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화산관 이명기 "서직수 초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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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관 이명기 "서직수 초상"

새샘 2022. 6. 3. 21:33

이명기와 김홍도, 서직수 초상, 1796년, 비단에 채색, 148.8x72.4cm,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1)

 

개성 김씨 집안 화가에는 복헌 김응환의 사위가 둘 있는데, 그중 하나가 화산관華山館 이명기李命基(1756~1813)다.

화산관 이명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단원 김홍도와 합작으로 그린 보물 제1487호 <서직수 초상徐直修 肖像> 때문이며, 당시 초상화로 이름난 화원이었다.

 

이명기는 1791년(정조 15)에 '정조어진원유관본正祖御眞遠遊冠本'을 도사圖寫[왕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는 것]의 주관화사主觀畵師[왕의 얼굴을 그리는 화원]였고, 1796년에 이 <서직수 초상>을 그릴 때 이명기는 얼굴을, 김홍도는 옷을 그렸다.

 

그림의 오른쪽 윗 부분에 초상화의 주인공인 서직수가 이 초상화를 보고 스스로 평한 글이 적혀 있는데, 고친 곳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초상화가 비공식적으로 그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가 몸을 그렸다

 두 사람은 이름난 화가들이지만 한 조각 내 마음은 그려내지 못했다

 아깝다 내 어찌 산 속에 묻혀 학문을 닦지 않고

 명산을 돌아다니고 잡글을 짓느라 마음과 힘을 낭비했구나

 내 평생을 대체로 돌아보매 속되게 살지 않은 것만은 귀하다 하겠다

 1796년 어느 날 십우헌(이명기의 자字) 예순두살 늙은이가 스스로 평한다

 

 이명기화면 李命基畫面 김홍도화체 金弘道畫體

 양인명어화자 兩人名於畫者 이불능화일편영대 而不能畫一片靈臺

 석호 惜乎 하불수도어임하 何不修道於林下

 낭비심력어명산잡기 浪費心力於名山雜記

 개론기평생 槪論其平生 불속야귀 不俗也貴

 병진년하일 丙辰年何日 십우헌육십이세옹자평 十友軒六十二歲翁自評"

 

한 명의 선비가 공손하게 서 있다.

형형한 눈빛과 당당한 표정이 시선을 끈다.

머리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집안에서 즐겨 쓴 동파관을 착용했다.

조선의 선비를 머리 속에 그릴 때마다 이 초상화를 떠올리게 된다.

 

 

서직수 초상 세부(사진 출처-출처자료2)

 

이 초상화는 무엇보다 눈이 인상적이다.

약간 고개를 숙이고 눈을 치켜뜨고 있어 다부진 선비의 품격을 읽을 수 있다.

눈의 윤곽에 고동색 선을 덧그려 그윽한 깊이감을 주었으며, 주위에는 주황색을 넣어 눈빛이 생생하다.

입고 있는 크림색 도포는 풍성하다.

소매 통은 아주 넓고 길이는 손을 완전히 덮을 정도로 길다.

지체 높은 양반들의 도포일수록 이처럼 넉넉한 품세를 갖추고 있다.

동정 없이 폭이 넓은 목의 깃, 얌전하게 묶은 가슴의 세조대, 부드러우면서도 형체감을 잘 드러내는 옷의 윤곽선과 주름들, 발목까지 내려오는 전체 옷 길이, 이 모든 것들이 선비의 점잖은 풍모와 잘 어울린다.

도포자락 아래로 하얀 버선벌을 드러낸 채 고운 돗자리 위에 올라 서 있다.

눈길이 비켜가기 쉬운 발, 그 하얀 색채가 눈부시다.

 

조선의 초상화 가운데 이처럼 신발을 벗고 있는 예는 드물다.

인물이 내뿜는 기백이 화면의 주조를 형성하는 가운데 동파관東坡冠과 검은색 허리띠(세조대細條帶)가 이루는 검정의 조응, 하얀 버선발의 파격이 단조로움을 깨뜨린다.

돗자리의 횡선들은 화명의 이런 기운을 떠받들면서 평정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 그림은 '조선시대 초상화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 서직수(1735~1811)는 정삼품에 해당하는 통정대부通政大夫 돈녕부敦寧府 도정都正을 지낸 인물로서, 그의 나이 62세 되던 해인 1796년 당시 최고의 궁중화원인 이명기와 김홍도가 그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초상화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왼쪽)이명기와 김홍도가 그린 서직수 초상, (오른쪽)루벤스가 그린 한국인 초상(사진 출처-출처자료3)

 

한편 <서직수 초상>을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거장 루벤스의 1617년에 그린 <한국인 초상>(미국 폴게티박물관)과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루벤스가 그린 한국인은 조일전쟁(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이탈리아로 건너간 '안토니오 코레라'로 알려졌지만, 인상 착의로 보아 에도시대 일본에 파견된 당시 네델란드의 무역관장이 발탁한 조선 전직 관리였던 것으로 새롭게 밝혀졌다.

그림 속 한국인의 정체는 16세기 조선 관리들이 입던 철릭을 입고 두 손을 앞으로 모은 공수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끝에 밝혀졌다.

 

두 그림 속 인물이 모두 서 있는 자세와 두 손을 모은 방식은 비슷하지만 표현 기법과 양식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서직수 초상>은 형형한 눈빛과 선비다운 풍모를 통해 인물의 내면까지 그려낸 반면, <한국인 초상>은 전체적으로 입체적 음영이 돋보이며 두 볼과 콧등, 입술에 붉은색을 칠해 생기를 불어넣었고, 조선인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서양인 느낌이 난다.(계속)

 

※출처

1.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국립중앙박물관, 서직수 초상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recommend/view?relicRecommendId=16849)

3.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25/2011092501434.html

 

2022. 6. 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