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긍재 김득신 "강변회음도" "파적도(야묘도추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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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재 김득신 "강변회음도" "파적도(야묘도추도)"

새샘 2022. 5. 11. 14:28
김득신, 강변회음도, 종이에 담채, 22.4X27.0cm, 간송미술관(사진 출처-출처자료1)

 
복헌 김응환을 필두로 하는 개성 김씨 집안 화가로서 당시 도화서를 대표하는 화원이었던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1754~1822)은 김응환의 조카이다.
그가 그린 <강변회음도>간송미술관 소장 화첩에 든 풍속화다.
간송미술관 화첩에는 이 그림과 함께 앞글에서 소개한 아래 그림인 <투전도>, 그리고 아래에 소개될 긍재의 가장 유명한 그림 <파적도> 등이 들어 있다.
 
<강변회음도江邊會飮圖>여러 사람들이 강가에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는 그림이다.
김득신은 이 그림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와 숨겨진 이야기를 간단한 점과 선으로 생생하게 살려냈다.
인물 묘사가 탁월한 김득신의 우수한 작품 즉 수작秀作 중 하나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까만 가마우지다.
배에 세워진 대나무(낚싯대?) 위에서 정겹게 놀고 있다.
여유로운 움직임이 쉬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에서는 가마우지를 가지고 물고기를 잡는 곳이 많은데, 새샘은 중국 저장(절강浙江)성 후저우(호주湖州)시 난쉰(남심南浔)구 운하에서 가마우지 고깃배를 본 적이 있다.
아래 사진을 보면 배 양쪽 난간 위에 앉아 있는 가마우지들은 발목에 쇠고랑을 차고 있다.
 

2020년 1월 14일 새샘이 찍은 중국 저장성 후저우시 난쉰구 운하의 가마우지 고기잡이배

 
그림 속 배가 가마우지 고기잡이배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이 그림을 냇물에서 고기를 잡는 그림인 천렵도川獵圖라 부르기도 하는데, 맨발에 바지를 걷어 올린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기잡이임은 분명하다.
천렵은 봄부터 가을까지 주로 남자들이 하는 놀이로서, 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로 하는 것이다.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과 함께 많은 사람이 즐기는 우리네 여름철 피서법이기도 하다.
 
천렵은 우리 누구나(새샘 역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낚시, 어항, 그물 등을 준비하여 물고기를 잡는다.
방금 잡은 물고기에 가지고 간 푸성귀와 양념을 넣고 매운탕이나 어죽을 끓인다.
'돌이뱅뱅이'라고 하여 튀기거나 굽기도 한다.
강물이 오염되기 전에는 산채로 초고추장 찍어 먹기도 했다.
 
배는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어부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이 함께 고기잡이하기엔 배가 작다.
얼핏 보면 배 위에 움막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덕과 배의 난간 선을 살펴보면 배에 설치된 움막이 아니라 배 뒤쪽에 별도로 있는 것 같다.
물고기를 손수 잡지 않고 어부의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닐까?
그림에는 생략이 많아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당시 천렵은 피서만이 아니라 몸보신을 위한 놀이였다는 점이다.
복더위를 이겨내려면 영양보충이 필수적이었다.
당시엔 단백질 섭취가 쉽지 않았다.
가축을 주로 이용했지만 물고기도 좋은 영양식이었다.
지금도 붕어찜이나 잉어탕은 보양식으로 먹는다.
 
염천炎天(열천熱天: 몹시 더운 날씨)에 바람이 건들 분다.
강물 위에 떠 있는 배가 흔들흔들 몸을 뒤척이며 일으키는 물살, 살랑살랑 지친 마음 훔치는 버들가지, 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자유분방하게 둘러앉았다.
말없이 먹는 일에 열중이다.
화면 한가운데 커다란 물고기가 놓여있다.
다른 반찬은 모두 생략한 그림이다.
그 앞에 밥그릇이 놓여있다.
김득신의 그림에 등장하는 밥그릇은 모양이 꽤 크다.
모두 젓가락을 들고 있으니 그릇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대포 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음식을 즐기고 음미하기에 분주하다.
시선이 모두 제각각이다.
언제나 무리에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이 있다.
시구라도 떠오른 것일까? 아님 깊은 소회가 있는 것일까?
한편에 쪼그려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나무 뒤에 서 있는 아이는 그에게 음식이라도 권하는 걸까?
맨 앞에 앉은 아이가 이야기 소리에 올려다보고 있다.
 
쪼그려앉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왜 물가에 와 있는가? 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선현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물의 혜택은 참으로 많다.
아니, 혜택 정도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요, 생명의 연출자이다.
역할로 보아 생명 지속의 핵심이다.
사사로이 주는 이로움도 하나둘이 아니다.
그러면서 공을 다투지 않는다.
빠짐없이 적셔주고 앞으로 나아간다.
낮은 곳으로 임하고서야 바다에 이르는 것이다.
 
 

김득신, 파적도, 종이에 담채, 22.5X27.1cm, 간송미술관(사진 출처-출처자료1)

 
조용하고 평화롭던 봄날에 돌연 나타난 고양이로 인해 그 정적靜寂이 깨져버린 그림이란 뜻의 <파적도破寂圖>는 풍속화가 김득신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진다.
<파적도>는 또한 '들고양이(야묘野猫)가 병아리(추雛)를 훔치는 그림'이라고 해서 <야묘도추도野猫盜雛圖>라고도 흔히들 부른다.
 
따사로운 바람이 불던 봄날, 한 남정네가 마루에 앉아 자리를 짜고 있었다.
마당에서는 암탉이 모이를 주워먹고 있었고 어미닭을 따라 병아리 몇 마리가 종종걸음을 하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갑자기 암탉의 비명이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디에 숨어 있었던지 보이지 않던 들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병아리를 물고 잽싸게 달아나고 있었다.
새끼가 물려가는 것을 본 어미닭은 애간장이 녹은 듯 고래고래 악을 쓰며 들고양이를 쫓아가고 있고, 혼비백산한 다른 병아리들은 부딪치고 넘어지면서도 도망가느라 바쁘다.
 
"이 놈의 고양이 새끼!"
사태를 즉각적으로 파악한 남정네가 담뱃대를 집어 들었다.
후다닥 일어나 고양이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아, 그런데 마음이 너무 급했던 탓인가.
고양이는 잡지 못하고 자리틀과 함께 마루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머리에 쓴 탕건도 날아갔다.
남편이 낙상하는 걸 본 아낙네가 방 안에서 맨발 차림으로 허겁지겁 뛰쳐나와 떨어지는 영감을 붙들어 보려 하지만 일은 벌써 다 글렀다.
 
아낙네의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이할꼬! 도둑고양이 잡으려다 우리 영감 먼저 잡겠소!"
들고양이 한 마리의 등장으로 고요한 평화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당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들고양이도 남정네도 아닌 바로 아낙네다.
사건의 발단은 들고양이로 인해 시작되었지만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아낙네의 애틋함이다.
마당에 떨어져 자칫 허리가 다칠지도 모를 남편을 보는 아내의 마음이야말로 정말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든 파적破寂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순간적인 상황을 생동감있게 포착한 작품이면서 해학적 표현미가 돋보이는 수작이 아닐 수 없다.
 
그림을 보는 순간 모든 사태가 파악될 정도로 상황 묘사가 적절하다.
감상자에게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붓끝으로 직접 시시콜콜 설명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김득신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자상하다 못해 부담스럽기까지 한 그의 성격이 짐작되어 슬그머니 웃음이 배어나온다.

 
덕분에 <파적도>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의 남편에 대한 마음이 절절이 배어 있어 '차마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되고 만다.

 
이 그림 때문에 김득신은 김홍도, 신윤복과 함께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불리는 것이 아닐까.
 
※출처
1.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http://m.joongdo.co.kr/view.php?key=20190412001031533 (강변회음도)
3.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522 (파적도)
4. 나무위키 https://namu.wiki/w/%ED%8C%8C%EC%A0%81%EB%8F%84 (파적도)
5. 오주석,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2009. 월간미술) (파적도)
6. 구글 관련 자료
 
2022. 5. 1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