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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의 괴짜들 5: 마음씨 따뜻한 고슴도치 요하네스 브람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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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의 괴짜들 5: 마음씨 따뜻한 고슴도치 요하네스 브람스

새샘 2022. 12. 9. 16:22

1889년 찍은 브람스 모습(사진 출처-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9A%94%ED%95%98%EB%84%A4%EC%8A%A4_%EB%B8%8C%EB%9E%8C%EC%8A%A4)

 

○브람스의 음악은 온갖 기분이 담겨 있는 아름다움이 생생하다

 

독일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첼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였던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1883~1897)모든 작품을 공들여 작업했고, 그렇게 작곡한 작품 대부분을 없앴다.

악상이 떠오르면 브람스는 베토벤처럼 시골길을 걸으며 오래도록 그것을 생각했다.

가능한 모든 각도에서 다 살펴본 다음에야 악보에 적었다.

진정한 고투는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브람스는 악보에 적힌 것을 좀 더 좋은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해서 작품이 완성되면 정말로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쓴 편지와 함께 음악을 아는 친구에게 보냈다.

친구가 해준 이런저런 조언을 받아들일 때도 있고 무시할 때도 있었지만, 작품은 언제나 새로 고쳤다.

그다음에는 작품을 시험 삼아 간단히 연주해 보고 가능하다면 정식으로 연주해서 고치고 또 고쳤다.

그러고 나서 마음에 들면 마침내, 드디어, 결국, 출판사로 보냈다.

역시 별로 출판할 것이 못 된다는 편지와 함께.

 

그러니까 고슴도치 브람스에게 작곡이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해도 그다지 틀릴 말은 아니다.

브람스는 과거의 위대한 작곡가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음악을 존경했고, 대부분의 작품을 교향곡, 소나타, 협주곡, 사중주 같은 옛날 형식으로 썼다.

하지만 오페라는 없었다. 브람스는 오페라를 쓰지 않았다.

 

브람스는 과거의 천재들이 좋은 것을 다 써서 자신이 그들의 수준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들의 작품을 모범으로 삼고자 했다.

배우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브람스는 자기 작품을 대단치 않게 여겼지만, 자기와 동시대의 작곡가들은 대부분 자기보다도 훨씬 더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브람스의 음악은 이전 시대 음악가들의 생각을 이었다.

과거의 형식을 치워 버리고 새로운 음악적 틀을 만들려고 하던 사람들은 브람스가 그저 낡은 음악을 다시 쓰는 구닥다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브람스의 위대한 업적은 옛 형식들을 가져다가 생생하게 숨 쉬는, 살아 있는 음악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브람스의 음악에는 온갖 기분이 담겨 있다.

어떤 음악은 그가 손에 맥주를 한 잔 들고 기분 좋게 앉아서 집시 악단의 연주들 듣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집시 선율을 가져와 스물한 편의 <헝가리 춤곡(무곡舞曲)>을 남겼다.

또 좀 더 규모가 큰 작품들에도 강렬한 집시의 정신이 많이 녹아 있다.

또 어떤 음악은 그가 어둡고 비극적인 기분에 빠져 있는 것이 느껴진다.

'스케르초 scherzo'라고 하는 빠른 악장들 중에는 어두운 숲을 달리는 악마처럼 섬뜩한 것들도 있다.

스케르초는 원래 '농담'이라는 말에서 왔다.

거기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찬란한 노을, 사랑의 노래, 우아한 춤곡,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이 모든 것을 한 작곡가의 작품으로 엮어 주는 공통된 특징은 깊은 풍부함과 장대한 아름다움이다.

가시가 돋친 듯한 느낌은 별로 없다.

그것이 브람스의 음악적 목소리이고, 그 음악적 목소리는 오직 브람스에게만 있다.

 

무심코 라디오를 틀었을 때 브람스의 음악이 나오면 나는 그것이 브람스의 음악이라는 사실을 아주 쉽게 안다.

그의 음악은 파도처럼 밀려와서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좀처럼 라디오를 끄지 못하게 하니까.

그러니까 바쁠 때 듣기에는 조금 불편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유를 가지고 듣기에는 더없이 훌륭한 음악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을 들을까

 

브람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은 모조리 찢어버린 탓에, 오늘날 남아있는 작품들 가운데 수준이 떨어진다거나 덜 중요한 작품은 없다.

<헝가리 춤곡>들과 그 밖의 짧은 작품들은 아주 가볍고 즐겁지만,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즐거운 일은 중요하다!

 

브람스 최고의 걸작은 아마도 그가 인생에서 느낀 깊은 감정들을 음악을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을 때 나온 곡들일 것이다.

워낙 인간 고슴도치로 살다 보니 그는 음악으로만 감정을 드러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슈만이 죽은 뒤 완성된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고통 받은 영혼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그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도입부에서 쿵쿵 울리는 팀파니 소리에 깜짝 놀랐다.

1악장은 깊은 고뇌로 가득하다.

기도처럼 느린 2악장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슈만의 영혼이 편히 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흔히들 베토벤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더불어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일컬어지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들어보자.

이 곡은 브람스의 모든 작품 가운데서도 손꼽힐 만큼 선율이 아름답고, 집시풍 리듬이 가득한 마지막 악장은 까불까불 즐겁다.

<독일 진혼곡>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쓴 곡으로, 부드럽고도 가슴 뭉클한 슬픔이 매우 아름답다.

 

그다음에는 교향곡들이 있다.

브람스가 첫 번째 교향곡을 쓴 것은 애초 계획을 품은 지 20년도 더 지나서였다.

하지만 헛된 기다림이 아니었다.

팀파니가 둥둥 울리는 장엄하고 어두운 도입부는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알리는 것 같다.

가장 유명한 교향곡은 마지막 교향곡인 <4번 교향곡>일 것이다.

이 작품의 아름다운 선율은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들어도 좋다.

이 음악을 들으면 일어나는 게 좀 쉬어질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곡은 <클라리넷 오중주(작품 번호 115번)>이다.

이 곡은 브람스의 마지막 작품들 중 하나인데, 석탄이 빨갛게 아물거리며 식어 가는 난로 주변에 늙고 현명한 집시들이 앉아서 강렬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연주 시간이 30분 이상으로 길이가 꽤 길다.

 

브람스의 짧은 명곡을 듣고 싶다면 유명한 <자장가>를 들어보자.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음악은 안 나오는 데가 없다.

게다가 온갖 악기로 연주되기도 했다.

오르골에서도 나오고 짜증날 만큼 크게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로도 나오지만, 그것이 브람스의 잘못은 아니다.

어쨌거나 그 곡을 기억해 둔다고 나쁠 일은 없다.

머릿속에 어떤 음악이 박힌다면, 아무래도 좋은 음악이 박히는 게 좋지 않을까?

 

브람스의 음악은 잘못 선택할 염려가 거의 없다.

이미 말했듯이 그의 작품은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긴 곡이건 짧은 곡이건 원하는 대로 들어 보고, 브람스와 사랑에 빠져 보라!

 

※출처

1. 스티븐 이설리스 글·애덤 스토어 그림/고정아 옮김, '클래식 음악의 괴짜들', 비룡소, 2010.

2. 구글 관련 자료

 

2022. 12. 9 새샘