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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3: 서울 한양도성2

새샘 2022. 5. 25. 12:32

사진 출처-출처자료1

 

<2000년 이후 발굴조사 목록 - 서울 한양도성2>

 

 

한때 '서울성곽'이라 부르다가 2011년 이름이 변경되어 지금은 '서울 한양도성漢陽都城 Fortress Wall of Seoul'이란 멋진 이름으로 불리는 사적 제10호.

 

 

방화로 불타버린 숭례문(사진 출처-출처자료1)

 

2008년 2월 10일 한양도성의 얼굴인 숭례문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불탄 숭례문을 본 국민들은 허탈감에 빠졌지만, 문화재에 대한 경각심은 한층 더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처음으로 숭례문과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가 2008년부터 시작하여 2010년까지 이어졌다.

 

2008년 1차 조사는 숭례문 임시 보호 비계飛階[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 외곽지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의 건물 터 및 배수시설, 도로면과 성곽 일부에 대한 조사를 통해 성곽 기초부의 축조 양상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2009년 2차 조사는 숭례문 개방을 위해 주변에 조성했던 공원 일대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발굴을 통해 조선 후기의 배수시설과 대한제국기에 부설된 전차 선로의 기초부로 추정되는 석렬石列[엇비슷한 간격으로 길게 줄지어 늘어선 돌의 무리] 유구, 동쪽 성곽을 해체한 뒤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근대 배수시설이 확인되었다.

 

 

숭례문 안쪽의 동쪽에서 조선 후기에 깔았던 것으로 보이는 도로 박석이 노출된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2010년 3차 조사는 숭례문 석축 인접 지역으로서, 발굴 결과 조선 전기의 도로면 및 조선 후기의 도로 박석薄石[얇고 넓적한 돌] 면과 숭례문 외면과 내면의 기초부 및 성곽의 축조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숭례문에 대한 3차에 걸친 발굴조사로 조선 전기와 후기 숭례문 주변의 지형 변화와 숭례문 기초부의 축조 방식을 밝힐 수 있었으며, 아울러 숭례문이 일제강점기에 어떻게 변형되었는 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2013년 5월 4일 숭례문의 복구 기념 현판 제막식(사진 출처-http://www.ezy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55190)

 

이후 2013년 5월 4일 복원 완공식과 함께 복원된 숭례문이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남산 봉수대 터 발굴 개토제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남산 제4봉수대 건물 터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복원된 남산 봉수대(사진 출처-출처자료1)

 

한양도성의 남산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도 2008년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남산 정상에 오르면 복원된 남산南山 봉수대烽燧臺[봉화를 올리던 둑]를 볼 수 있다.

남산은 전국에서 전달된 봉수[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를 올려 사방에 알리던 통신 제도]가 도달하던 종점으로 모두 5개의 봉수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복원된 봉수대는 제3봉수대로 나머지 4개의 봉수대 위치는 알 수가 없는 상태였다.

이에 봉수대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발굴이 2008년 실시된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발굴단은 제1봉수대는 남산 제2봉우리 정상부 일대로 추정했는데, 현재 주한미군 통신대가 자리하고 있다.

제2봉수대는 남산 정상부의 팔각정과 서울N타워 맞은편에 있는 2등 삼각점 일대로, 제3봉수대는 기존 복원한 봉수대 위치, 제4봉수대는 남산 정상부에서 잠두봉 방향으로 등산로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면 케이블카 종점이 있고, 그 아래의 두 군데 평탄지로 추정했다.

제5봉수대는 남산공원관리사무소에서 잠두봉 방향 등산로를 따라 약 200미터 오르면 왼쪽에 있는 긴축 약 70미터, 짧은 축 약 30미터 평탄지로 추정했다.

 

물론 발굴단은 새로이 4곳의 봉수대 위치를 추정했지만 발굴 결과 봉수대의 원래 모습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남산 제모습 찾기 사업'을 꾸준히 추진하던 서울시에서 아직까지도 봉수대에 대한 복원 계획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원형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복원이 가져올 또다른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이미 복원한 제3봉수대가 원형과는 상관없이 수원 화성의 봉돈烽墩[산봉우리가 아닌 성벽에 맞물려 벽돌로 만든 봉수대]을 본떠 복원함으로써 많은 비판을 받은 것은 좋은 실례이다.

일단 추정된 봉수대 터를 바탕으로 학술자료의 고증과 근대 사진 등을 통해 좀 더 시간을 갖고 봉수대의 원형을 먼저 추정하는 것이 좀 더 현명한 일일 것이다.

 

 

현재의 남산 아동광장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남산南山 지역 한양도성에 대한 발굴조사는 서울시의 남산 제모습 찾기 사업인 '남산 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먼저 남산 아동광장에 대한 발굴이 2009년 이루어졌다.

발굴 당시 어린이놀이터가 있었던 남산 아동광장은 한양도성이 숭례문을 지나 남산 기슭으로 향하던 성벽이 지나던 곳으로 보인다.

 

발굴 결과 숭례문 방향의 남산 성벽은 대부분 없어져 버렸고, 도리어 동쪽 방향인 백범광장 쪽 남산 성벽이 잘 남아있었다.

남아있는 성벽 길이는 34미터, 높이 25~75센티미터이다.

성벽은 기저부에 깔렸던 면석面石과 뒤채움돌의 일부만 남아있었다.

 

남산 지역 한양도성 지역에서 확인된 황국신민서사지주(사진 출처-출처자료1)

 

성벽이 발굴되지 않은 숭례문 방향에서는 근대 건조물이 확인되었는데, 그동안 사진자료로만 볼 수 있었던 '황국신민서사지주皇國臣民誓詞之柱'라 불리는 비석의 기단이다.

황국신민서사는 1937년 일제가 한국인의 황국신민화를 강화하기 위해 암송·제창하게 한 맹세다.

이번 조사지역의 대부분은 일제가 이곳에 황국신민서사지주를 세우면서 크게 훼손되었고, 이후 국회의사당 건립계획에 따라 또 한 번의 파괴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발굴단은 보았다.

아동광장에서 확인된 한양도성 성벽은 현재 복원되었다.

 

 

백범광장의 지금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아동광장 바로 옆인 남산 백범광장에 대한 조사도 2009년에 이어졌다.

아동광장과 마찬가지로 일부 성벽이 확인되었다.

이번 발굴을 통해 발굴단은 토축과 석축을 섞어 쌓은 구간과 석축으로만 축조한 구간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고, 도성의 외형을 이루는 면석의 형태와 뼈대를 이루는 뒤채움 수법 역시 다르게 나타나고 있어 한양도성은 구간에 따라 다양한 축조법으로 성을 쌓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산 백범광장 조사에 이어 남산에 있는 지금의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일대 및 안중근기념관 주변에 대한 조사가 이어졌으며, 발굴보고서에는 '중앙광장 부지 내 유적'과 '회현자락 부지 내 유적'이라 이름하였다.

중앙광장 부지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남산식물원 자리와 N서울타워로 올라가는 탐방로 일부가 포함된 지역이고, 회현자락 부지는 중앙광장 부지의 동쪽 연장선상에 있는 지역으로서, 앞서 조사에서 나무 덱(데크) deck이 있어 실시하지 못했던 곳이다.

이 지역들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한양도성 구간으로는 앞서 살펴본 백범광장 구간과 연결되는 구간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신궁 배전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중앙광장 발굴 때 확인된 조선신궁 배전 터(사진 출처-출처자료1)

 

먼저, 중앙광장 부지에 대한 발굴 결과를 보면 태조 때 축조된 당시 유구와 세종 때 개축한 체성부體城部[성벽의 몸체 부분]의 유적이 확인되었다.

특히 2013년 1차 조사 때 조선신궁朝鮮神宮[일제 강점기 남산에 세워졌던 일본식 신사神社]의 부속 건물인 배전拜殿[참배객들이 절하는 장소] 가, 2016년 2차 조사 때는 조선신궁의 또 다른 부속건물인 신찬소神饌所[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장소]의 하부구조물이 발굴되어 일제강점기 한양도성의 훼손 양상을 잘 보여준다.

그밖에 중앙광장 부지에서는 청동기시대 집터 1기와 움집터(수혈竪穴주거지) 7기가 확인되어 매우 이채롭다.

 

 

'내자육백척' 글자가 새겨진 각자성돌(사진출처 https://museum.seoul.go.kr/archive/archiveView.do?type=D&arcvGroupNo=4277&arcvMetaSeq=37262&arcvNo=101497)

 

회현자락 부지에서도 길이 53.7미터, 최대 5단, 최대 높이 1.8미터의 성곽을 확인하였고, 서쪽으로는 남산식물원이 있던 곳을 끝으로 더 이상 확인되지 않았으며, 동쪽으로는 N서울타워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또한 뒤채움부도 확인되었으며, 태조 때 '내자육백척奈字六百尺'이란 글자가 새겨진 각자刻字성돌[한양도성 전체 97개 구간 중 60번째 구간인 천자문의 60번째 글자 '내奈' 자 순번에 해당하는 군현의 백성들이 쌓은 600척 구간이 시작된다는 뜻]이 발굴되기도 했다.

 

 

한양도성 남산 일대의 집중적인 학술발굴조사 이외에 한양도성의 다른 구간에서도 몇 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서울시에서는 2013년 한양도성 탐방로 구간인 창의문에서 말바위안내소 구간에 대한 조성 및 정비공사 중 도성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계단 석축시설이 일부 드러나 있는 청운대~순심로 탐방로 구간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발굴 결과 한양도성과 관련된 석축 계단시설이 양호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발굴단은 계단시설이 숙종 이후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군사시설물에 대한 순찰이나 성벽 보수 등을 위한 이동로를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으로 추측했다.

동시에 조선시대 순성巡城[성을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함] 기록 등을 통해 당시 백성들이 도성을 한바퀴 도는 순성놀이 때에도 이용되었던 것으로도 추측하였다.

 

 

2013년 5월에서 6월까지는 한양도성의 4소문의 하나인 광희문 구간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 결과 원래 위치의 광희문 기초와 성벽 바깥쪽 기저부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옛 서울시장 공관 성벽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옛 서울시장 공관은 현재 한양도성 안내센터로 운영되고 있다.(사진 출처-출처자료1)

 

2014년에는 혜화문 근처 도성 성벽에 위치한 서울시장 공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한양도성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사업의 일환이었다.

서울시장 공관 건물은 1941년 준공되어 1959년부터 20년 동안 대법원장 공관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1981년부터 2013년까지는 서울시장 공관으로 사용되다가 발굴조사 이후 한양도성 안내센터로 운영되고 있었다.

 

발굴 결과 한양도성 성벽을 처음 쌓는 초축初築과 두 차례에 걸친 수·개축修改築[보수 및 새로 쌓음]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고, 성벽 뒤채움의 흔적도 확인했다.

그러나 근대와 현대를 거치면서 교란이 심하여 성벽과 뒤채움의 상부 구조는 확인하지 못했다.

 

 

흥인지문의 지금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2014년에는 흔히 동대문이라 불리는 흥인지문興仁之門 주변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도 이루어졌다.

조사 지역은 흥인지문의 북쪽으로 도로 때문에 훼손되어 흥인지문과 단절되어 있는 상태이다.

서울시에서는 이 지역에 있는 동대문교회를 이전하고 이 일대를 공원으로 정비하는 계획을 세우고 발굴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발굴조사 결과 면석이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성벽 관련 뒤채움부의 원래 위치와 잔존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뒤채움의 범위와 진행 방향을 추정할 수 있는 다짐층과 판축층, 그리고 뒤채움 석렬 등을 확인했다.

그러나 유물은 1점도 발굴하지 못했다.

그밖에 일제강점기 축대 조성과 관련된 석재들도 확인했다.

 

 

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실시된 한양도성에 대한 발굴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즉 서울시에서는 한양도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도성의 철저한 관리와 함께 순수 학술조사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세계유산 등재라는 목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한양도성의 역사적·문화적 시민들에게 재인식시켜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현황은 다음과 같다.

 

2012년 11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2017년 3월 탁월한 보편 가치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 세계유산 등재 불가 통보 받음.

2021년 10월 한양도성-탕춘대성-북한산성을 통합하여 2027년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재도전 시작.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구글 관련 자료

 

2022. 5. 2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