김두량사甲子仲秋金斗樑寫[갑자년 중추에 김두량이 그리다]'라고 적혀 있어 갑자년인 1744년에 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보름달이 떠 있는 것으로 보아 한가위 달밤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나뭇가지를 게발이 갈라지듯 그리는 해조묘법蟹爪描法을 비롯해,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줄기, 가지, 잎 등을 정교하게 묘사한 수지법樹枝法, 우뚝 솟은 암봉을 도끼로 장작을 쪼갠 듯한 부벽준법斧劈皴法 등을 활용해 자신의 산수화 기량을 한껏 발휘했다.

 

 

김두량, 삽살개, 1743년, 종이에 담채, 35.0x45.0㎝, 개인(사진 출처-출처자료1)

 

천연기념물 제368호 토종개 삽살개신선개 또는 선방仙尨[삽살개 '방']이라 불렀으며, 머리가 크고 털이 길어 사자 같다고 해서 사자개라고도 했다.

 

1743년(영조 19년) 작품 <삽살개>는 고개를 쳐들고 입을 벌려 짖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화면에 꽉 차게 그렸다.

활달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이 그림은 개의 표정을 너무나 실감나게 그려서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컹컹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또한 가는 붓을 반복적으로 써서 삽살개 특유의 털 모양을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생생한 느낌을 잘 살려주고 있다.

 

가운데 접힌 자국은 화첩에 들어있던 그림임을 알 수 있는데, 김식金埴, 정선鄭敾, 윤두서尹斗緖, 이징李澄, 이하영李夏英, 심사정沈師正 등 30명이 그린 영모화翎毛畫[새나 짐승을 그린 그림]로 구성된 화첩에 있는 그림이다.

 

위에 있는 화제는 영조가 직접 써준 글로서 "자문야직紫門夜直 시이지임是爾之任 여하도상如何途上 주역약차晝亦若此 계해癸亥유월六月 초길初吉 익일翌日 김두량도金斗樑圖[사립문에서 밤을 지킴이 네 소임이거늘 너는 어찌하여 길에서도 대낮에도 짖어대느냐 계해(1743년) 6월 초하루 다음날 김두량 그림]''.
화제의 글씨와 현존하는 영조 글씨와 대조한 결과 영조의 친필임이 확인되었다.

 

이 그림은 영국에 있다가 일본으로 옮겨갔던 것을 우리나라로 환수한 것이다.

 

※출처
1.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17100251771(월야산수도)

3. https://www.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107547(삽살개)

4. 구글 관련 자료

 

2021. 11. 1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