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00년 이후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19: 성동구, 성북구, 송파구, 양천구 지역 본문
<2000년 이후 발굴조사 목록-성동구, 성북구, 송파구, 양천구 지역>
○성동구 지역
성동구 지역에서는 2009년에 행당지구 도시개발사업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행당동 90-1번지 일대로 기존에 공장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었던 지역이다.
조사 결과, 현대 매립층 아래에서 일제강점기 쓰레기 매립층을 확인했으며, 그 위에 일본식 축대와 건물 터 3기가 조사되었다.
또한 그 시대를 반영하는 도자기, 생활용구 등 다양한 유물들이 많이 나와 당시 생활상을 복원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이번 발굴에서는 일제강점기 유물이 나온 최하부 쓰레기층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발굴단은 이 유적이 쓰레기 고고학 자료로서의 고고학적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서울 살곶이다리(전곶교箭串橋)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다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긴(길이 76m, 너비 6m) 돌다리다.
정종과 태종의 잦은 지방 행차 때문에 1420년(세종 2)부터 짓기 시작했으나 태종이 죽자 왕의 행차가 거의 없어 중단되었다.
그 후 이 길을 자주 이용하는 백성들 때문에 다시 만들 필요성이 생겨 1475년(성종 6)에 다시 공사가 시작되었고 1483년(성종 14)에 64개의 돌기둥을 사용해 완성했는데,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돌기둥의 모양을 마름모꼴로 만들었다.
'살곶이'라는 이름은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자 태조 이성계는 함흥으로 내려가 은둔하다가, 신하들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인 태조가 이곳 중랑천에서 자신을 맞이하는 태종을 향해 쏜 화살이 빗나가 땅에 꽂힘으로써 이곳을 '화살이 꽂힌 곳' 즉 '살곶이(전곶箭串)'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1925년 을축년대홍수 때 다리 일부가 유실돼 1972년 보수했고, 1987년 올림픽을 대비한 제방도로 공사 중 북쪽 갓기둥(교대橋臺: 다리의 양쪽 끝을 받치는 기둥)과 일부 다릿기둥(교각橋脚: 다리를 받치는 기둥)이 매몰되면서 현재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다.
2009년 12월 1일부터 2010년 1월 14일까지 실시된 발굴조사는 복원을 위한 기초자료 확보를 위해서였다.
2011넌 '서울 살곶이 다리'란 이름으로 보물 제1738호로 지정되었다.
성동구의 2018년 완료 목표였던 살곶이다리 발굴 및 복원 공사 결과가 지금의 다리 모습이다.
○성북구 지역
성북구 지역에서는 삼선동1가의 근린생활시설 신축부지에 대한 발굴조사 1건만이 확인된다.
이는 조사지역이 서울 4대문과 근접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 4대문 안 문화유적보존방안」에 따라 지표조사 없이 바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조사 결과, 조선시대 도랑(구상溝狀) 유구 1기와 이와 관련된 기둥자리 4개가 확인되었다.
○송파구 지역
송파구 지역에서는 몽촌토성 이외에 택지개발지구와 석촌동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먼저, 2004년과 2005년에 장지택지개발사업 부지에 대한 발굴이 있었다.
송파구 장지동 일대는 서울시의 남동쪽에 해당된다.
남쪽은 경기 성남시와 경계를 이루며, 동쪽은 남한산성을 경계로 경기 광주시와 하남시와 연결되는 지역이다.
조사지역은 성남시와의 경계지점으로, 지하철 8호선 장지역에서 북동쪽으로 형성된 나지막한 구릉지대에 해당한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 터 1기, 우물 터 1개소, 널무덤 2기, 시대 미상 집 터 2기, 구덩이 유구 5기, 기둥구멍(주혈柱穴) 유구 1기 및 가마 시설(소성燒成) 유구 1기 등이 확인되었다.
발굴단은 청동기시대 집 터를 제외한 나머지 유구들은 조선시대 유구로 보았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위례지구 택지개발사업 구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3차에 걸쳐 실시되었다.
행정구역은 서울시 송파구 장지동 406번지 일대와 하남시 학암동 산99-2번지 일대가 해당된다.
조사지역은 지리적으로 장지천과 창곡천 사이로서, 장지천 남쪽이자 창곡천 북쪽 지역이다.
발굴 결과 구덩이 유구 23기, 담장 유구 1기, 적심(건물 붕괴를 막기 위해 주춧돌 밑에 자갈 등으로 까는 바닥다짐 시설) 1기, 민묘民墓(왕실의 능묘를 제외한 사대부와 평민 묘) 11기, 움집 터 3기, 건물 터 1기, 석렬石列(엇비슷한 간격으로 길게 줄지어 늘어선 돌의 무리) 유구 1기, 도랑 유구 1기, 밭 유구 1기 등이 확인되었으며, 모두 조선시대에 해당된다.
구석기시대 문화층도 조사되었으며, 여기서는 몸돌, 격지(몸돌에서 떼어 낸 돌 조각), 긁개 따위의 다양한 석기가 93점 확인되었다.
1975년 사적 제243호로 지정된 석촌동 고분군은 이미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발굴조사가 실시된 후 역사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여가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우연히 다시 발굴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2015년에 석촌동 고분군에서 땅이 꺼지는, 이른바 지반 함몰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지표면에 지름 약 25cm의 구멍이 뚫렸고, 깊이 50cm, 아랫부분의 지름은 1m가 넘는 상태였다.
이에 사적의 효율적인 관리와 석촌동 고분군의 성격 구명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고자 2015년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지역은 남북으로 위치하고 있는 1호분과 2호분의 중간 지점으로서, 석촌동 고분군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며 남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양상이다.
발굴 결과, 표토층 바로 아래에서 돌무지무덤의 하부 및 내부시설의 일부로 판단되는 석축렬과 인위적인 성토부, 자갈 깐돌층(부석층敷石層: 무덤의 바닥이나 둘레에 한두 겹 얇게 깐 돌층)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많은 양은 아니지만 돌무지 부위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출토되었으며, 대부분 기와 조각이고 유리장신구 조각들도 나왔다.
다행히 구멍은 현대 지하구조물이 폐기되고 난 다음에 내부를 채우고 있었던 목재와 쓰레기들이 썩으면서 생긴 것으로 발굴단은 고분군의 안전에는 이상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번 조사를 계기로 석촌동 고분군에 대한 발굴은 다시 시작되었다.
2017년 현재도 석촌동 고분군에 대한 발굴은 계속 진행 중이다.
○양천구 지역
양천구 지역에서는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신정3지구 국민임대주택사업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행정구역은 신정동 781번지 일대의 해발 125.7m의 지양산 구릉의 말단부 지형으로 해발 30~50m 지형이다.
발굴 결과, 통일신라시대 움집 터 1기, 고려시대 건물 터 1동과 석축 2기, 석렬 5기, 조선시대 무덤 13기와 무덤 관련 건물 터 1동, 석렬 2기, 시대 미상의 구덩이 1기 등이 확인되었다.
발굴단은 고려시대 건물 터를 소규모 사찰로 추정하면서, 출토된 청자 기와 종류로 보아 건물 축조시기를 고려 중기인 12~13세기로 보았다.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서울 살곶이 다리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jsessionid=zrtBFHd8DOpWaAy8J9s1XEiDtJbVcDXLXPEZK3IUbZvidjkvbhJcqDR8m3dMOnTl.cpawas_servlet_engine1?pageNo=1_1_2_0&ccbaCpno=1121117380000
3.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82%B4%EA%B3%B6%EC%9D%B4%EB%8B%A4%EB%A6%AC
4. 구글 관련 자료
2022. 12. 8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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